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 Gabriel Gilbert
판교역 북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평소처럼 가방에서 갤럭시 버즈를 꺼내서 귀에 꽂고 핸드폰을 열어 멜론을 실행시킨 후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아마 그때쯤부터였을 것이다. 갑자기 울컥했던 것은. 왜였을까. 괜한 자문을 해보고 만다. 일시 중지되었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재생시켰을 뿐이었는데. 나름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저 늘 마주하던 판교 테크윈타워와 카카오 아지트의 말쑥한 웅장함과 신호등을 건너는 우르르한 사람들 뿐이었는데. 게다가 나는 고등어 튀김과 불고기, 북엇국에 오징어채 볶음. 이렇듯 아이들 저녁 반찬과 식재료도 미리 잘 준비하고 출근해서 걱정 없는데.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엄마를 환대하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텐데. 난데없이 분당 심박수가 급속도로 올라가며 동시에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 일 없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임에도. 아니다. 이젠 평소와 정말 다를 것이 없다고는 명징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과 기억은 대체로 설명할 수 없는 맥락 없는 것들의 연속일 수 있겠다. 게다가 나로 말하자면 꽤나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생각의 원천적 단초조차 찾을 세 없이, 다가오는 감정과 이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확증편향적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자체적으로 휴리스틱에 빠져 버리다가 종지부를 찍고 마는 것이다. 심박수의 증가와 갑자기 터져 나오던 눈물의 원인에 대해서. 그것은 뇌의 시상하부로부터 발산되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분출에 어떤 이변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중추신경계가 잠시 삐그덕 거린 탓인지 세로토닌 저하로 인함이라고. 나는 그렇게 뇌에 지배받고 있다고 믿으면서 어떤 생각의 지배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었음을 자각하고 만다. 그것은 마치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네 옆에 있는 사람'으로 인한다는, 몹시 사적인 얄팍한 귀결...
추석 전후로 남편의 시술 날짜를 잡고 대기 중이었다. 추석을 무탈히 지내고도 사실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입퇴원 수속과 서류, 몇 가지 보험적 과정과 처리를 사전에 촘촘히 알아보는 시간 동안, 수술이라고 할 수 없는 시술에 불과하며 입원이라고 차마 말하기 낯부끄러운 당일 약 10시간 정도의 과정 앞에서. 나는 어떤 각오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 기대지 않을 심지. 배우자에게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의 삶을 존속시킬 수 있을 경쟁력을 자체적으로 더욱 발굴해내야 한다는 묘한 각오. 배터리 방전 상태에도 급속 충전시킬 줄 아는 두터운 정신력. 괜한 감정들로 인해 마냥 휘청거릴 수는 없는 노릇임을 너무 잘 아는 생활적 인간으로서 최적화된 나는 그래서 입술을 자주 깨물게 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일시 정지될 수 없기에. 내내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여야 하기에.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인생의 난장판 속에서도 충만한 수혜자로서 사랑을 입어야 하는 귀한 존재라는 인식이 너무 확고해서. 내 삶의 유일한 좌표이자 무게중심이 돼 버린 인식에 가끔 환멸과 허무를 느끼지만 어쩔 순 없다는 것 또한 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던 빅터 가브리엘 길버트. 그는 가난한 화가였다 한다. 야간 수업을 겨우 들으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주로 생활적 생동감 있는 인물과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작물의 수확기를 담아낸 그의 '추수'라는 작품을 바라보며 화가가 일상의 현실적 모습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림 속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대다수는 어쩐지 여인들의 모습만이 다소 보이고 말아서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결국 보이지 않게 생활과 시간을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주요 인물들이 바로 '여성' 일 수 있기에. 댁 내를 지킬 뿐 아니라 집 '밖'에서도 강인하고 끈질긴 생활력을 자랑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 간접적으로 지켜보며 나는 무언가 낯설지 않음과 동시에 측은하면서도 무언의 동료애를 느끼게 되고 만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실을 맺으려는 결심이야말로 아마 그녀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사실주의 화가였던 그는 여러 생활 속 일상 장면을 주로 담으려 했다 한다. 특히 그림 소재로서 채소나 생선을 파는 시장의 상점들이나 그중 특히 꽃이 소재가 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인 화가의 섬세함을 살펴볼 수 있겠다. 단순히 그림이지만 묘하게 문학적 문장을 떠올리거나 가려진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 속 '꽃장수'와 '꽃 시장의 파리 사람' 은 특히 나로 하여금 어딘지 다정하고 아름다운 색채에서조차 역설적을 피어나는 생의 가혹한 우아함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보기엔 평온하지만 내면은 혼탁할 수 있음을. 휘청거리듯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견고하게 삶을 유지하려는 인간이 지닌 모순적 의지의 생명력을. 조용한 그림 한 장이어도 여러 문장들은 이미 마음에서 피어나 내게 다가오고만다. 굳게 다문 그녀의 입술이 세상 밖으로 발화하고 싶었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상상하면서.
