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산책에 나서면 등교길에 오른 초등학생들과 함께 길을 걷곤 합니다.
어느 날은 앞서가며 대화하는 초등학생 남학생 둘에게 귀가 안테나처럼 향했습니다.
두 학생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거든요.
"야, 너 내가 우리 반에 좋아하는 여자 아이 있는 거 아냐?"
"ㅇㅇㅇ."
"너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다 티나."
사랑을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와 그런 친구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아이를 뒤에서 훔쳐보며 숨죽이며 웃었습니다.
그냥 좋다, 라는 말이 전하는 순수한 설레임에 심장 부근이 간질거립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을 같이하던 남자 친구가 툭 마음 속 금고에서 튀어나왔습니다.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던 먼 하교길에 그 친구가 뛰어와 "같이 가자."라고 옆에 섰을 때의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
무슨 말을 하면 좋을 지 몰라 친구 얼굴에 화상자국처럼 있는 얼룩에 대해 물었을 때 "이건 몽고 반점이야. 보통은 엉덩이에 있다는데 나는 얼굴에 있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친구에게 아프지 않냐며 뺨을 어루만졌을 때 수줍음.
꽤 오랫동안 하교길을 같이 했는데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집 앞 까지 그 친구와 내 발자국이 긴 평행선을 그리던 그 시간동안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와 따뜻하게 얼굴에 와닿던 바람의 감촉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방법을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랑은 마주보고 서서 상대가 얼마나 나와 똑같나 확인하고, 다른 부분은 빼앗아 내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사랑은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는 거라는 거.
잊어버렸던 것을 하나씩 되찾는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