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C 1주차 - 나를 소개하고, 요가를 소개받다

"저는 강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요..."

by 헤더

오후가 되어 본격적인 이론 수업이 시작되었다. 요가의 어원, 종류, 정화법... 콘텐츠를 만들며 스치듯 공부했던 내용들이라 다행히 낯설지 않았다. '그동안 방구석에서 보낸 3년이 헛된 건 아니었구나.'

도반 : 깨달음의 길을 함께 걷는 벗. 불교에서 비롯된 말로, 수행을 함께하며 서로 의지하고 배우는 동료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삶의 길 위에서 마음을 나누고 지지해 주는 동반자를 뜻하기도. 단순한 친구를 넘어, 함께라서 더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존재.

아사나 : 산스크리트어로 **‘앉음, 머무름’. 요가에서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몸을 고요히 다스려 호흡이 깊어지고, 그 호흡 속에서 마음이 고요히 머물 수 있을 때—비로소 아사나는 명상과 치유로 이어지는 내면의 문이 됨

38세, 다시 학생이 되었다.


다시 학생이 되어보니 여간 설레고 신나는 게 아니다. 같은 교재를 보며 옆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이 다시 왔다. 저절로 6시에 눈이 떠지는 기적. 내가 설레는 일은 역시 눈이 번쩍 뜨이는 구나.



“나는 강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첫 날인 만큼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이름은 ooo이고요. 요가가 너무 좋아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몸과 마음의 상태는, 휴직중이라 너무 행복합니다 하하핫"

내가 선택한 ttc 과정은 매주 금요일에 진행되어서 그런지 휴직중인 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행복하다(?)는 도반들이 많았다. 그 외에 휴학하고 온 학생, 그리고 다른 피트니스 업계 종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드디어 돌아온 내 차례. 왜 자기소개라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일 뿐인데 이렇게 쑥쓰러운지 모르겠다. 머리속에서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여기 왜 있는걸까? 제자리에 서기만 했는데 가슴이 쿵쾅거리더니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저는 대구에서 이직한 남편따라 수원으로 온지 10개월째구요, 친구가 많이 없습니다. (웃음) 요가강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온 것은 아니고, 항상 요가가 제 인생에서 다음 돌파구를 열어주어서 이번에도 그런 걸 기대하고 왔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젊고 예쁜 여성들을 많이 볼 기회가 없는데 같이 하게 되서 설레요. 잘 부탁드립니다...!"


농담처럼 꺼낸 한마디에 사람들이 웃었다. 어느새 나도 따라 웃었다. 어색함이 풀리고,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진심을 말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


38살 경단녀 아줌마는 이런 거에 진짜 설렌다구요. 어떡해요 그럼.



180만 뷰 뒤에 숨겨진 진짜 나

사실 나는 요가 크리에이터다. (비록 지금은 정체기지만.) 나는 건강 이슈로 경단녀가 되었다. 누군가에겐 자유를 찾아 강단있게 결정한 탈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 선택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크게 방전된 채 그 때 하던 일을 연이어 그만두고, 닭장 속에서 풀려난 닭처럼 우왕좌왕했다.


그 시절, 나는 일을 그만둔 동시에 우울의 늪으로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다.

“무슨 선택이든 갑작스러운 전환은 그에 상응하는 혼란을 수반한다.”

하지만 TTC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연장선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 강사님의 한 마디에 나는 갑자기 멈칫했다.


“아사나를 하다 보면, 신체에 저장된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요. 몸은 기억하거든요. 그리고 어느 날, 그게 그냥— 풀려버리는 거예요. 그렇다고 뭐가 갑자기 막 치유되진 않아요."


그 순간.

딱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 그 봄밤


작년 봄이었다. 나는 집에서 온라인 요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조용한 밤, 선선한 바람, 익숙한 동작, 좋아하는 강사님의 차분한 목소리.


여느때처럼 잠깐의 잡생각과 함께 사바사나로 마무리하고, 카메라 앞에서 합장을 하며 인사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어깨가 와르르 떨리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당황한 나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황급히 줌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대로 매트위에 엎드려 한참을 들썩였다.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었다.

남편과 다투지도 않았고, 그날도 블로그 조회수는 낮았지만, 그건 평소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눈물과 떨림을 겪어야 했다.

혹시 PMS인가? 미쳐가는 건가?


그때는 몰랐다.

왜 그런 감정이 나를 덮쳤는지.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나의 완벽한 동작이 아니라, 엉성하고 흔들리는 모습에 반응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지 6개월 만에 릴스 하나가 180만 뷰를 찍었고, 팔로워는 1.6만 명이 되었다. 화려한 요가복 협찬이 들어오고, 출판 제의도 받았다. 온라인 세상 속의 나는 꽤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의 내 삶은 여전히 부유하고 있었다. 남편의 이직으로 낯선 도시에 떨어지자 고립감은 더 심해졌고, 콘텐츠 소재는 고갈되어 갔다.


'화면 속의 내가 아니라, 진짜 내가 단단해져야 해.'


그것이 내가 강사가 될 생각도 없으면서 비싼 돈을 들여 TTC에 등록한 진짜 이유였다. 온라인의 성과에 취해 현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진짜 내 몸을 쓰고, 진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있는 감각'을 되찾기 위해.



“내가 미친 게 아니었구나”


오후가 되어 본격적인 이론 수업이 시작되었다. 요가의 어원, 종류, 정화법... 콘텐츠를 만들며 스치듯 공부했던 내용들이라 다행히 낯설지 않았다. '그동안 방구석에서 보낸 3년이 헛된 건 아니었구나.'

안도하던 찰나, 강사님의 한 마디가 훅 들어왔다.


"아사나(동작)를 하다 보면, 신체에 저장된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요. 몸은 기억하거든요. 억눌렀던 감정이 호흡과 함께 그냥 툭, 풀려버리는 거예요."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도록, 묵직하게, 아무 말 없이.


내가 감추고 외면했던 감정들, 다 괜찮은 척 넘겼던 순간들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그날, 그 동작, 그 호흡 속에서 문득 쏟아져 나온 것이다.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아사나는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그날의 나처럼 감정이 물처럼 흘러나오게 하는 출구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었다. 그날의 경험이 나를 완전히 치유했다거나 다른사람으로 바꾼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울음은 나를 다시 요가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마치 20대 중반,

요가수업 후

집으로 돌아오던 날처럼.


다시, 시작점에 서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TTC 강의실엔 다양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직업을 위해, 누군가는 치유를 위해. 그리고 나처럼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열쇠'를 찾으러 온 사람도 있다.


이곳은 나에게 자격증을 주는 곳 그 이상이 될 것 같았다. 1.6만이라는 숫자에 갇혀 있던 나를, 다시 생생한 현실의 감각으로 끌어내 줄 곳. 그렇게 단단해진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강사가 목표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배워보겠습니다."


이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획 회의에 참석 중이니까.


대기가 안좋은 하노이에서 돌아온 다음날
그 마음을 안고 두 번째 수업에 갔을 때, 내 몸은 과연 준비되어 있었을까?
다음 화,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날’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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