몇 달간 한약과 양약에 번갈아 의존해도 별 수혜를 얻지 못한 채 나아질 기미 없이 고장 나기 일쑤인 그이의 여러 신체적 통증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기묘한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만다. 그리고 사실 그 감정은 아쉽게도 여전히 지우기 쉽지 않은 나날을 지내는 중이다. 드러낼 수 없는 고단한 슬픔과 번뇌는 속에서 삭히고 또 삭힌채로, 반대로 겉으로는 더욱 씩씩하게 나름의 성실한 내조와 지원과 조력을 소화해내며 그야말로 남편의 성실한 서번트로서 충실히 기능했음에도. 왜 신은 이런 내게 묘한 슬픔과 분함을 기꺼이 안겨 주시고 마는 것인지. 어쩌면 그래서일 게다. 다시금 새벽과 저녁에 연신 달리기를 결심한 이유는. 자체적으로 셋업한 KPI에 맞춰 MBO를 달성해내기 위해 그야말로 주어진 24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더더욱 밀어붙이고 있다는것 또한. 새벽과 점심 그리고 늦은 밤, 아이들과 안전하게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는 하루 중 틈새 시간들을 촘촘하게 합하여 도합 평균 하루 약 2시간 총 16km 가량을 매일 땀 흘리며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내가 탄생된 것도. 모두 그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신 덕분에, 아니 사실은 자꾸 휘청거리는 나 때문에. 내가 건네는 사랑에 화답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마는 어리석고 미련한, 여직 연약하고도 무른 이런 나로 인함이라고...
남편은 나에게, 그리고 나도 그에게.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뇌에서 분비되게 만드는 트리거가 확실하게 되어 주지는 못하게 되어가는걸까. 물론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정말이지 괜찮을 수 있다. 알기 때문이겠다. 내가 알기 때문에. 당신에게 접속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남편과의 모든 시간을 여전히 촘촘히 기억하며 살기에. 사랑하고 증오했던, 분하고 분노했던, 기쁘고도 슬펐던, 격렬히 달궈진 채 뜨겁다가도 금세 식어버려 차가워졌었던, 설레고도 안타까웠던, 당신이 내내 걱정돼서 혼자 눈물 흘렸던, 여전히 당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마는. 그 모든 '우리' 로서의 명징한 시절은 내게 절대로 잊힐 수 없는 것이기에. 그이가 내 세계로 처음 랜딩 했을 때, 우리의 관계는 탐닉과 탐색을 거쳐 각자의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샘솟게 만드는 적확하고 무결한 유일한 대상이었음을. 나는 또한 알기 때문에 앞으로의 보이지 않는 모든 '우리'의 시간들 또한 괜찮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그 어떤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선언한다. 앞으로 어떤 생경한 시간을 목도하고 탐험하게 된다 하더라도. 분명 괜찮을 것임을.
