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시 09
두어 달에 한 번쯤
나는 철도 위의 시간을 빌립니다
재미있는 것은요,
가장 싼 좌석을 골랐을 뿐인데
목적지를 등졌으면서도
그곳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보면
가로수, 전봇대, 구름 따위가 달려갑니다
내 반대 방향으로요
모래를 움켜 쥐었을 때처럼
시간을 잡으려 할 때처럼
그것들은 으레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저 아득한 차창 너머로 사라집니다
터널을 지날 때면요,
이윽고 어둠과 몇 줌 빛만이
그 길쭉한 사각형 창을 다 가리는데
바로 그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떠나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표정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일까요?
나는 독심술사가 아니고
차창에 비친 나는 찰나와 같이 존재하다가 소멸해버리므로
나는 그 까닭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눈 앞에 펼쳐지는 푸른 아기 보리밭과
그 옆을 지나는 앳된 여울과,
또 어설프게 비닐 하우스 너머로 가지를 뻗은
한 무리의 어수룩한 포도나무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모두 나를 떠나가면서도 여전히 푸른 것을 보면서
다음에 귀향할 때를 기대하게 될 뿐입니다
그 때 만날 풍경은 오늘과 같지 않겠으나
그 막연한 재회는 분명 달가울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