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기대여도

Lawrence Alma Tadema

by 헤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심적 여유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급격한 심신 몰락도 한몫했겠다. 최근 남편의 허리 디스크상태도 악화되었고 급기야 병원을 바꿔 한방 처방을 받기도 했다. 출퇴근과 업무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식구들을 챙기며 늘 산재한 가사 살림 미션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감기'와 같은 증상이 몇 주째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는 것이다. 완화는커녕 악화되는 것 같은 상태. 그래도 쉴 순 없다. 주된 돌봄자의 책무에 '끝' 이란 좀처럼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문득 '나'라는 1인분의 시간만을 책임지며 살아도 큰 문제없는 타자들을 떠올려본다. '돌봄' 이 일종의 책무로 자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인생은 어떨까. 그들과의 삶을 비교하다 따라붙는 어떤 거리감과 부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려 할 즈음엔 애써 고개를 흔든다. 무쓸모한 생각을 없애려는 인간의 최소한의 행위겠다.


그렇다. 심신이라는 지반에 모두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달까.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에너지의 부재라는 핑계에 기댄 결괏값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써야지 하면서도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쓰러지듯 자고 일어난 다음날 새벽이면 늘 찝찝하고 서글퍼진다. 어제 '도' 쓰지 못했다고. 달력에 엑스 표시를 한다. 동그라미보다 엑스가 많이 보이면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따라붙는다. 그 이후 스스로를 책망하듯 나는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 뭘 하며 지냈길래 쓰지 못했냐며.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9시면 아이들과 같이 잠들어버리기 일쑤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라고. 이렇다 할 아웃풋도 없으면서 뭘 하느라 그리 여유 없다 느끼는 것이냐고.



그러자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반문하듯 따지기 시작한다. 일과 돌봄을 동시에 책임지는 인간의 세계에서 정녕 인풋과 아웃풋이 비례관계에 있을 수 있냐고.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영역인 것인지를 따지듯 묻는다. 그리곤 허탈히 웃고 말며 내면의 대화는 잠시 동안 지지고 볶다가 끝나는 것이다.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간다. 새벽에 일어나 쌀을 씻어 미리 불려둔다. 그리곤 샌드위치를 만들 준비를 한다. 첫째는 딸기 샌드위치와 둘째는 치즈피자토스트다. 취향도 기질도 제각각인 쌍둥이들이 그저 잘 먹어주기를 바라며.



잠든 아이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소파에 다시금 널브러져 누워 있는 두 아이의 잠에서 덜 깬 얼굴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아이의 뺨을 매만지며 굿모닝 키스를 한다. 그들의 피부는 뽀얗고 부드럽다. 그러다 생채기를 발견한다. 어제 다툰 형제의 난으로 인해 서로 할퀸 손톱자국이 표식 마냥 도드라져 보인다. 연고를 발라주며 아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문장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발성이 어려울 정도로 쉬고 갈라져 텁텁해진 목소리 상태임에도. 아이를 향해 발화된 문장은 어딘지 일종의 주술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도 무사하자. 좋은 일 있겠지.' 라던. 아이를 향했으나 사실 나에게 건넸던 말. 단단한 각오가 있지만 어딘지 기운 빠진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감정들...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쓰는 여자가 보인다. 그녀는 생각한다. 이제 봄이고 겨울은 지났다고. 그렇게 시간에 기대면 되는 것이라고.



Lawrence Alma Tadema, Expectations, 1885


여기 한 여성이 계단에 앉아 있다. 대리석 계단은 실사와 흡사할 정도로 선명히 묘사된다. 고전풍의 길고 흰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햇빛이 잔뜩 들어왔는지 이마를 향해 왼손을 올리며 빛을 가리면서도 정면을 직시하고 있다. 맞은편 흰 담 너머로는 복사꽃을 닮은 분홍색 꽃이 보인다. 곧지 않은 휘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는 어딘지 한낮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만 같다. 편안해 보인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혼자 있는 그 시간은 잠깐이어도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파란 하늘과 청록빛 바다. 활짝 핀 꽃과 오래되었지만 하얗고 잘 정돈된 깨끗한 계단 위에서의 조용한 시간. 실로 우아한 행복같기만 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쉬웠을까. 지나가는 시간, 붙잡지 못하는 찰나의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기대' 했을지 모른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Expectation' 속 그녀는 어떤 '기대'를 품고 있을지.