기억의 적은 시간일 뿐이니까. 오랜 세월을 함께 흐르며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그렇게 각자의 빗장이 풀어진 채 남겨지는 시간은 현실적 생활. 그리고 생겨버린 우리 세계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침입자 두 명. 그들을 돌보고 서로를 아끼다 서서히 먼저 고장 나기 시작한 한 사람의 몸. 그리고 천천히 식어가는 또 한 사람의 열정. 우리가 된 이후의 생활적 시간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섹시하고 아름답게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쯤. 이제 너무 잘 아는 나이에 다가가고 있음을 안다. 그이가 처음에 나로 인해 발산했을 열정적 에너지는 '가족'이라는 롤플레잉 안에서 장기간에 걸친 결속감 높은 결합관계로 다져지며 그로 인해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었음을.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금 그의 누그러진 감정을 살아나게 만들, 당신 눈에 보물 같은 누군가가 다시 발견될 수'도' 있음을. 증빙되지 않은 심적 실체는 그저 '만약'의 세계에 머물지라도. 그이의 손에서 언젠가부터 떨어지지 않는 핸드폰을 보며, 나는 그에게 선언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되도록 예의와 책무를 다 해 줄 것을.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차분해 보이지만 활활 끓는 마음으로. 그리하여 남편의 차에서 발견된 그 어느 날의 구찌 향수에 대해서. 그 어떤 코스매틱을 사용하지 않는 유저였음에도 난데없이 발견된 그 생소한 물건의 정체성 앞에서 굳게 입을 다물었던 나는,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이런 나를.
기꺼이. 마침내. 당신이 그럴 수'도' 있음을 내가 충분히 이해할 것도 같기에. '네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타자로 잠시 대체되는 순간이 온다한들 오늘의 생활들에서 달라지는 건 절대 없을 것을. 그리하여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면접교섭 신청권이라든지 양육권이라든지 조정대상기간이라든지와 같은 단어들은 모조리 무효할 것임을 내가 확실히 알 것 같기에. 반면 당신에게는 성실한 조력자이자 생활적 파트너이자 필요하다면 '시몬 드 보부아르'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사실 충만할 수 있을 인간이 바로 네 옆에 '있었던' 사람인 이런 '나' 임을.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댁 내외에서 기꺼이 나의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헌신하는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비롯한 나의 세 사람을 아직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일까. 판교역 북편에서 난데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모두 덕분이라는 것. 당신의 시술이 잘 되었다는, 퇴원하고 집에 간다는, 내내 전화 한 통 받지 않고 톡의 숫자 '1' 이 꽤 길게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나의 일상을 여전히 궁금해하지 않는 당신으로부터 기어코 무심코 전달된, 늘 그래 왔던 수분기 하나 없는 건조한 문장들 덕분이라고.
화가의 또 다른 작품인 '휴식' 은 잠든 한 여성의 옆모습이 담긴 초상화다. 제목대로 정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 찰나의 시간은 결국 그녀로 하여금 일종의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말았다. 온갖 소음과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혼탁한 심신은 그대로 잠의 세계로 초대되어 자신에게 기꺼이 헝클어질 여유를 주는. 그렇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 없는 듯 가지런히 모은 그녀의 예의 바른 깍지가 껴진 손가락은 왠지 모르게 애잔함을 전하며 동시에 그 모습 그대로 더욱 빛나 보인다. 그녀의 고결한 사랑스러움을 화가는 알아챘을까. 그리고 스스로 약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물 같이 찬란한 인간이라는 걸 발설하지 않을 것을. 당신은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그것을 발화하는 순간 약속은 서로에게 구속이 되어 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맞다. 