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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7. 2024

봄날의 산불 같은 존재

교수님 면담 후... 

5/26 오후 2시 30분 - 4시 

정음의 지정의 이신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분과의 ㅅ 교수님과 부부 면담을 했다. 정음의 향후 치료 방향과 현재 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주 골자다. 고위험군인지 저위험군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미지수라는 의견. 우선 대비를 위해 고위험군 기준으로 후속 치료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생존율 50%. 그야말로 우선 생사와 관련된,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항암, 또한 필요시 고용량 항암 화학 치료가 될 것이라는 점. 그 과정은 통상 입원 하며 진행하는 3일짜리 a 플랜과 낮과 늦은 오후까지 출퇴근 형식으로 통원하며 진행하는 5일짜리 b 플랜. 물론 그것들을 투여 후 7일 정도엔 빈크리스틴이라는 약물이 투여될 것이라는 정보는 별도 레퍼런스로 타 유경험자 분들께 들어서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ab 플랜의 각 회차수를 3번 반복 (a/b/a/b/a/b). 총 6회에 걸친 항암 투여 후 정음의 회복 수치 지켜보면서 방사능 (아마도 양성자)를 하게 됨. 그리고 중간에 조혈모 채집을 하고 말미에 조혈모세포이식도 치료 과정 중 한 부분. 



다만 모든 치료가 그러하듯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반드시 후유증과 부작용이 동시에 야기되고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치료해 봤자 라는 이야기. 사실 교수님의 다음 문장이 가관이었다. 



‘부부를 부른 건 이 설명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두가 궁금해할 의학적 치료는 모두 껍데기에 불과해요.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 얘기를 하려고 부른 겁니다.’



죽고 사는 문제, 즉 생존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학적인 방법에 불과한 저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껍데기’라는 것. 물론 글로벌 탑 수준의 본 뇌종양 치료는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생존율을 끌어올리고 각종 부작용을 극복해 나가는 데 필요한, 정음을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었다. 



‘감염’ 



그렇다. 백혈구와 적혈구, 그리고 혈소판 등, 항암을 비롯한 후속치료를 해 나가면서 앞으로 정음은 각 혈액 내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백혈구. 이 놈은 마치 ‘군사’와 같은 데 이 수치가 떨어지면 감염에 취약하고 면역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어서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치사율이 높아지는 것. 



그리하여 전체 백혈구 중 호중구 (ANC) 수치를 늘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호중구 감소 상태에서 만약 정음이가 38도 수준의 발열이 나면 언제나 위험. 재빨리 응급실로 와야 한다. 다른 감염의 동반 증상인 통증, 발적, 종창 등도 당연히 요주의. 항암 치료 환자의 감염의 위험은 호중구 감소의 정도와 기간에 비례한다...



듣는 내내... 여러 감정과 이성적 행동수칙이 떠올랐다... 





의학과 부작용이 다가오는 건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다 하셨다. 맞는 말씀. 즉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이건 ‘운’과 정음의 회복 및 받아들여지는 상태에 따라 달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것. 그리고 이것이 도리어 의학 요소보다 더 중요한 치료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점을 단호하고 엄격하게 말씀하셨다. 



노력 (부모의 관리) 



노력으로 생존율을 비롯한 부작용의 사전 방지를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바로 ‘간병 관리’ 다. 그중에서 감염되지 않게끔 정말 각별하고 신중하게 노력해야 할 것. 마치 델타 코로나 시절에 우리가 누누이 지켜왔던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것. 그것도 아주 빈번하고 일상적으로. 



삼성서울을 찾는 수많은 정음과 같은 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아들이 급히 응급실에 오거나 자칫 잘못되는 건 둘 중 하나란다. 열이 나서. 기타 관리하다 잘못되어서. 가령 가슴에 달린 히크만 카테터가 빠진다거나 관리하다 감염되거나 혹은 너무 늦게 발열됨을 알고 찾아오거나 기타 등등.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암환자는 ‘봄날의 산불’ 같은 거예요. 



