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하기에

Frida Kahlo

by 헤븐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안하고 또 자책스런 감정에 휩싸이는 날은 어김없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 쉬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지 못했다는 자책. 돌봄의 그릇이 너무나도 작은, 유리멘탈 마냥 깨지기 쉬운 한 순간의 자신을 향한 원망. 내 안에서 아이들보다 모자란 어른의 모습을 발견할 땐 매번 자신이 싫어지곤 한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이런 것이다. 이윽고 되돌아보는 것. 바람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복기하며 눈을 질끈 감고 단호히 선언하는 것. 그리하여 오늘 아이들에게 걱정만 끼쳐던 행동들에 대해 참회할 것. 용서를 제대로 구할 것을 다짐한다. 내 '사랑'이라 칭했던 아이들을 향해 진실되게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또한.



인생을 돌파해 나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가끔 궁금해진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답을 구하려 애쓴다. 주로 책의 세계로 기웃거리지만 그림을 알게 되면서는 마음에 들어온 작품들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건넬 때가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그런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을 전해준 잊을 수 없는 세계였다. 그녀의 그림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의 슬픔과 아픔이, 씻기지 않는 고단함이나 연속되는 피로함, 혹은 조용하게 강한 분노와 같은 것들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또 작아지고 만다. 더 큰 아픔을 지닌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이의 모습에서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고 마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Henry Ford Hospital, 1932 by Frida Kahlo



"Espero alegre la salida y espero no voler jamas"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그녀의 일기장 속 죽음 이전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한다. '행복하게 떠날 수 있길.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길.' 원 없이 살았기에 미련 없단 생각을 했던 걸까. 아니, 그보다 원 없이 고통받았기에 이제는 편안히 잠들고 싶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 인생은 그 자체가 고통이고 슬픔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만다. 태어난 신체 상태도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지만 성장기에 더 큰 사고로 인해 그녀는 약 반년 이상을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몸이 '부서졌다' 고 말할 정도의 신체적 결함이 생긴 일생일대의 사고. 그 앞에서 그럼에도 그녀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 없었고, 교통사고라는 첫 번째 대형사고 이후에 '리베라'라는 배우자를 만나 그야말로 '두 번째 대형사고'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부부의 이야기에 함언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녀에게 그를 향한 사랑은 애정이자 증오의 대상, 고통의 원천이자 결핍에 강력한 화력을 표출하게 만들어 준 이라는 것은 분명하듯 싶다. 최소한 그녀들의 작품을 쳐다보고 있자면.



위의 그림 '헨리 포드 병원에서'는 그녀가 피와 출혈이 된 채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인상이 짙게 묻어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하나 같이 그녀 '자신'의 내면 혹은 외면을 그려낸다. 어쩌면 프리다에게 '병원'이라는 공간은 친밀하고도 익숙한 곳이었을 터. 그림 속 여성의 몸은 뒤틀려져 있고 침대 또한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어딘지 모르게 무력함과 단절된 느낌이 더해지는 것만 같다. 살펴보니 이 그림은 특히 프리다가 '헨리 포드' 병원에서 실제 유산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누가 알겠는가... 겪어본 이들만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 이 고스란히 그림을 통해 전해질뿐이다...



A Few Small Nips, 1935 by Frida Kahlo


한 일간지에서 '연인을 몇 번 건드렸을 뿐인데' 라던 살인마의 문장에서 큰 영감을 얻어 그렸다던 그녀의 이 그림은 보자마자 눈을 감게 만드는 압도적인 인상을 심어 준다. 법정에서 살인마는 말했다 한다. '나는 그녀에게 약간의 입맞춤을 해 줬을 뿐이다'라고. 누군가에게 몇 번의 '별 것 아님'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휘청거리게 할 만큼의 파동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망각하며 사는가. 그리하여 이 그림은 내게 하여금 오늘 나의 말 한마디, 움직임들, 심지어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보였던 표정들마저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어 마음을 따끔하게 만들 뿐이다...



