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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3. 2024

긴급 퇴원과 재입원, 병원을 바꾸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혈액종양분과

5월 22일 오전 7시. 

회진이 곧 있을 시간이라 아이를 깨웠다. 간밤에 푹 잘 자 준 정음이 무척 고마웠다. 회진이 있었고 여전히 뱃속에 가스가 있으니 재활과 움직임을 해야 한다는 말뿐.. 속으로는 답답했지만 어차피 병원의 대리 외래진료를 잡아 두었기에 우선 가만 듣고 있었다.



오전 8시 30분

병원 조식을 먹이고 바로 원무과로 달려갔다. 미리 준비해 둔 의무사본 기록들 일체에 더해, 진료의뢰서와 진단서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정음에게 투여된 최근 일주일 치의 투약 기록, 검사 결과, 수술기록, 조직검사 결과, 조직 슬라이스, 영상 CD, 비염색 조직 슬라이스, 진료 기록지 등. 그리고 중간 병원비 정산 금액에서 산정특례가 적용되었는지 재확인. 그 이후 알파 문구로 달려가 모든 서류를 들고 복사를 해 두었다. 가족관계 증명서도 몇 부 준비했다. 미성년자의 제증명 시 보호자 신분증과 관계증명서는 필수. 그리고 오는 길에 커피빈에 들러서 커피 기프트카드 2매를 구매. 유일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신 친절하고 다정한 간호사 선생님 두 분께 드릴 선물이었다. 이상하다. 그런데 이 선물을 굳이 22일에 준비했던 나는 왜였을까. 이미 그때부터 급하게 퇴원을 하게 될 것이라는 본능적 직감과 예감 때문이었을까..



두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그간의 병원에서의 속상함은 조금 누그러질 수 있었다. 그 감사의 작은 표시...



오전 10시

아이와 휠체어를 타고 4층 작은 야외 휴게 공간으로 남편과 갔다. 먹고 싶어 하던 치즈케이크와 녹차프라페를 들고서 우리만의 작은 소풍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몰랐다. 그것이 우리의 퇴원 파티(?)가 될 줄은..



생전 먹지 않던 치즈케이크를 먹으려 하는 너였어..덱사메타손의 부작용인지 입맛도 바뀐 것일까; ㅎ





오후 12시 30분 

점심을 다 먹을 즈음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우리 부부는 타 병원 외래 진료를 곧 가야 하기에 잠시 교대. 막간을 이용해 정음의 몸을 샤워타월과 세정제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이마에 난 여드름들이 못내 안타깝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일까. 덱사메타손이 연신 투여되는 아이의 몸엔 이미 여러모로 부작용들이 행해진다는 게 느껴진다. 밤낮 바뀜 현상이나 성격 변화 등.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오후 2시

야탑역에서 수서역을 향하는 도로는 조금 막힌다. 그럼에도 수월하게 삼성서울병원에 진입. 그이는 주차를 하고 나는 먼저 내려 본관 병동으로 달려간다. 영상 CD 네 장은 분량이 좀 많아서 기기로 인식 불가, 별도 영상의학과에 맡긴다. 그리고 진료과에 정음의 이야기를 하고 진료 대기. 



오후 3시.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분과의 교수님을 뵈었다. 수모세포종 관련하여 성 교수님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신반의하면서도 국내 양성자치료센터는 유일하게 두 곳으로 알고 있고 그중 거주지 기준 삼성을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오늘부터 믿고 싶다...... )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오늘 일종의 '드라마'를 찍었다.......





교수님께 정음의 상태가 찍힌 동영상과 그간의 입원부터 수술 전후의 과정 맥락 등을 짧게 말씀드리고 몇 가지 질문들에 대답했다. 교수님은 미리 준비해 둔 모든 서류를 훑어 보셨고 말씀하셨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의 드라마는 시작되었겠다. 당장 오늘 입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 사실 전원을 간절히 원했기에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 그리고 아이가 수술 이후 2주 정도가 지났음에도 예후가 너무 좋지 않아서 전이를 예상하신다는 점. 재빨리 MRI 및 기타 등등의 검사를 다시 모두 하고 아이 상태를 확실하게 확인한 이후 후속 항암 및 양성자 기타 조혈모세포이식 및 재활 등등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점.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재빨리 퇴원 수속과 동시에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다시 와 입원 수속을 거쳐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일사천리로 모든 걸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사람은 때로 궁지(?)에 몰리면 엄청난 정신력과 실행력을 발휘시키는 걸까. 우선 전화로 친정어머니께 짐을 싸고 퇴원해야 한다는 노티를 한 이후, 간호사와 통화, 맥락 설명 후 퇴원 의사 밝히고 정음의 팔에 꽂혀 있는 주사 제거 및 기타 등등의 과정을 진행시켰다. 도로 위에서 전화를 하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일단 오늘의 미션은 무사히 입원해서 병실에 소프트랜딩을 하는 것... 일단 그것만 해도 숨이 턱턱.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자차에 태워 이송하는 게여간 식은땀이 났지만. 



