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면 불편합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by 헤더

기쁨을 선택할 수 없는 무력감이 있었다.

매일 아침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조차 버거웠다.


‘오늘은 기쁨을 선택해야지.’

그렇게 다짐했지만, 나에겐 그런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를 유추해보고,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버릇 탓에

몸을 떠나버린 내 주의는 자꾸 생각 속으로만 흘러들었고,

그 생각은 불쑥불쑥 과거의 감정을 불러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나 소음이 오래 남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들도

나에겐 오래, 진하게 남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내 몸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럴 때 요가는,

몸을 떠난 나의 의식을 ‘지금 여기’로 돌려세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호흡, 감각, 미세한 근육의 떨림까지

요가는 나를 나에게 다시 데려오는 언어였다.




힐링은 불편하다


편안하게 감은 눈과

긴장은 찾아볼 수 없는 어깨,

요가나 힐링 여정에서 자주 보고 듣는 이미지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처음엔 그렇지 않다.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강도 높게 움직이면

근육통이 오는 것처럼,

요가를 할수록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자꾸만, 그리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올라온다.


몸은 아프고, 감정은 거칠고, 나는 혼란스럽다.

그럴 때마다 ‘이런 것도 받아들이는 게 수련 아닐까?’

자기검열과 인내로 참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감정은 더 강해졌다.


‘요가를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흔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요가를 해서 가장 나쁜 점, 그리고 가장 좋은 점


우울증 경험자, 전 필라테스 강사이자 영어 강사 출신인 나.

그런 내가 요가를 하며 가장 나쁜 점은 ‘나의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가를 하며 가장 좋은 점도 ‘나의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써서 나타나는 불편함,

요가를 하며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정들.

그런 것들을 직면하게 되는 경험.


예전의 나는 그 감정을 피하려 애썼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씩,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요가를 포함한 모든 치유의 과정이 그랬다.

정답은 없고, 나를 마주하는 연습만이 있었다.



나는 지금 TTC를 수강 중이다


하지만 누군가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상상을 하면

아직도 두렵다.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것만큼

각자의 속도, 감정, 몸의 언어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요가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의 숨소리와 에너지를 느끼는 순간이 좋다.


혼자의 속도와 에너지를 지킬 수 있는

온라인 수업을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오프라인 수업에서만 느껴지는 진동, 온기, 연결—그 모든 게 참 좋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내가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수업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덜 부딪히고,

조금 더 나의 에너지를 지키면서

수련과 전달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고 싶다.


지금의 나는

수련을 하며 더 복잡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어쩌면

‘진짜 나’를 만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 본 글은 특정 요가 TTC 기관이나 강사를 평가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탐구를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앞으로의 여정


나는 지금 이 경험들을 브런치에 기록하며

9월부터 ‘요가 필독서 독서모임’'해부학 스터디’

새로운 탐구 모임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조금 다른 ‘정신·철학 중심의 장’을 열어보고 싶다.

조금씩 준비 중인 이 여정에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TTC 이후 변화된 나의 ‘생활 리듬’과

하루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몸을 지키며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상의 소음 속에서 나를 어떻게 숨 쉬게 했는지를 나누어보려 해요.

매트 위의 수련이 매트 밖의 삶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

그 연결이 궁금하다면 다음 화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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