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이해하는 언어
해부학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강했던 어느 날,
붉은 근육과 하얀 뼈대가 어지럽게 펼쳐진 첫 수업 시간.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상하게도 흥미로웠다.
‘의사가 되야지만 이런 걸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재밌는걸?’
그땐 그림을 보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며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해부학은
어느새 나에게 ‘몸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언어과(영어학)를 졸업한 나에게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언어를 먼저 익히는 일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TTC 수업에서 다시 만난 해부학은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 덕분에 더욱 반가웠다.
‘나는 해부학이 왜 좋았던 거지?’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간다는 것.
그건 곧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선, 깊은 재미가 있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어렵고,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알기 어려웠다.
말랑한 위로의 말과 영상들은
그때그때 잠시 나를 쉬게 해주었지만,
비슷한 문제들이 인생에 반복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고관절 굴곡근과 신전근을 공부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다리의 피부 아래,
보이지 않는 근육과 뼈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나의 몸.
그 존재가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를 이해하는 일’에는
이렇게 몸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도 포함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완전한 F인 나에게
이런 T의 학문이 뜻밖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필라테스를 통해 목 디스크 증상을 완화시켰고,
정형외과에서는 “목뼈 사이 간격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해부학은 분명 내 인생에 쓸모 있는 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칫하면 100세가 훌쩍 넘도록 살아야 할 수도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오히려 더 ‘움직이며’ 살아야 하고,
몸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삶의 질을 지켜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해부학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부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인스타그램에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다.
“해부학 스터디원을 모집합니다.”
단 한 명만 지원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4명이 신청했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지만,
나는 이제 ‘함께’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글에서는
해부학 수업에서 잠시 벗어나 하타 요가 수업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삶의 리듬이 조금씩 회복되던 순간,
요가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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