코를 눈처럼 사용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땅냄새 맡기를 질 좋은 와인 향 맡듯 좋아하는 개들과 함께 살다보니 하루 두 번 산책은 사치가 아닌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저희 개들이 땅바닥에 코를 처박고 킁킁대며 풍경을 즐기는 동안, 저도 안경을 코끝에 걸쳐 쓴 채 눈으로 천천히 주위 풍경을 돌아보곤 합니다.
그러면 평상시 무심히 스쳐지나가던 자연이 오감으로 느껴집니다.
올해 처음 봄을 느낀 건 2월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길을 걸어가는데 화단에 새들이 소리를 지르며 분주하게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몸을 털었습니다.
마치 겨울을 털어내며 봄이 시작한 걸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집 앞 개천은 유량도 많아지고 유속도 빨라지며 겨울에 쌓인 때를 벗겨내고 세수한듯 물이 깨끗해졌습니다.
덕분에 산책 때마다 개천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빛에 시선을 빼앗겨 최면에 걸린 듯 멈춰 서 있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침 산책길에는 풀밭에 내린 서리로 하얀 얼음 알갱이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땅에 펼쳐져 새싹이 땅 밖으로 고개 내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아직 겨울이라고 몸을 웅크린 채 떨었습니다.
오후 산책길에는 그 얼음 알갱이들이 한낮의 햇빛에 쫓겨 한 뼘도 안 되는 나무 난간 그림자 뒤로 숨어 목숨을 연명하는 걸 보며 이제 봄이라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 바람에 실려오는 햇빛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아침에는 겨울이, 낮에는 봄이 방문하는 그런 2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책을 읽으러 주마다 들리는 전망 좋은 동네 카페에 들렸습니다.
3층 통창 앞 자리에서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고압 전신주 좁은 틈새 가장자리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좁은 틈새 안에 까치 둥지가 있었습니다.
둥지 안에는 또 다른 까치가 있었는데 아마도 밖의 까치와 부부관계인 듯 보였습니다.
둥지 안과 밖의 까치는 서로 부리를 맞대며 부지런히 겨우내 망가진 집을 수리하며 봄에 올 새 생명들을 위한 봄맞이 대청소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봄꽃이 만발하지도 않고, 만산에 녹엽이 우거지지도 않은 보잘 것 없는 봄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5월, 봄의 축제를 준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곧 있을 봄의 축제를 만끽할 준비를 하기 위해 저처럼 봄맞이를 해보는 하루는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