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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큰스님께서 법명을 주셨다

나는 카톨릭 신자입니다만,,


청련화 靑蓮華


'푸른색 연꽃'이라는 뜻으로

백양사 큰스님께서 나에게 주신 법명이다.


술공장 팀장으로 발령 나면서 평생을 살려고 마련한 경기도의 집을 두고 공장이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퇴사까지 고민할 정도로 가족 친구 전혀 없는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한 달만에 알았다. 내가 러스틱 라이프 체질이라는 것을. 


몇년 전 내가 그린 작품 '십우도, 황금 술주머니와 연꽃 나비' / 청련화 법명을 듣자마자 생각난 작품


나는 원래 카톨릭 신자인데 여기 살면서부터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절에 다닌다고 말하기 애매한 것이, 절에 다니는 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데려간 것도 아니고 불자가 되려 한 것도 아니다. 


시골의 여유와 풍경이 좋아 근처 산을 자주 다녔고, 가다 보니 그 산에 절이 있었고, 그 절 대웅전에 앉아 명상도 하고, 마당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쉬기도 하고, 연못 금붕어 헤엄치는 것 물멍도 하고.. 코로나만 아니라면 사람으로 북적일 유명 사찰이 한적하기에 이런 내가 눈에 잘 뜨였을지도. 한 번씩 스님께서 떡, 과일, 과자 같은 걸 챙겨주기도 하셨다.


앞마당 연못. 가끔 챙겨주시는 과일, 돌보시는 길냥이들


그렇게 어쩌다 보니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천년 고찰 백양사의 큰스님께서 감사하게도 나에게 이름을 지어 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사찰에서는 어떤 교육이나 행사도 없었고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법명을 지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사벳인 내게 이름을 주신 거다.


푸른색 연꽃, 청련화


생년월일을 드리고 한 두 달 즈음 지났을 때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또 몇 개월 후, 차담을 하면서 스님께 '청련화' 이름의 뜻을 여쭈어 보았다. 이 건 또 다른 깊이의 뭉클한 감동이 있어서 따로 글을 쓰겠다. 그때 큰스님께서 우리는 모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존재이기에 가톨릭신자에게 법명을 주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20대 초반에 신부님께 '엘리사벳'을 받았고,

40대 중반에 스님께 '청련화'를 받았다.


이름이 생겼다.

이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함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단 몇 글자로 보여줄 수 있는 '이름'

나를 명명하는 이 이름이

나를 한계 짓는 것이 아닌 

등불이 되어주는 이름이 되도록.

삶을 감사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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