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 3년, 수원 이사 1년, TTC 7주차 - 요가 중심 하루
매일 오전에는 필라테스 수업을, 저녁에는 영어 수업을 진행하며 정해진 시간에 땀 흘리고, 사람들과 눈 맞추던 시간이 멈췄다. 갑자기 고요해진 하루. 이 고요가 반가우면서도 막막했다.
하루아침에 경력이 단절된 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 동안 쌓여있던 피로와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 선택한 도망이었다. 그래도 그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닭장에서 갑자기 풀려난 닭은 다시 닭장으로 들어가려 한다거나, 어쩔 줄을 몰라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던 삶의 모습, '옳다'고 생각했던 삶의 모습을 벗어나자 막막해지고 말았다. 당장 찾아온 일상의 적막감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더욱이 으레 들어왔던 일상의 소음들이 잠잠해지자, 내 머리속에 말들이 점점 커졌다.
"다들 이렇게 살아, 너만 힘든거 아니야. 이 정도는 아프다고도 할 수 없어. 조금 쉬었다면 바로 일하러 가야지 너무 게으르고, 약하네?"
그 소리들은 하루의 모든 순간에 따라붙었다. 청소를 할 때도, 거울을 볼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무슨 일을 하든 못마땅하고 모자라보이는 탓에 나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서 바닥으로, 바닥으로, 꺼져갔다.
서울에서 보냈던 6개월은 남편과 나에게 안전하고 고요한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서울에서 자리잡았던 자취방은 모든 창문을 다 닫아도 지나가는 차 소음, 사람의 발걸음이 들리기 일쑤였고, 그나마도 새벽에는 잦은 사이렌 소리와 공사 소음이 들려왔다.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부족한 탓에 남편은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어디에 앉아있어도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렇게 다소 조용하고 고즈넉한 공간을 찾아 수원으로 이사왔건만, 자주 거처를 옮기고 여러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바쁘게 보내던 나에게 잊고 있었던 적막감이 또 한 번 찾아왔다.
경력이 단절된 후 약 2년동안 나의 예민한 기질을 알아차린 탓에 아무나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편이 더 편해진 나였다. 크리에이터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자유와 독립적인 하루를 주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온라인과 진짜 내 삶의 사이에서 점점 더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을 찾게 되었고, 감사하게 받았던 출판제안도 출판사의 배려로 중단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건데, TTC를 들어보는 건 어때?"
몇 일 동안 고심한 듯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내가 강의를 진행하며 받는 자극과,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잘 알고있는 남편이 요가지도자과정 이야기를 꺼낸것이다. 남편은 이제 수원에 정착한지도 10개월쯤 되었고, 그 동안 다시 한 번 옮긴 직장에서 적응도 다 되어가니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동안 내원하고 셀프케어로 점차 하루의 의욕을 되찾아 가던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강사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요가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었고, 이미 필라테스 지도자과정을 거치며 얻은 경험으로 내 하루에 기분좋은 루틴이 추가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로서 내가 다루는 인스타그램 주제 중 가장 큰 줄기를 차지하는 부분이 '요가'가 아니던가?
남편은 내가 이미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프리랜서'로서 하루를 잘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정한 수면시간, 절대로 몰아서 일하지 않는 성향, 반드시 지키고마는 마감기한까지. 하지만 여기에 전문성을 추가한다면 내 크리에이터로서의 기회도 확장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추천한다고 했다. 역시 남편답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이었다.
어느 자기계발서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야한다고 했다. 공통의 관심사, 그리고 그 공통의 관심사가 건강한 몸과 마음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 커리어 전환에 관심을 두고 기회와 배움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TTC가 시작되고, 개인수련을 가게되면서 나의 하루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개인 수련은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가야 최소 수련 시간을 충족시킬 수 있다. 예민한 성향 때문에, TTC 수강일 외에도 주 3–4회 수련을 이어간다. 동작을 잘 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집 밖을 나서며 정신을 환기하고, 요가 수업으로 몸을 움직인다. 가능한한 되는데까지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이게 되네?'하는 순간을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한다.
TTC를 시작한 뒤, 내 하루는 점차 구조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5~10분 짧게 명상하며 하루의 중심을 잡고, 따뜻한 보이차와 간단한 식사로 몸을 깨운다. 오전에는 콘텐츠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개인수련을 위해 요가원으로 향한다. TTC 수업이 없는 날에도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루틴을 이어가려 한다. 저녁 6시 전 가볍게 식사하고, 뜨개질이나 독서를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중요한 건 ‘잘하려고’가 아니라, ‘잘 살아내기 위해’ 이 구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기다리는 연휴일지라도 이런 루틴이 깨지는 날이 반복되면 기분이 다시 들쭉날쭉해진다. 나의 일상은 요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스스로 하지만 갑작스럽게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살던 대로’ 살지 않기로.
그동안의 삶은 늘 해야 할 일들로 가득했다. 먹고살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뭐든 ‘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청소, 공부, 자기계발, 수업 준비… to-do list에는 나를 위한 항목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조차 몰랐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도 흐릿해졌다.
경력이 단절된 후에야, 그 모든 피로와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울감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쌓여온 것일지도 모른다.
요가 수련을 이어오며, 나는 드디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하루를 설계하게 되었다.
어떤 낚시꾼이 말했다.
“낚시는, 미끼를 고르고 장비를 챙기고 목적지로 향하는 운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달래는 순간, 그리고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모든 것”이라고.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요가도 그렇다.
매트 위에서의 수련만이 요가가 아니다.
수련 전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요가복을 고르고, 감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조금 더 깊은 잠에 드는 밤까지—
그 모든 흐름이 나에게는 요가다.
이제는 ‘기분’이 아니라 ‘구조’로 살아가고 싶다. 불안이 나를 휘두르기 전에, 내가 나의 하루를 먼저 짜두고 시작한다.
TTC가 끝나려면 아직 3개월이 남았지만, 나는 이미 달라지고 있다.
요가를 중심에 두면서, 수시로 출렁이던 기분과 감각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 잊을만 하면 다시 올라오던 우울감과 번아웃도 하루하루 수련과 루틴 속에서 그 기세를 잃어간다.
병원과 상담을 갈 예산과 시간을 나는 요가와 수련에 ‘기꺼이’ 투자하기로 했다. 그것은 단지 수련 이상의 의미였다. 지금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살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매트 위에서의 티칭 연습’과 ‘내가 누군가 앞에 서는 상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요. 수련자에서 서서히 ‘전달자’의 자리에 서며 마주한 불편함, 두려움, 그리고 기대. 이 여정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