네덜란드의 초상화가이자 풍경화가로 유명한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작품들은 이처럼 대부분 우아하고 기품 있는 고전 사진들의 실물과 거의 흡사할 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화폭을 자랑한다. 그의 'Expectation' 속 대리석 계단은 탁월할 정도로 질감 묘사가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니까. 그의 그림은 대부분 고전 혹은 고대로 추정되는 풍경과 의복, 인물들이 등장한다. 푸른 바다와 하늘, 고전풍의 드레스를 입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장소나 공간의 어떤 웅장한 장엄함과 그 풍경의 오래된 옛 정취들, 그리하여 어떤 향수들을 자극할 만한 장면들은 그렇게 펼쳐진다.



Lawrence Alma Tadema, Among the Ruins, 1902-4



여기 무너진 돌조각들 틈새로 허리를 한껏 굽혀 무언가를 찾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목에 걸린 목걸이가 늘어져 방해되지 않게 왼손으로 잡고 있다. 그녀의 왼쪽 팔은 금속 팔찌로 한껏 치장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빛바랜 파스텔톤의 연그린과 연청색 나염 소재로 추정되는 긴 드레스와 잘 어울려 보인다. 머리를 깔끔하게 틀어 올린 금발머리의 여성 주변으론 역시나 맑고 파란 바다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깨끗한 하늘이 절경을 이룬다. 난초꽃인지, 돌무더기 사이로 꽃의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눈부신 햇살 아래의 대리석 조각들은 아마도 오랜 시간 이후의 쇠퇴와 몰락한 장소의 잔해로 보인다. 그렇지만 삭막하지 않고 어딘지 그리운 향수를 자극시킨다. 색채와 풍경, 인물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화가의 탁월한 기술은 화폭 속 인물의 옷 주름이나 조각난 돌조각들의 정교한 무늬들만 봐도 익히 '타데마의 그림'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다.



현재의 나로서는 그의 그림들 중 가장 인상 깊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그림들의 공통점이 있다. 결국 혼자 있는 여성 혹은 아이 곁의 여성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바다'가 그 곁에 펼쳐진다. 'A Kiss'에서는 한 여성이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보호자는 누구였을까. 허리를 굽힌 쪽이기를 잠시 바랐지만 사실 그게 '이상향'이라는 걸 안다. 한쪽 손으론 아이의 턱을 살며시 받치고 또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녀에게서 무언의 생경함을 느꼈던 건 바로 현실의 고단함이 쉬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Lawrence Alma Tadema, A Kiss, 1891



잠시의 이별을 기약하는 키스였을까, 아니면 만나서 반가웠던 그리움의 것이었을까. 아이 뒤로 무덤덤한 표정의 여성은 누구였을까. 이웃일까 아니면 그녀야말로 아이의 보호자였을까. 사실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 지키고 살려내는 그 돌봄이라는 시간이 무척이나 퍽퍽하고 되풀이되는 시간의 연속이라면 실상 아이라는 존재의 싱싱한 성장과 그 본연의 사랑스러움은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저 지속되는 피로한 일상을 생존하듯 버텨내야 가능한 시간일 테니. 어쩌면 아이의 엄마는 아이 뒤에 서 있는 그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현실의 시간이 고돼서 키스하지 못하는 순간이 잦은 인간. 뒤늦게 후회할 걸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 겪어야만 아는 것들...



