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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5. 2024

항암 시작

MTX 항암제 5/24 오전 9시 수술 시 주입 

5/24일 오전 8시. 

정음은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삼성서울 와서 잠 못 자는 게 조금씩 줄어지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자마자 여러 검사들을 받기 위해 이동침상 타고 이리저리 굴려지는(?) 덕분에 체력 저하로 인한 피곤함 때문이리라. 이 날은 요추 천자와 골수 검사, 그리고 히크만 카테터 밖은 날.. 수술 동의서에 3종 세트 수술에 대한 사인을 하면서 동시에 긴장을 한다. MTX 항암제가 요추 천자 하면서 처음으로 주입되기에... 



5/24일 오전 9시 수

수술실 입성. 아직 잠에서 덜 깬 정음이는 일어나자마자 '이 뭣꼬'라는 생각일 수 있겠다. (도리어 그렇게 담담히 생각해 주기를 바라며...) 


입실해서 보낼때 한번 울고. 회복실에서 한번 또 울고; 이놈의 눈물...



입실하는 정음과,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틈새 시간을 이용해 정음 돌아오면 깨끗하게 눕힐 침대 위 시트 정리 등을 위해 잠시 병동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병동으로 가는 도중... 나는 눈물이 왈칵 흐를 뻔했다. 엉뚱하지만 복도에 걸려 있는 '그림' 때문이었다..'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3층 수술실에서 1층 본관으로 내려와 8층 별관 병동으로 향하는 연결 통로에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었다. 정음과 나는 지금 어떤 '구름' 안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구름 안에서든 밖에서든 '함께' 한다면 뭐든 상관없겠다 싶은 생각... 떠오르는 여러 장면들 때문인지 눈물이 자꾸 흐를 것 같은 걸 굳게 참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삼성서울병원 별관 1층 연결통로, 전시



5/24일 오전 10 35분 

수술 끝 회복실에 있다는 정음의 메시지가 문자로 도착. 바로 회복실 앞에서 노크를 한다. 보호자임을 확인한 후 비로소 정음과 만난다. 아직 마취로부터 덜 깨어난 호흡기를 끼고 있는 정음을 바라본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나는 말을 건넨다. 


'엄마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 정음아. 아침부터 고생이지? 별 거 아니야. 앞으로도 별 일 아니야. 엄마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다 괜찮아질 거야. 정말 별 일 아니야. 별 거 아니야. 잘했어. 정말 잘했어... '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잘못 살아왔어. 미안해.... 나 때문에 여전히 이렇게 되어버린 거 같아서. 자꾸 울고만 싶어 져서. 대신 아플 수 없어서. 미안해. 미안해.....  



눈에서 흘렀던 것 같은 눈물자국을 보니 마음이 미어진다.... 언제나 누워있는 네 모습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5/24일 오전 11시 30분 

병동으로 다시 입실. 정음은 약간의 통증과 기분 저하 때문인지 짜증을 낸다. 밥을 먹을 수 없고 2시간 동안 꼿꼿한 자세로 누워만 있는 게 여간 불편하다는 신호일 거다. 연신 등과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럼에도 아이 앞에서 웃으며 겨우 달래고 또 달랜다. 곰탕을 먹고 싶어 하는 정음에게. 마카롱을 꼭 먹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2시간만 지나면 곰탕과 마카롱을 먹게 될 거라고 하면서.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사 가지고 오실 거라고 다독이면서. 



5/24일 오후 2시

친정어머니와 잠시 교대를 한다. 아마 정음은 곰탕과 마카롱을 잘 먹고 있을 거다. 그동안 진주에서 올라온 남동생을 만난다. 아주 잠깐 몰래 정음을 보고 나온 동생은 이미 눈이 빨개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여러 말들을 건넨다. 현실적 이성적 향후 고민에서부터 감성적 위로 등등에 이르기까지. 동생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병 예후, 생존율, 기타 후유증과 장애, 이후의 진행 과정 등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친정어머니께 전화가 온다. 신경외과로 이동해야 하기에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동생과 잠시간의 만남을 마친다. 