약속은 착하고도 살벌한 구속이 될 수 있을 테다. 특히 유자녀 기혼 관계 속에서 매듭지어진 '우리'의 시간은 온화한 구속의 관계로서 그로 인해 탄생되는 책무 및 의무감이라는, 완벽하고도 화평해 보이지만 속내는 비루하고 때때로 처참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또 지키며 살 수 있는가. 사적일 수 있는 개인의 이런저런 생의 선택 사이에서 구속된 관계야말로 스스로에게 형편없는 말뚝을 처박아버린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면. 바꿔 말하자면 실존적 주체인 개인이 기혼 및 돌봄 시장 안에 참전한다면, 단체 안에서 붙들리며 자기 자신의 돌봄 - 성적, 심적, 정신적, 신체적, 그 모든 면에서 - 을 최적화시키거나 활성화시킬 잠재 가능성과 자율적 선택권을 말끔히 포기하게 만드는 영특하고도 교활한 덫에 빠질 수 있음을 철저히 각오할 것을. 물론 이런 금기시될 법한 생각을 활자로 기어코 뻔뻔하게 구사해버리고 마는 잔재주를 지닌 다소 위험한 발상의 여자가 또한 당신이 선택한, 절대 멍청하지 않은, 꽤 똑똑한 아내라는 것을. 그이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무지한 당신에게 여전히 어떤 마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의와 화답을 제대로 갖출 것을. 아내 혹은 남편이라는, 각각의 배우자는 당연한 존재가 아님을 똑똑히 인식할 것. 멍청하고 무식한 인간들이나 가족이 당연한 존재라고 착각하며 산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할 것. 아내가 건네는 평범한 매일의 안부 문장을 내내 흘려버리며 침묵했던 것을 당신이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침에 건네는 잘 씻겨진 사과 한 개. 늘 말끔히 정돈된 깨끗한 집. 냉장고의 가지런히 정리된 식재료들. 느슨한 투자자로서 넉넉히 쌓이는 중인 계좌 잔고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증빙으로서의 정기적 공유가 투명한 가계부, 계절에 맞춰 정돈되는 침구와 옷장, 독화살 같은 문장 대신 귀여운 농담이 오고 가는 네 사람의 식탁. 무엇보다 건강과 영양에 큰 지장 없이 잘 자라주고 있는, 여전히 돌봄은 첩첩산중이지만 그만큼의 의미가 충만한 귀한 우리의 결실인 아이들의 성장. 그리고 한 여자... 일 욕심 탓에 여전히 호기심과 상상력 스위치를 꺼뜨리지 않으려 분투하는 그녀는 에로스의 프시케이자 오디세우스의 페넬로페, 그리고 고디바 부인이자 한편 모든 걸 파괴시킬 매혹적인 공격성을 잠재한 키르케나 세이렌이 될 수도 있음을. 그녀 자신은 알고도 모른 척 한 채 자신에게는 여전히 가혹하고 혹독한 잣대를 기준삼는, 당신 옆에 있는 사람. 네 옆에 있는 사람은, 바로 나...
그리하여 당신은, 네 옆에 있는 사람에게 화답하며 제대로 챙겨야 할 것이다. 당신의 신체적 건강과 가려진 만약의 세계 속 또 다른 네 옆에 생긴 사람을 챙기는 딱 그만큼 아니 그 이상 더 확실하게. 그렇지 않다면 레이디 고디바는 충분히 세이렌이자 키르케가 될 진심을 발휘할지 모른다는 걸.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모를 테지만, 네 옆에 있는 사람인 나는... 알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안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까.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게 되어 버린, 선(線) 앞에 선 채로 그대로 멈춰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나의 아이들만을 조용히 떠올리고 마는, 그러다 판교역 북편에서 갑자기 울어버린, 끝나지 않은 나의 이야기이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될 것이고 네 옆에 있는 사람은 결국 나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을 것을 알기에. 당신과의 처음과 끝, 출발부터 착륙, 서로의 세계에 깊숙이 랜딩 하기까지. 그 모든 것을 세심히 아끼고 기억하며 활자로 파괴시켜버리다가도 지난한 시절의 그리움을 영원히 텍스트 안에서 박제시킬 수도 있는 유일하게 유니크한 여자는. 당신으로서는 이런 재주 많은 나뿐일 것이다. 절대 대체될 수 없는, 무결하고 유일한 사람. 네 옆에 있는 사람. 실은 당신이 아니어도 스스로 충분히 빛날 수 있는 감춰진 보석... 그러니 놓치지 말 것. 반드시. 절대로.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_Gabriel_Gil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