해냈다... 5시 15분. 마감 15분 전 입원 수속 마치고 2인실 병실로 이동. 삼성서울병원 별관 병동으로 입실. 그리고 짐을 풀기도 전에 정음은 여러 가지 검사를 바로 받아야 했다. 우선 피검사. 주사 바늘과 만나고 그 이후 병동 생활 간단한 안내. 그리고 바로 저녁에 잡힌 척추 MRI와 엑스레이. 코로나 검사와 혈액균배양검사에 이르기까지. 



정음은 MRI 를 두려워했다. 눈물은 고였지만 그래도 수면처방 없이 잘 견뎌준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앞으로도 그러하기를....




저녁 11시. 

정음은 그제야 잠에 든다. 처음엔 잘 안 자려하다가 옆 실에 통증을 호소하는 형아의 목소리에 움찔 했는지 안대를 하고 눈을 감는다. 애착인형의 틈 속에서 아이는 잠들기 시작한다. 잘 자 주는 아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새벽 1시.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한다... 내일 오전부터 있을 검사를 생각한다. 뼈 골수나이 측정검사, 초음파, 심전도, 심장 초음파. 그리하여 정음은 내일 아니 오늘 자정부터 금식. 그제서야 나는 오늘 하루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겨우 샤워한다. 생각해보니 먹은 것은 물 뿐이어서 첫 끼(?) 인 바나나를 하나 먹는다. 배는 고프지 않다. 다만 목만 타서 물먹는 하마가 된 지 이미 오래; 






것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다. 퇴원을 이렇게 서둘러 갑자기 일찍 하게 될 줄 솔직히 정말이지 몰랐다..이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수두증과 개두술을 잘 해 주셨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너무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던 첫번째 병원이었기에 시원 섭섭.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의 성함은 잊지 않고 해당 병원의 고객의 소리에 '칭찬' 메시지를 등록했다. ) 그리고 이 곳...



새롭게 시작된 병원 생활. 앞으로 항암과 양성자를 비롯한 어떤 시간들이 정음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나게 스릴 있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 매일 그저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내자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20일만의 외출이 정음에게도 설렜던 걸까. 차로 이동하는 동안 아이는 말했다. '좋다' 고. 주사바늘이 꽂혀지지 않은 두 팔이 좋았을까. 아니면 걷지도 허리를 똑바로 세우지도,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휠체어나 병상침대에 의지해야 하는 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병원 '밖' 으로 나간다는 것이 좋았던 걸까. 아무렴. 그것이 무엇이든. 네가 좋으면 충분하고, 우리의 넥스트가 부디 좋은 선택이었기를 나는 지금 간절히 바랄 뿐이다. (시설도 시스템도 일단 너무 좋은 느낌...MRI 찍으러 가는 1 cycle 을 경험하는데도 사용자경험이 그야말로 이전 병원과 너무 차이가 나서.... 이래서 다들 상급병원 3차기관 찾나 싶다;) 



정음의 침실엔 웰컴키트가 놓여져 있었다. 안대는 탁월한 선택..... 통잠을 자는 정음..ㅠㅠ 진짜 감사하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는거야. 정음아. 엄마는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 설레 (사실은 긴장되....아주 많이. 엄청 많이...) 



2인실 병동 우리의 왼편엔 통창문이 있다. 그 창분 밖으로 하늘과 나무숲이 보인다. 그리고 오늘 밤엔 보름달이 떠 있다. 나는 지금 그 달을 쳐다보며 보호자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키고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오늘 하루 심장 쫄깃해진 채 이리저리 뛰어 다녔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보름달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이 곳에서의 시간이, 훗날 좋은 기억으로 자리하기를.

부디 널 최대한 지켜낼 수 있기를. 오래. 그리고 확실하게.  




2시간에 한 번씩 욕창 방지를 위해 정음의 자세를 바꿔 준다. 그리고 동시에 체온을 잰다. 열 체크를 하고 노트에 기록한다... 나의 새벽은 이렇게 흐른다. 이미 어제라는 하루의 공간과 시간은 다시 완전히 변하고 있다... 



보름달이 보인다. 소원을 빌었다. 정음을 지켜낼 힘과 운이...우리에게 생기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하게. 



#삼성서울병원 

#다시 새 출발선 

#정음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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