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TTC 와 '존중'이 있는 수업
“해부학도 중요하지만, 몸을 많이 움직여봐야 하죠.”
“몸을 당연히 옆으로 기울여야 하지만, 먼저 중요한 건 기반.”
부드럽지만 확실한 선생님의 핸즈온,
간결한 큐잉, 그리고 나의 몸이 그 흐름을 따라가는 감각.
매트 위에서 한바탕 기분 좋은 힘겨루기를 마친 내 몸엔,
어느새 들숨의 차가움과 날숨의 가벼움이 스며들었다.
돌아오는 길, 몇 달 전 들었던 한 원데이 클래스가 떠올랐다.
서울에서의 짧은 일정 속, 요가 어플을 통해 예약했던 얼라인먼트 빈야사 수업.
낯선 공간과 수업이었지만, 그보다 낯선 불편함이 느껴졌다.
처음들어보는 용어와 빠르게 흐르는 시퀀스 속,
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휘청였던 그날.
“비라바드라 2” 자세에서 무릎을 강하게 당기던 강사의 손길,
내 몸은 이미 충분히 버티고 있었고, 그 순간 ‘위험하다’는 감각이 찾아왔다.
그 수업이 끝나고 남은 건,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깊은 감정이었다.
오늘 수업은 달랐다.
말이 많지 않아도 전달되는 확신.
간단한 말에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는 경험.
나뿐만 아니라 옆자리 TTC 동기들도 편안하게 따라가는 모습.
그건 단순히 우리가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오랜 경험과 수련이 만들어낸 공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남편을 모델 삼아 파스치모타나아사나를 시켜보았다.
다리르 펴고 앉기도 버거워하는 남편 앞에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
이건 머리로 배운다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수업을 한다면,
수업이 끝나고 그 사람이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그 마음은 너무 진심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함께 품게 되었다.
예전에도 강의를 하며 그만큼의 보람을 느꼈지만,
나의 에너지를 심하게 소진하며 번아웃이 왔던 기억도 있었으니까.
나는 욕심이 많은 걸까?
상대방도 존중하고, 나의 에너지도 지킬 수 있는 수업—
그게 정말 가능할까?
지금의 나는 아직 전달자가 아닌 수련자다.
하지만 종종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 앞에 서야 할지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처럼 좋은 수업을 만날 때면,
그런 상상을 다시 해보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매일의 요가가 예민한 나에게 어떤 심리적 여백을 만들어줬는지 이야기하려 해요.
바로 그 섬세한 변화들이,
어쩌면 내가 조금씩 ‘살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독>해서 조금씩 성장하는 저의 모습을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