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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1. 2024

불안하고 분한 시간

어제도 아이는 잠들지 못했다... 일종의 섬망증상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하며. 경련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낮과 밤의 행동은 달라 보였다. 여러 문장들이 다가왔고... 여러 문장들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감기에 걸렸으니 목소리가 이렇다면서. 우는 게 아니라고 달래가면서. 입술을 꾹 깨물어 가면서. 내 아이지만 조금 두렵고 무서움을 견딜 수 없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또 미워하면서.



나 안 잘 거야. 절대 안 잘 거야. 나 안 잘 거인데 엄마는 자야 안 미쳐 

내 말 듣고 있지. 근데 엄마 내 말 안 듣네. 왜 내 말 무시해. 왜 안 들어. 

마음 넓은 엄마가 이해해 줘

엄마 우리 낳느라 힘들었겠다

나 무겁지 

똥이 안 나와! 숨이 안 쉬어져! 

빨리 밥 먹고 싶다 

밥차는 언제 와 

나 깨워 줘야 해 

아빠랑 영상통화 해줘. 아빠 불러줘 



달래는 데는 음식 이야기가 최고다. 먹는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낫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여러 음식들을 사다 나르고 있다.. 



우리 점심엔 병원밥 먹어 볼까 

응. 야채 많으면 똥 잘 나와?

그럼. 정음이 먹고 싶은 거 또 말해주면 엄마가 다 준비할게 

에그마요 

응 또. 

녹차프라페 

또.

초콜릿 과자 

초코송이랑 칸쵸 어때

그리고 찐만두

어떤 만두 먹을까

김치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는 매운데 괜찮아?

고기만두랑 군만두. 

그래... 그중에 우리 정음이 제일 먹고 싶은 게 뭘까 

녹차프라페. 에그마요 

그래. 먹자. 다 먹고 힘내 

에그마요. 초코송이도. 찐만두. 김치만두는 매우니까 고기만두. 



맛있지...먹을 때 만큼은 즐겁기를.... 병원생활을 정말 힘들어 하는 네게 내가 해줄 게 먹이는 것 뿐이다..... 





산정특례 등록이 되었다는 건강보험공단의 카카오톡 알림이 왔다. 그런데 산정기간 적용이 잘못되었다... 내내 불안했던 '그것'이 결국 오고 말았다. 입원일부터 적용되어야 비로소 암이라는 고위험군 보험 혜택 적용이 되는 것인데 (물론 그럼에도 비급여 상급 병실료 등은 지원되지 않는다) 현재 있는 병원에서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점 기준으로 등록을 한 것이다. 그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수 차례 간호사께 제대로 등록될 수 있도록 도움과 요청한 상태였지만. 서류 처리와 각종 원 내 시스템........ 여전히 너무나도 간병인으로서 아쉬운 부분이 상당수.... 아쉬운 놈이 우물판다고 다시 의뢰 접수. 그리고 수정 확인이 될 때까지 아마 이 불안함은 지워지지 않겠지. 느린 대응. 딱딱한 태도. 소아 배려가 되지 않는 병동. 몇 친절한 간호사분들 덕분에 겨우 견딜 수 있는 나날들... 



'전원의뢰서'를 요청했지만 오늘 회진 때 주치의와의 소통은 매끄럽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상담할 때 그분의 성향을 짐작했다. 물론 안다. 이래저래 묘하게 '눈치'를 보는 입장이 우리라는 것.... 가장 큰 분노 포인트. 아픈 아이 간병하는 것에만 집중해도 턱없이 모자란 간병하는 가족들의 심신 에너지는.... 정말이지 우습게도 병원 관계자들에게 눈치를 보면서 이거 저거 요청하고 확인하고 도움을 구하는 데에도 여간 에너지가 쏠리고 마니. 이게 옳은 걸까. 이게 맞는 일일까. DX 시대에 수납 등등의 병원에서 '돈 받는' 과정은 일사천리로 발전한다고 하지만 글쎄. 정말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함은... 그야말로 사용자 경험이 최악인 이곳에서는 여전히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치료도 치유를 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못하고 만다.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불안과 동시에 분노를 조장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연신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칠 뿐... 빌어먹을.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걸 믿고 있다... 기적 같이 감사한 분의 중간 도움으로 양쪽 병원의 교수님들께 아이의 상태를 알리고 무사히 전원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세팅을 해 놨다. 오늘 오전까지의 상황 종료... 



