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 일이 없다는 건, 실패일까?
*요가 TTC : Teacher Training Course, 지도자 과정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요가 강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일이 없다는 건, 실패일까?
나는 지금 멈춰서 있는 걸까, 아니면 지나가는 중일까?
이 질문들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평생을 따라다녔다.
25살의 나는 세상이 시키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동기며 선후배들은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취업을 하던, 뮤지컬 학과로 재입학을 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은데, 나만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체 이제껏 살아왔던 것처럼 당연한 수순으로 '취업'만 하면 나도 선명해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인생은 전혀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나는 음식에 집착하게 되었다.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쉽게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끼에 식빵 한 줄을 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마구 배를 채우고 난 후의 나른한 기분이 반가웠다. 그렇게 단 3개월 만에 20키로를 증량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혹 제 정신이 돌아오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첫 단계로 다이어트가 제격일 것 같았다. 그래서 집근처에서 발견한 작은 요가원 간판에 홀린듯이 이끌려 들어갔다. 집에서 가깝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전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던 가운데, 여러 사항을 고려하면 내가 요가원에 가지않을 것만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선 요가원 바닥은 요즘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합기도나 태권도 수련장과 같은 초록색 바닥이었고, 벽엔 평범한 책장처럼 생긴 곳에 담요가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그 옆엔 이리저리 밀리곤 하는 저렴한 매트가 돌돌 말려 세워져 있던 그런 곳이었다. 소도구가 뭐냐. 그게 다였다. 머리가 스님처럼 아주 짧은 묘한 분위기의 젊은 남자 원장님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2번째 수련을 마치고 나오던 밤, 유난히 바람은 시워하고 나뭇잎을 스치는 손의 촉감, 그리고 선명한 달빛이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기억난다. 둥둥 떠오르는 것 같은,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차분하게 행복감이 차오르던 갑작스런 감정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날밤의 경험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거나, 우울감이 씻은듯이 사라지진 않았다.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 밤의 경험은 앞으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만 가진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폭식을 이어가다 나는 취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023년 겨울, 나는 예기치 못한 일로 순식간에 커리어를 중단하게 되었다. 옮기기로 계약된 센터의 원장은 이틀 뒤면 출근인 토요일날 밤, 계약된 금액보다 시급을 5,000원 정도 내려야겠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그 센터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참 별 일 아니다) 10년간 잘 하고 있던 영어강사 일도 그만두었다.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조금 쉴 요량이었다. 나는 왠지 자꾸만 바닥에 누웠다. 계란 후라이가 되었다.
그저 쉬면 몸이든 마음이든 나아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끊임없이 가렵거나, 밤에 딱 깊은 잠에 들 수 없을 만큼만 발이 저절로 경련을 일으켜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하지불안증후군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확신하지 못했다. 몸살도 감기도 아니지만 은은하게 자주 열이나고 오한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생리주기는 21일, 생리 기간은 6-7일로 한 달에 반은 피를 흘리고 있지 않으면 배란일이었다. PMS는 이상하게도 더 심해져서 한 달에 반은 폭식을 하거나 울거나 화를 냈고, 생리가 시작되면 극심한 피로감에 하루의 대부분을 자야했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생리주기가 20일부터는 너무 짧아 비정상인데 21일까지는 정상 범주에 속하는 거니, 피임약으로 주기를 조절하는 것 외에는 큰 방도가 없다고 했다. 어떤 날은 자다가 일어났을 뿐인데 이석증이 와서 걷지 못하다가 화장실로가서 하루종일 토하기도 했다. 인공눈물 없이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서 하루종일 달고 사는 통에, 집중해서 뭔가를 읽거나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차라리 눈에 띄게 아픈 곳이 있었으면 했다. 어딘가 크게 아픈 건 아닌데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딱 <발목 잡을 만큼만> 아픈 것 같았다. 병원에가도 '원인을 모른다'거나 '스트레스'가 원인이니 '건강한 생활 습관'을 추천받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30대가 다시 멈춘 것 같았다. 처음엔 '곧 괜찮아질 것이고, 다들 이렇게 산다' 며 스스로를 설득하며 운동이나 SNS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서면 아프고 돌아서면 아픈 통에 어떤 것도 지속하기 힘들었다. 1주일 쉬면 금방 다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스트레스 원인도 사라졌고, 집에서 쉬고 있고, 집 밥을 주로 먹는데 내 몸은 다른 걸 이야기 하고 있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1주일 정도 쉬었으면 이젠 무엇이든 해야하고, 남들도 이 정도는 견뎌가며 사는데 나는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이 심했다. 1주일 쉬면 될 줄 알았던 몸은 2주일이 되고, 2달이 되어도 잘 낫지 않았다. 차라리 깨진 것을 이어붙이도록 부서진 편이 나은 것 같은데, 은은하게 아픈 나의 몸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안으로 녹아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가 많이 미웠다.
그 정도 일로 왜 이렇게 아프고, 앓는 소리를 해?
나는 정말로 괜찮아지고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살고 싶었고,
무언가 시작하고 싶었고,
그저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예전의 나'가 더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살면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멈춤이 실패인지 아닌지 질문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저 조금 다르게 회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