5/24일 오후 4시 ~ 11시 취침 

신경외과로 가서 정음의 션트 위치와 압력 조절을 한다. 스트라타 1.0. 앞으로 정음의 기준이 될 수치. (2차 기관에서는 션트 종류와 수치 기준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었다.... 여기로 와서 부랴부랴 전화해서 알아낸 정보. 순발력 신속성 정확성 등등, 앞으로 정음 케어하기 위해 더 바짝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 그 이후 엑스레이 등을 찍고 병실로 이동. 가슴에 달랑달랑 달린 주사줄이 여간 신경 쓰인다. 한번 더 긴장. 옷 갈아입히는 것도, 자세 돌아 눕히는 것도 사실 모든 것들이 이제 더 조심스럽다; 앞으로 저 히크만 카테터로 항암주사가 들어가겠지? 저걸 붙이고도 일상생활 - 거동 목욕 등 -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니지. 잘 해내도록 만들어 줘야지. 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요추 천자를 하면서 MTX 항암제를 주입시켰다. 생각해 보면 이제 막 항암 시작인 기분이다. 척추에 전이가 된 걸까. 여하튼 열은 무엇보다 쥐약. 열체크를 한다. 이젠 2시간에서 되도록 1시간 간격으로 하는 중이다. 먹는 양과 배설량 등도 체크. 무엇보다 감염 및 청결 주의를 하기 위해 나는 여러 잔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어떻게 생활해야겠다는 일종의 행동강령이 세워진다.... 석식을 마치고 아이를 조금 달래고 변비약을 먹이고 안 나오는 똥 때문에 잠시 또 히스테리적 짜증을 부리려는 아이를 겨우겨우 달래고. 




오른쪽 가슴팍에 달린 히크만 카테터... 두 줄 달랑달랑. 볼 때 마다 심장 떨리게 만들 것 같다...



정음이 잠들면 나는 노트북을 연다. 소아암 관련 지원 제도를 찾아본다. 퇴원 후 항암을 받으러 다니기 위한 임시 거주지 지원 제도인 쉼터 제도도 알아본다. 지원자격이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정보는 모두 취합. 동시에 부동산 물건을 검색한다. 현 거주지는 엘베 없는 2층 계단 때문에 거동 못하는 아이가 머무르며 병원 왕복은 힘들다... 친정 근처 경매 물건 알아본다. 권리분석 확인 후 입찰일과 입찰가를 고민한다. 동시에 현 거주지에서 병원 왕복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동시에 고민한다. 여러 옵션들을 열어 놓는다... 나의 간병은 조금 더 특별해진다. 그야말로 이슈 리스트를 만들고 트랙킹 하고 솔루션을 찾아내고 클로징 하기까지. PM의 마음으로.... 일처럼 대하면 그나마 좀 눈물이 덜 난다.... 내게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클로징 타임을 모른 채 그저 스테이지 1/2/3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려 나갈 뿐이다. 





5/25일 아침. 

정음과 인사를 나눈다. 오늘은 처음으로 좌욕을 했다. 허리 가눌 줄 안다면 손쉽게 했겠지만 정음은 혼자 걷지 못하고 앉지도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잔머리를 굴려 생각한 건 주사기를 이용해 좌욕을 시켜 주는 것. 지노베타딘 15ml 와 따뜻한 물 500ml를 용법용량에 맞춰 희석시킨다. 주사기에 주입시킨 후 항문 및 그 근처로 살살 발사. 그리고 거즈와 손수건을 이용해 깨끗하게 나름의 소독(?) 행위를 마친다. 뭔가 내가 다 개운해지는 기분...ㅠ 젖은 시트를 잽싸게 갈아주고 아이의 기저귀와 바지를 입힌다. 별 거 아니게 보이지만 하나하나 해 내는 데 온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쉬워지겠지... 



이거 하나 하려는데 얼마나 많은 how to를 고민했던지... 누워 있는 환자 간호하는 게 정말 쉽지 않지만. 뭐든 파이팅. 


아침을 거의 다 먹었다. 먹은 양을 모두 체크하고 기록표에 남긴다. 열체크는 1시간마다 수시로 한다. 밤에 37.8도까지 올랐지만 그 이상 오르지 않아 준 정음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 통증이 있을 것이라는 사전 예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통증 호소는 하지 않았다...


기록 남기고. 



뚝딱 한그릇. 아 정말 제일 감사함...



그리고 지금 10시가 지나가는 중... 아이는 잠시 낮잠이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간에 끙 소리를 내면 재빨리 정음에게 다가가 다독이고 묻는다.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는지. 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열을 체크한다. 기록하고 다시 정음을 바라본다. 다시 잠들어 있는 정음. 


열체크 좀 더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새벽엔 일단 좀 자야 해서. 그래봤자 2시간 연속 정도이지만. 불안해서 잠은 안 온다...




우리의 오늘 오후는 어떻게 흐를까. 뇌 MRI 가 남아 있는데 오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주말엔 교수님과 향후 후속치료 일정 및 정음 최종 개두술 후 상태에 대한 긴 면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차주 월요일에 본격적 항암을 시작한다 하셨으니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항암 시작. 

정음과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안개와 구름에 뒤덮인 길을 내내 앞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지만. 방향을 크게 잃지 않고, 설령 잃어버린다 한 들, 함께라면 무엇이든 다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나는 내내 중얼거린다. 아이에게 하는 말은 사실 내게 하는 말이었음을. 



별 거 아니야. 진짜 별 일 아니야. 다 괜찮아. 깨끗해질 거야. 별 일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정음아 그렇지..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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