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대신 TTC, 다시 몸으로 살아보기

바닥에 찰싹 붙어 있었던 계란후라이에게, 계절이 말을 걸었다

by 헤더

계란후라이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둬서 사실은 실망하고 원망하진 않았어?

혼자 가장노릇하느라 힘든데 내가 설거지도 안해놓고 그럼 화나는 거 아니야?"


하는 바보같은 질문에


"ㅎㅎ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일 열심히 하고 왔더니 무슨 소리야?"


라고 남편은 대답했다. 남편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 나의 생활에 대해 이리저리 손익을 재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왔다는 말처럼 들렸다.

실로 복잡한 생각은 내가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덤덤함이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아이도 없고, 당장 급하게 갚아야할 빚도 없고, 수입이 줄어들면 덜 쓰거나 모아둔 돈 쓰지뭐."

그래서 나는 제대로 계란후라이로 있어보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몇 달 간 거실 바닥에 붙어 있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바닥에 늘러붙은 나를 보고 묵묵히 밥을하고 설거지를 했다.

가끔 노른자가 탱글한지 찔러보듯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었다.(살아있는지 체크했나..?)

나는 돌아가면서 아팠던 나의 몸 상태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고,

샤워하러 가는 것도 힘들었다. 의욕의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뻘에 반쯤 잠겨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화장실까지 갈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냥 쉬기'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쉬는 줄 몰랐기 때문에 바닥에 찰싹 붙은채로 하루종일 쇼츠를 보다 잠들었다.

여름이 짙어지다니


나를 조금씩 먹이고 입힌 남편 덕분에 몇 주가 더 지난 2023년 봄,

나는 갑자기 요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20대 중반 요가 수업 후 귀가하던 그날 밤의 일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한 번 더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밤마다 홍대에 가서 묘하게 생긴 악기를 연주하시고,

요가원 책장엔 카마수트라가 있었던 민머리 남자 원장님이 있던 요가계라면,

이렇게 희미하고 흔들리고 우울한 나도 받아줄지도 몰라..!'


나는 집 근처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최대 정원 5명인 요가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요가를 다시 시작한 지 1달이 지났을까?

돌아오는 길 차 앞유리로 보이는 하늘의 푸르름과

살짝 열린 차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대구의 초여름 냄새를 맡은 날을 기억한다.

나는 계절이 짙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었고,

그걸 보고 있는 내가 잘 살아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아..이 순간이 또 찾아 왔구나, 그 날 밤처럼!'



크리에이터의 삶과 또 다른 멈춤


나는 일기쓰기, 캠핑을 더해가며 점점 건강을 되찾았고,

이후 전업 크리에이터에 도전했다.

그동안 나는 팔로워 200명에서 1.6만명이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요가복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숙소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 다른 시리즈에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삶도 나눌 수 있길!)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남편의 이직으로 고향 대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특정한 곳에 소속된 곳이 없으니 오히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고,

서울로 가면 크리에이터로서 기회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6개월을 보낸 후

수원으로 내려와 10개월 째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바뀌었고, 나는 팔로워 1.6만에서 성장을 멈췄다.

그동안 우울증이 한 번 더 나를 할퀴고 지나갔고,

이렇다할 수익구조가 자리잡지 않은 나는 다시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흙이 뿌옇게 올라오는 연못처럼

마음이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던 7월의 어느날이었다.

샤워를 하던 나는 비누거품이 풍성하게 묻은 손으로 면도기를 잡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살을 회 뜨듯 베어버렸다.

떨어진 살점은 속절없이 세면대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찾을 수 없게 되었고,

환부는 크지 않았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 화장실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다행히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갈 수 있었지만 2주 동안은 꼼짝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새 살이 잘 돋으려면 손가락을 굽히거나 힘을 주어선 안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멈추었다.

아프고 나서야, 놓을 수 있었다


하루를 지탱하는 가장 큰 2가지,

요가와 콘텐츠 제작을 못하게 되었다.


'나한테서 요가와 콘텐츠 빼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라는 말이지? 어떡하란 말이야..!'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원망을 내뱉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플때면 나를 미워하는 버릇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이번엔 그 자책의 시간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꽤 짧았다.

퇴사 직후 온 몸이 아프고서야 내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가 보였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었다.

힘을 빼고 - 진짜 힘이 안나긴 했다- 몇 달이나 계란후라이처럼 있고 나서야

나는 겨우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었지 않았나.


나는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부상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3일 후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나는 몇 일 간 놓았던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엄지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나머지 네 손가락을 사용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코 한 코 쌓아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몇 분 뜨고 나면 아파왔던 손목과 엄지에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더욱 균일한 코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손에 힘을 빼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놓고

삶에도 힘을 빼는 방법을 조금 알게되었다.


그러자 2025년 7월의 여름, 요가 없이도 여름이 짙어짐을 볼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정말 산책밖에 없었기에.


아르바이트 대신 TTC, 다시 몸으로 살아보기로 하다


손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나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온라인 세상 속의 나는 꽤 마음에 들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오프라인의 삶을 꽉 붙잡고 있어야

온라인에서의 내 성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3년째 전업 크리에이터로 살다보니

일정한 주기에 따라 어딘가로 장소를 이동해서

내가 기여할 곳이 있다는 감각이 절실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일정하지 않은 수익구조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 그렇다. 남편은 여전히 어떤 불평도 안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TTC였나? 요가 자격증 따보는 건 어때?"


어느 날 저녁, 일을 알아보던 중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필라테스 업계에서 상처받고 퇴사했던 나를 곁에서 지켜봤던 사람이기에,

TTC(요가 자격증 과정)를 추천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꽤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요가를 좋아하고, 요가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온 나에게

TTC를 수료하는 건 단순히 ‘강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내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폭을 넓히는

하나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TTC를 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지방에서 적응해 나가는 중이고, 다행히 시간적인 여유도 있는 상황이다.

그 여유를 배움에 사용하는 건 좋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생각이 많고 예민한 성향의 나에게는,

머릿속을 복잡하게 굴리는 시간보다

몸을 쓰는 시간이 훨씬 건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유동적인 스케줄의 크리에이터 삶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번에도 요가 안에서

나의 다음 삶의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선택은 충분히 의미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대화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

TTC 과정을 운영하는 어떤 요가 브랜드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할인가로 수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커리큘럼이나 전반적인 분위기가 지금의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아

감사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고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제안 자체가,

어쩌면 진짜 자격증을 취득해도 좋을 타이밍이라는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에도 나는 잠시 멈춘 덕분에 나의 의욕, 욕심, 초조함을 조금 더 내려놓게 되었다.

너무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그 자리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요가 없이도 여름이 짙어지고 있다는 걸,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여름의 공기 속에서 나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이제는 몸으로, 마음으로, 좀 더 가볍게 나를 살아보려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가 강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닌데, 왜 이 수업이 이렇게 설렐까?’


다음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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