봄은 좋은 계절. 아무도 위험을 주의하지 않는 호시절.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 의해 불이 나기 시작하면 한없이 급속도로 번질 수 있기도 하다는 것. 일반인과 암환자가 다른 건 바로 그것. 감염에 너무나도 취약하고 면역력이 급속도로 떨어져서 모든 질병과 감염에 노출되기 쉬운 존재. 그리하여 모순적이나 ‘병원’이라는 공간이야말로 너무나도 정음에게는 안 좋은 공간이니 어느 정도 검사와 입원 항암플랜을 개시하면 바로 퇴원 조치를 하시겠다는 말씀... 



0802 병동 밖, 우리의 창가 쪽 자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 공간은 그러나 너에게 사실 매우 좋지 않은.... 감염되기 쉬운 곳...






면담 이후. 저녁을 먹다가 급히 뇌 MRI 호출이 내려졌다. 그리고 다기 돌아와 저녁 7시 늦은 저녁을 먹고 좌욕을 시키고 정음을 말끔히 씻기던 도중 4일 만에 첫 대변을 보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박수를 치는 나. 지친 정음은 그대로 몇 십분 만에 취침... 나머지 뒷정리를 하고 나는 정음을 바라본다. 아주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가면서 동시에 생활밀착형 현실적으로 다시 불호령이 떨어진다. 일단 퇴원 시 바로 거주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원래 친정 근처로 가려했지만 병원과 너무 멀다. 병원 근처 아니면 현 거주지 동네의 엘리베이터 있는 곳이 필요. 계획은 다시 변경된다. 근처 소형 평수 아파트의 전세 물건을 알아본다. 약 1년에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치료 기간만큼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음과 나는 '격리' 하려 한다. 



무균실 까지는 아니겠지만, 격리하며 철저히 관리함을 목표로. 쌍둥이 형제가 있기에 그리고 정음은 형제를 너무 보고 싶어 하기에... 나 또한 자주 집을 왕래해야 이것저것 챙길 수 있다. 정음을 챙기는 데 집중하겠지만 현재 내내 부모 손에서 벗어나 있는 훈민 또한 너무 큰 걱정이다.. 본 병 때문에 알게 된 딸 쌍둥이 부모님과 현재 교신 중인데 그분 왈, 나머지 자녀도 나름의 정신적 타격이 있을 거라 여간 초반에 고생하셨고 여전히 고생하시고 계시는 중... 






우리 가족에게 들이닥친 이 난제. 

봄날의 산불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네 앞에서. 


나는... 이제 울지 않기로 한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으며 멍청이 같은 짓이니까. 마치 말로만 하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사랑해 미안해'라는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네게 정말 필요한 '행동'과 '노력'을 더 하려고 할 뿐이다. 열그래프를 더 촘촘하게 해 보려 한다. 1시간에 한 번은 기준이지만 되도록 자주. 30분에 한 번씩. 열이 안 나는 것 같아 보여도 언제 발열될지 모르니. 초반 루틴을 잘 잡아야 한다. 모든 건 습관이다. 기본에서 시작된다... 이 열만 잘 잡아도 널 살릴 수 있다 하셨으니까..



새벽에도 그리는 루틴을 잡아놔야겠다. 잠을 좀 더 줄여볼까.... 피곤함이 좀 가시면 나아지겠지...



노력. 감염 예방. 



죽을힘을 다 해서 지켜내야 한다.... 

온몸은 여전히 긴장 중이고 더 긴장하고 있다... 



5월 27일. 오전이 밝았다. 7시. 너는 아직 자고 있고 나는 내내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찾고 배우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연습하는 중이다... 오늘부터 항암 시작이라 했으니. 



네가 견뎌주면 좋겠다..... 

내가 잘 버티길 바란다................. 



네가 자고 있을 때도 체온계를 들고 지켜보았어.... 잘 버텨줘..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용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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