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사랑하기
오후 2시. 골목도, 이웃도 고요한 시간. 그런데 천장 어딘가에서 콩, 콩—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일어선다.
이 소리가 천장을 두드리는 것인지, 옆집 벽 너머에서 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깨와 등에는 긴장이 올라오고, 생각은 끝을 모르고 확장된다.
소리의 정체가 ‘은행을 까는 망치질’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 나는 이미 한 차례 지쳐 있었다.
정체 모를 냄새가 풍기는 날엔 모든 걸 제쳐두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명상을 하고, 요가로 몸을 움직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냄새는 하루의 기분을 짓누른다.
방에 들어서는 사람의 표정, 말투, 분위기도 예민한 내 피부는 빠르게 감지한다. 달라진 공기의 결만으로도 머릿속 회로는 쉼 없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내가 뭔가 실수했나?” “분위기가 어제와 다른 이유는 뭘까?”
엄마는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조금만 더 말해줬다면 좋았을 이야기들—예를 들면 감각이 섬세하고, 느끼는 폭이 깊다는 말 대신, 그냥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로 나를 설명했다.
처음엔 나도 억울했다.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조차도 내가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나의 예민함을 오래도록 미워했다.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고, 눈치껏 배려하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늘 ‘배려심이 강한 아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나는 정말로, 내가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잘하려 애쓸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사건’이 되어 내 머릿속에서 시시각각 재현되었다.
나는 자책과 복수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고,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퇴사 후 우울증에 걸리고,
병원과 요가원을 오가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현미경을 눈에 딱 붙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단 걸.
따돌림을 경험한 후로 나는 더욱 현미경에 눈을 바짝 붙였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사소한 것도 다 예민하게 알아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하는 원망이 들기도 했다.
현미경을 내려놓는 방법은 머리로 배울 수 없었다.
독서를 통해 원리를 익혔지만, 실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직 몸을 움직이고,
숨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익혀나갔다.
요가, 일기, 캠핑.
내 몸이 이완되면, 내 시야도 조금씩 넓어졌다.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커다랗게 보이던 문제들이 점점 작아졌다.
매트 위에서 내 손끝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내 생각도 고요해졌다.
몸을 움직이고 난 뒤의 길에서는
새 소리가 들리고,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이웃에서 풍겨오는 저녁밥상의 냄새가 반갑게 느껴진다.
그렇게 2023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하늘이 짙어짐을, 나무가 푸르러짐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마치 태어나 처음 계절의 변화를 목격한 사람처럼.
그날 이후, 나는 나의 예민함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이 감각은 때때로 나를 고단하게 만들었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재능이 되었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초능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요가는 나의 예민함을 억누르거나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탐구하고, 잘 쓰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때가 되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눈을 떼도 괜찮아. 지금은 하늘을 볼 시간이야.”
여전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다시 현미경 속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매일 요가 수련을 할 수 있는 지금이,
TTC를 통해 개인수련을 일상에 포함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참 고맙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세상을 조금 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화에서는,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할 때
“여기까지 더 갈 수 있어요.”
하고 먼저 발을 내디뎌주는
요가 강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타인과 나에대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