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28. 2018

잘, 자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했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빠가 미안하구나. 언제나 

그가 말한 것처럼 '언제나' 그의 목소리는 나를 흔들리게 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켜 마셨다. 이른 아침 아이들의 등원을 시키고 출근을 하는 차 안에서 '띵동' 하고 울리던 메시지 하나에 나는 참..  여전히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다. 

여느 가족들이 그러하듯.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집'이라는 곳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왔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 몇 가지의 사건들을, 안타깝게도 그와 함께 겪어 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마냥 그가 좋았다던 아기 시절의 기억은 단연코 없다. 사실 그를 은연중에 미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그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사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때론 생활기록부에 부모 직업 적는 란을 두고 괜히 혼자 고민을 했던 유치하고 미안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모자라고 못난 자식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노동자의 치열한 삶이 퍽이나 고달프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으니까.
짐을 실어 나르는 운전 노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못 먹고 못 자고 못 쉬어 가며 밥벌이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정말 뒤늦게 알았다.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지만,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새 그에게 날카로운 화살촉으로 비수를 꽂는 독한 말들을 뿜어냈었던 내가 존재했다. 아빠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곁에서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에 그냥 화가 나서... 화가 나서 그렇게 대들기 일쑤이기도 했었던 모지리 같은 시간이 있었다. 


아빠는 노동자였고 그는 여렸다. 이제는 안다. 그의 마음을.



거칠게 서로에게 닫혀 있던 우리 둘은 집에서 자주 충돌하곤 했다. 

서로가 참지 못했던 그 밤, 그에게 연신 두드려 맞던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인생의 큰 실수 하나를 저질렀다. 피할 수 있다면, 집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 버렸던 것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일정 부분은 도망치듯 정말 해냈다. 생각이 이래서 무섭다. 특히 나란 사람, 생각을 자주 현실로 끌어당기는 데 무슨 용한 재주라도 있는 것만도 같다. 때로는.. 

사랑해서 한 결혼은 분명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도 했지만, 또 다른 심연에서는 누군가에게 반항하고 싶어 졌었다. 당신보다 보란 듯이 더 잘 살겠노라는. 비겁한 이유가 서려 있었다. (그래서 그이에겐 언제나 미안함과 고마움이 늘 담겨 있다. 절대 말하지 못할... 비밀로 감춰져 있는 마음도 함께)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결국은 단 하나뿐인 나의 '아빠'에게.. 
결혼 후 내가 겪었던 반전은 바로 그것이었다. 멍들던 그 밤 이후로 다시는 그와의 연결은 없을 거라던 나의 오만한 다짐은 한순간 무너졌다. 기댈 곳은 '날 태어나게 해 준 가족'이라는 걸, 어떤 사람은 이렇게 참 늦게도 알아차린다.. 

몇 번의 수술을 겪어 낼 때마다 병상 침대에 누워있던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였다. 
금세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눈물이 고여 있던 그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다가 그의 손을 보았다. 갈라져서 엉망인 손톱엔 찌든 때가 묻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 운전하다가 씻지도 못하고 달려왔을 게 뻔했다. 손등에 듬성듬성 보이는 멍 자국과 상처들도 여전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 팽개치고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대신 울어줄 수 있는 사람...
같이 아파해 주는 사람... 
내 사람 이었다. 


결혼 이후의 시간을 위태롭게 통과하려 했던 딸이 휘청거렸을 때 달려와 준 건 결국 그였다는 것을 왜 나는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알았다면 지금의 내 삶이 변했을까. 잠깐 상상해 보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지금이 좋아서... 오늘의 이 마음이라면 충분히 괜찮은 시간이라고 믿고 있어서. 

생일 아침, 오늘 그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몇 통에 마음은 흔들린다.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한껏 물밀듯이 밀려와서. 그의 시간이 얼마나 아팠을지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미어져서 출근하자 화장실로 달려가서 화장을 고치다 가도 다시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간신히.. 정말 간신히 참아내며 서툰 화장을 고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 

나는 그가 때로 그립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때의 그가.
어느새 삶과 함께 부스러지고 마모되어 가는 그의 몸과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쩌면 
오늘을 잘 살아 내는 것. 그것일 테다. 그러므로 오늘만큼은 좀 더 웃고 기쁘게... 그러겠노라고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몇 번의 주고받은 문자 속에서 미처 그에게 건네지 못한 말은 마음에 담아 둔 채 하루를 시작한다. 

-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빠가 미안하구나. 언제나. 
- 뭐가 미안해.. 내가 고맙지.. 고마워요. 
- 감기 조심하고, 애들 보살펴도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 
-.....네 (그리고 있잖아 아빠...) 


이번 생에 당신들의 딸로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맙다고. 

그때의 우리들도 사랑이었고, 지금도 사랑...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가계부] 생각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