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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09. 2019

#7. 아무것도 아니야

냉정과 열정 사이 

오늘과 같은 이런 시간을 예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 냉정과 열정 사이 - 





(# 오후 2시, 혜연의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오후 2시 30분이 막 지나갈 무렵. 한창 원고 교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우를 낳고 어느 순간부터 직장 아니면 집. 두 곳에만 집중했던 나는 어떤 사회나 관계와 철저히 벽을 치고 지내야 겨우 살아지는 사람처럼 지냈다. 그랬기에 이 시간의 전화는 몇 가지를 연상케 한다. 인쇄소에서의 작업 실수를 알리는 전화, 외근 중 묻는 지현이나 유진 선배의 마감 일정 현황을 체크하는 시시콜콜한 질문들, 그리고 어린이집.. 



단언컨대 가장 피하고 싶은 전화는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다. 나는 전화기에 뜨는 상호명을 본 순간 심장박동수는 1.5배 정도 더 뛰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전화는 여전히 지우의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다. 어떤 말을 듣기도 전에 걸려오는 전화는 반갑지 않은 일을 알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일하는 엄마에게 걸려오는 전화치곤 오후의 전화는 그래서 무섭다. 



- 지우 어머니 여기 햇살 어린이집인데요

- 아 선생님. 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지우한테 무슨 일 있나요 혹시 열... 나나요 

- 네 어머니. 지우가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열 재보니 39도를 찍었어요 



아니길 바라는 것들은 통상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예상은 더 잘 드러 맞곤 한다.



- 아... 음... 네. 일단 제가 항상 해열제 싸 보내는데 그거 먹여 주시고요 

- 네 어머니. 바쁘지 않으시면 투약 의뢰서 적어 보내주시겠어요

- 네 선생님. 죄송.. 합니다...




죄송할 게 사실은 없는데 언제나 죄송하단 말을 달게 되는 자연스러운 대상. 

그 또렷한 대상 중 한 부류는 언젠가부터 지우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일까를 스스로 묻기 이전에 그저 그렇게 되고 마는 이상한 것들이 살다 보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령 누군가의 양육자로 살게 되는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면 두려움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은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자주 생긴다. 가령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 전화로 인해 원치 않게 흐트러지는 시간들 같은 것..




전화는 끊어졌고 다시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또다시 한 줄 두 줄.... 

이 메일을 쓰고 옆에 놓여있던 텀블러 안에 담긴 다 식어 빠진 얼그레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침을 삼킨다. 이미 일에 몰입된 이성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마르지 않은 물감도 금세 번진다. 떨어진 물감을 손바닥으로 스치면.. 번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 주간님 누군데 그래요? 

- 지우 어린이집

- 아... 가봐야 하는 거 아녜요? 저번에도 그랬잖아 

- 일상인데 뭐. 해열제 먹음 낳아져 

- 응.. 근데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어디 아픈 건 아냐?

- 아냐.. 별 일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때였다.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별 일 아니기를 바라던 마음은 사실 별 일일 것 같아서 애써 다독이는 내게 건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어머니..

- 아... 선생님. 열 안 떨어지나요?

- 네. 계속 칭얼대고 안 떨어지네요. 저희가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좀 안될 것 같아서요. 혹시 집에 누구 봐 주실 분 안 계신가요?

- 외할머니가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셔서....

- 네..



두 여자 사이의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수화기 너머로는 누군가의 정적을 깨는 대안적인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사실과 이 대화가 어서 끊고 달려가야 한다는 무의식적 본능만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지금 갈게요 

- 아... 괜찮으세요? 

- 네. 가야죠 제가.. 

- 네 지우 어머니 



전화가 끊어지고 짐을 꾸리고 가방 안에 차키를 확인하고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분함으로 마음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걸 애써 커지지 않도록 겨우 억누르며 스스로 미소를 뗘 보지만 순수하지 못한 미소는 언제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곤 한다. 부자연스러운 표정이다. 



그때였다. 


- 안녕들 하세요. 

- 와 대표님이, 아니 작가님이 여기 어쩐 일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미처 쳐다보진 못했지만 출판사 사람들이 반기는 걸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 도넛 좀 사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 사무실 간식 사다가 여기도 생각나서요. 같은 건물이라 다행이죠. 

- 와... 대표가 사 오는 도넛.... 그 회사 완전 부럽. 

- 어허. 지현 씨. 내가 언제 간식 안 사준 적 있나

- 네네 대표님. 과자 잘 먹고 있습니다. 덕분에 살이 토실하게 오르고 있습죠 

- 어... 근데 혜연 주간님은... 왜 일어나 계시는지

- 아. 주간님께서 지금 급히 집에 일이 생겨서 가 보셔야 해서요. 

- 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면 그대로 눈물이 흘러나와버릴 것 같아서. 

뻣뻣한 막대기가 연상되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땅 위에 꼿꼿하게 서 있다가 금방이라도 누군가 건드리면 곧장 그대로 쓰러질 것 버릴 것 같은 막대기.. 잠깐 일어난 채로 가방을 부여잡고 책상 위에 남아 있던 얼그레이가 들어있는 텀블러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가 말을 걸어왔다. 



- 주간님. 큰 일인가요?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드시고 가세요. 

- 아... 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 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가온 그의 곁으로 익숙한 스킨 향기가 풍겨 나왔다. 

심장박동수는 또 한 번 미친 듯이 울려 댄다. 그리곤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 가는 걸 본능적으로 직관한다. 그리곤 스스로 비난을 퍼붓는다. 



(지우가 아픈 와중에 지금 저 사람의 스킨 냄새에 굳이 이렇게까지 몸이 반응해야 되겠어. 미쳤구나 정혜연..) 




(# 드림타워 6층, 엘리베이터 앞)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걸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어떤 분함은 이제 스스로를 향한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띵동


6층에 멈춰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대로 무거운 몸을 엘리베이터 안에 꾸겨 넣는다. 문이 닫히려고 할 때쯤, 갑자기 다시 열렸다. 얼굴이 보인다. 진한 스킨 향기와 함께 



- 혜연 씨......

- 아...



그의 얼굴이 보이며 동시에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겨우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그대로 쏟아지듯 흘러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버티고 있을 때였다. 



- 괜찮나요..



속수무책처럼 이미 그렁그렁 맺어진 눈물방울이 폭포처럼 눈 밑으로 볼을 타고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다. 


- 아..... 

- 혜연 씨..

- 아무것도 아니...

-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문은 닫혔고 한 사람이 타야 하는 엘리베이터에는 어느새 두 사람이 타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화평하고 무난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삶에 교통사고가 생긴 것 마냥 어떤 선택 불가함 들은 이미 찾아오고 있었다. 감정은 내 것이 아니라 일단 수용한 후 조절을 할 뿐이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줄다리기는 한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려 하고 있었다. 


싫은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좋은 사람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아픔을 잊지 않으려 했다. 


인생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 싶은 사람처럼...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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