아이의 팔 엔 PICC 시술한 부분이 환복 하다가 빠져서 어찌해야 하는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급히 테이핑만 해 둔 채 간호사를 대기 중이다.... 물론 의사결정 및 실행할 수 있는 실행권자인 그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 오지 않는다. 나는 해당 부위에 감염이 두려워 다른 간호사께 계속 푸시한다. 아이를 좀 봐 달라고. 이렇게 해 놓고.......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 와중에 수액 주사를 놓아야 하니 아이의 여린 팔 엔 주사기 바늘이 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한번 찔렀던 부분이 아니라고 다시 다른 부위를 찌른다... 아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냥 담담히 한숨을 쉰다. 정음의 볼엔 눈물이 흐른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피가 말린다.......... 매일이 전쟁이고 재난이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 애간장이 타고 피 말리는 순간이다........... 인생은 모순이고 이토록 잔혹하다... 



이대로 둔 채 몇 시간째 방치 중... 이게 옳은 것일까....



정음은 그래도 호전 중이다. 이걸 호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입원하고 수술 후 내내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2일 전부터는 '죽식'과 병원 '밥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마저 성격 변화가 일어났는지 - 뇌간에 붙어 있는 잔존 종양 놈 때문에............ 아이의 성격도 공격적으로 변하는 걸까...- 아이는 밥 먹을 때 사나워진다. 겨우겨우 달래서 먹인다. 그리고 간식을 준다. 그리고 휠체어에 겨우 태운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들어 올리는 것도 여간 일이지만.... 그 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오늘 밤, 여전히 아이는 불안해할까. 어쩌면 내 불안이 전이되어 버린 걸까... 널 간병하며 넥스트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며 불안할 뿐 아니라 기타 등등등의 것을 챙기고 생각한다. 병원비 재확인. 친정집 장기적 이사, 집 내놓고 집 구하기,  전원 하면 자가집서 더 멀어지니 근처 원룸을 구해야 하나... 사특 수정해야 하는데, 이동 잘 되겠지. 항암과 양성자는 또 어찌 견딜까. 아이는 소아정신과 협진을 해서 멘털관리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을까. 머릿속은 쉼 없이 돌아간다. 맥박수는 올라가는지 심장이 뛴다. 다시 눈물이 흐른다. 아이를 바라본다. 오전 10시 30분. 아이는 잠들어 있다... 밤새 자지 않은 아이는 지금 잔다.... 낮밤이 바뀌었다..... 우리의 인생은 확실히 지층이 뒤틀린 채 바뀌어 버리는 중이다. 






불안하다.... 내 불안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 못한다. 아이 앞에선 씩씩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 


불안은 불안을 낳고 어느새 분함으로 변하려 한다. 그러나 이제 매일 하루 매 순간 해야 할 To do list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뿐이다... 샤워 타월과 엉덩이 부분의 발진 방어 세정제를 주문했다. 배송 확인을 하고 아이의 몸을 어떻게 하면 청결하게 닦아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동시에 전원을 잘해서 후속 치료 및 재활, 정신 상담 등등... 여러 넥스트를 생각한다. 


불안과 분함은... 끊김 없겠지. 

그러나 나는 느낀다. 이 불안은 결국 사랑이라고. 사랑해서 불안한 것이라고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니까............... 




밤에 깨어 있고 낮에 자는 너의 이 시절.... 우리의 지금은 많이 춥구나... 언제 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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