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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차담

법명 청련화의 뜻

7월 더운 여름날 백양사 큰스님과 마주 앉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한 여름 대낮인데도 차담하는 대청마루 한옥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이야기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새 이름이 생긴다는 것의 의미


몇 달 전 스님께서 내 생년월일로 직접 법명을 지어 주셨다.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기도 했고 스님께서 가지고 계신 차의 향이 좋다 해서 겸사겸사 이렇게 차담을 하게 되었다. 


-(스님) .. 그래그래 청련화.. 흠,, 좋은 이름이지.. 그런데 잘 지어주는 이름은 아니야...



한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가 다시 이어가셨다.


-(스님) 청련화는 푸른 연꽃이라는 뜻이야. 

이 세계에는 푸른색 연꽃은 없어. 청련화는 극락세계에만 존재하는 꽃이지. 그만큼 신비롭고 순수하고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꽃, 깨끗하고 청렴한 꽃이야. 


부정하거나 불의한 것이 하나도 묻지 않았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불의를 그냥 두지 않아. 법명을 그렇게 준 것은 (너는) 그런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왜 청련화로 받았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거야.


말씀을 듣고는 함께 앉아 있던 지인이 더 놀라는 눈치였다. 나도 내심 많이 놀라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꿰뚫어 보시는 것 같아 식은땀도 났고 무엇보다 뭔가 위로받는 느낌에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스님께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씀드린 적이 없다. 그냥 여유롭게 차담 하려다가 웬 눈물바람인지. 참...


그냥 하던 대로 해라. 

너 때문에 다 같이 욕먹는다.

혼자만 깨끗하고 혼자만 정의롭냐.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안 하냐.

네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유난 좀 떨지 마라.


나는 무엇을 할 때 어떤 의도 가지고 하지 않는다. 소위 승진, 인정, 경제적 이득, 권력 같은.. 이런 것들이 나에게 원동력이 된 적이 없다.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걸. 나에게 고양이들 빼고 그 어떤 것이든 다 내려놓아라고 하면 바로 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 처하거나 새로운 타스크를 맡으면 제로 베이스에서 목표와 그 맥락만 파악한다. 그렇게 큰 중심이 서면 그것에 따른 잔가지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파장과 반발이...


(다 공개할 순 없지만.. 예를 들어)

구매팀은, 좋은 품질의 것을 저렴한 가격에 인증된 기업으로부터 구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절차를 통해 진행하면 되고. 뭘 더 붙이고 뺄 것이 있나. 


그러면 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그렇게 순진하게 딱딱 떨어지도록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을 잘 모르고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나를 탓한다. 그런데 내가 많은 일과 상황을 대처하고 변화를 일으키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게 원칙대로 하는 것이 가장 심플하고 편하고 깔끔하더라는 거다. 왜 굳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길로 돌아가느냐 말이다. 이런저런 명분을 다 가져다 붙이고서. 


내가 해결하고 이루어 낸 것은 분명 남아있는 결과물인데도, 나는 보이지 않는 온갖 조악한 '프레임 속 나'가 되어 있더라. 전화번호도 없는 고위 간부와 연락을 한다는 둥, 차명계좌로 주식을 받았다는 둥, 분당에 39평 아파트에 산다는 둥(당시에는 분당에 10년째 같은 원룸에 살고 있을 때) 그 프레임이 너무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이어서 그 대상이 나만 아니라면 나도 그렇게 믿을 것이다. 


나의 타고난 예민함도 원인이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합쳐져 몇 년 전 공황장애가 왔다. 최근에는 내가 없앤 그 '부정이슈'의 '부정한 대상자'가 나로 탈바꿈되어 있더라. 이제 이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프레임 생산자들의 바람대로 주춤하지 않는다. 잃을 것도 없고, 인정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 두렵지가 않다. 나는 그냥 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거다. 뚜벅뚜벅. 늘 그랬듯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스님께서 주신 '청련화'가 딱 맞는 이름인 걸.





몇 년 전 책 십우도를 다시 읽고 문득 그린 그림.


이 그림은 몇 년 전 책 '십우도'를 다시 읽고 그린 것이다. 스님께 보여드렸더니 '법명 청련화와 보통 인연은 아니네..' 하셨다. 언젠가 연꽃 그림 하나 그려서 선물해 드려야겠다. 새 이름을 주신 보답으로.


참,,, 나는 카톨릭 신자 엘리사벳이다.

그러고보니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도 신부님께서 지어 주셨다. 세례명을 신부님께서 직접 지어주는 것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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