시간은 큰 힘을 지녔다. 새것도 헌 것으로 만들고 싱싱한 젊음도 끝내 사라지게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일종의 생장점을 넘어가고 그렇게 자라면서도 결국 없어져간다. 우리는 끝내 어른이 된다. 아이에서 어른의 몸으로. 나이라는 정량적 숫자와 신체 성장과 비례하는 만큼 심력과 지력, 지혜도 같이 자라주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꽃은 안 자랄 것 같지만 기어코 피어난다. 삭막해 보이는 땅에도 잔디를 심으면 생기 있는 연둣빛 새싹들은 생명력을 발휘해낸다. 'Flora'라는 제목의 그림은 그야말로 고대 꽃의 여신이라 불리는 '플로라' 신을 인격화시킨 것 마냥 한가롭고 평온하게만 보인다. 봄이라는 계절과 분수가 뿜어져나오는 공원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듯, 허리를 굽혀 꽃을 모으고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너무나도 한갓져서 보는 나는 괜한 이질감과 거부감 그리고 어떤 질투마저 느껴지고 만다. 어쩌면 나의 계절은 아직 봄이 다가오지 않은 것이라는 반증인걸까.



Lawrence Alma Tadema, Flora, 1877



최근 댁 내 일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비협조적이고 다소 낯설기까지 했던 남편의 태도와 만났고 오랜만의(?)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우리'를 위해 잘 살려 노력해도 본전인 셈인가 싶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리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우리는 심적으로 서로 서운함을 주고 받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전처럼 신경을 곤두세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어 싸우려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는 것도 주된 이유 중 하나였지만. 사람에 대한 서운함은 울적함과 침묵을 동반한다. 그이를 향해 언제나 먼저 종알대던 나의 입술은 침묵으로 무장했고 며칠째 평소처럼 묻던 일상의 안부 문장들은 방백이 되었다. 물론 발성하기 힘든 목소리 상태라는 허울 좋은 핑계에 기댄 셈이지만.



하루 종일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아이들의 입을 옷과 먹을거리와 기타 댁 내 가사와 살림을 병행하며 쉴 틈은 없다. 틈틈이 '커리어'를 생각하며 일터에서의 시간만큼은 최선의 집중으로 업계 스터디를 하고 트렌드를 따라잡으며 실무를 배우고 익히고 실행시킨다. 퇴근 후 육아 출근, 그리고 다시 육아 퇴근(?) 후 틈틈이 기고 글이나 목표한 원고를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얹히지만 한 문장이 제대로 써지지 않은 순간은 잦다. 무력함과 우울감이 다시금 나를 감싸려 할 때. 그 나락에서 자신을 구원할 최후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이것이다.



Lawrence Alma-Tadema, Her Eyes are with Her Thoughts and They are Far Away, 1897



'기대' 하는 마음. 그렇다. 나는 여전히 어떤 '기대'를 하고 만다. 조금 섬칫하지만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 자연사까지 도달할테니. 그러면서도 일상 속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시간과 목도하면 그 순간만큼은 내내 고정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시간 앞에서 이토록 어리석고도 무력한 기대들이라니.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시간에 기대는 마음은 그야말로 무력한 기대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대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현존' 의 최선을 바라기 때문일테다. 삶의 어디까지가 고난이고 고통인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다시금 기쁨이고 환희인지를 나눌 수 없이 뒤섞여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시간이라면.



나는 부디 현재의 사소하고 우울하고 지치고 무력한 기운들을 흐르는 이 시간들과 같이 씻겨 내려가길 기대하는 중이다... 그렇게 현존의 최선을 바라는 사적 욕망은 기대하는 것이다. 나의 기억은 다시 재구성되기를 바라며. 타데마의 그림 속 명제인 '그녀의 눈은 그녀의 생각과 함께 있고 한편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 고 했던, 그림 속 복잡했던 명제가 의외로 단순히 내게 다가온 것처럼. 너에 대한 슬픔과 서운함은 내 눈과 생각에 함께 있었으나, 시간과 함께 그들은 멀리 떨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다시 괜찮게 잘 지내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오늘까지 괴로운 것은 시간 속에서 지울 것이고 아름다운 것만 남길 것이라는 이기적 욕망을.



나는 여전히 기대한다. 그것이 무력한 기대여도.







#Source : Lawrence Alma Tadema,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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