The Two Fridas, 1939 by Frida Kahlo


프리다는 디에고를 열렬히 사랑했다. 확실히 그러한 것 같다. 아이를 원했고 그녀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의 애정과 애증 사이를 오고 간 것 같다. 그러나 제 아무리 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 한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디에고라는 남자는 무심함을 넘어 파렴치한에 가까운 난봉꾼이었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이후, 그녀는 이 그림을 완성했다 한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자신만을 그린다' 했던 프리다는 유독 자신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는데 이 초상화에서 보이는 '두 명의 프리다'는 두 모습의 자신의 자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정갈하고 기품 있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 옆의 또 한 명의 프리다는 파란색 멕시코 전통 의상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두 여성 모두 '심장' 이 보이고 그 보이는 심장이 마치 '마음'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얀 옷을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찢어져 있다. 그녀의 하얀 드레스에 계속 피가 뚝뚝 떨어지고 출혈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 그리고 한 편의 프리다는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다. 구름으로 가득 찬 폭풍우 치는 하늘은 마치 프리다의 내면의 혼란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 같다.



The Wounded Deer, 1946 by Frida Kahlo


어딘지 모르게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림은 여전히 계속된다. 어린 사슴을 프리다 자신의 머리로 사용한 이 그림은 화살 다발들에 그야말로 치명상을 입은 자신을 담담히 드러내는 것만 같다. 주위 배경은 죽은 나무와 부러진 가지가 있는 숲으로 공포와 절망의 느낌을 암시한다. 그리고 저 멀리 번개가 치는 폭풍우가 보이는데 저 한 편의 파란 바다가 얕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지만 그럼에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먼 이상향에 그쳐 보인다.



1946년 프리다는 뉴욕에서 척추 수술을 받았고 그녀는 그 수술로 심한 요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그림은 수술에 대한 그녀의 실망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고향인 멕시코로 돌아온 후 그녀는 심각한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우울증을 동시에 겪었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생각해보자면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프리다에게 사는 내내 삶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고 도전이었고 숱하게 돌파해내고 끝없이 내리 눌려져야 했던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프리다 칼로가 정말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당당히 그림으로 자신의 척박한 내면과 현실을 반영할 용기를 낼 수 없었겠지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가능한 것들... 그럼에도 사랑하려 애썼기에 가능했던 것들이었을 것이라고.



짧은 생이었지만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림을 생각해보면 기어코 살아내려는 어떤 강인 함들이 느껴져서 절로 숙연해지고 겸손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윽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다시 지닌 현실에 감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움직일 수 있는 척추. 보이는 두 눈. 키보드를 누를 수 있는 열 손가락의 존재. 화상 입지 않은 멀쩡한 피부. 크게 아프지 않은 몸. 숨 쉬어지는 심장. 아직 온전한 신체들. 그러니 무엇이 부족해서 나는 가끔 빠져나오지 못하는 짙은 우울에 잠식당하고 마는 것일까. 부끄러운 것이다. 최소한 프리다 칼로를 떠올리면. 그래선 안 되는 것. 오래도록 서글펐다가도 정신 차려지게 되는 것...



밤 열 두시가 지났다. 아이들의 곤히 잠든 얼굴을 보며 다시 다짐한다.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우리들이 이렇게 연을 맺고 만난 것 자체에 큰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은 슬프고 울적한 표정과 목소리를 보여 준 엄마로 인해 불행해진 너희들이었다면 나라는 인간은 반드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며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그것이 어른의 특권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니.



오늘. 아니 요즘. 이런 형편없는 '나'로 인해 적잖게 신경 쓰고 눈치 봤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용서를 구할 생각이다. 요즘 자주 삐그덕 대는 엄마여서 너무 미안하다고... 자비롭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해서, 여전히 너무 부족해서 미안할 뿐이라고. 이 시절, 때때로 삶의 어느 순간부터가 고통이고 어디까지가 기쁨인지 사실은 나누지 못한 '엄마'는.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그래서 쉽게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Source : Frida Kahlo, Painting, Woman


https://en.wikipedia.org/wiki/Frida_Kah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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