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물었다. 그리고 난 한 사람을 생각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프란츠 리스트 -
아침 출근길, 문득 작년 10월 미국에서 겪은 한 장면이 떠올랐었다.
왜 그랬는지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요즘은 별로 알려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유' 들에 대해서. 다만 그저 받아들일 뿐. 그래야 좀 더 편안한 '오늘'을 지낼 수 있기에..
어제 한껏 울고 자서 그랬던 건지.
감기 몸살에 제대로 걸려 버려 몽롱한 상태에서 신호등을 건너는 중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220번 버스가 멈춰 서 있는 게 보였다. 입고 있던 갈색 코트 깃을 꽉 부여잡았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 였다. 그렇게 달렸다. 그리곤 버스에 탔다. Soft landing 성공...
떠나려는 무엇을 잡기 위한 나의 발악은 대부분 충동적이었다.
버스를 잡기 위한 돌발 행동 덕분에 '더 찬 바람'과 마주했었다.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세도나에서 헬리콥터를 탔을 때 맞이한 미풍과는 전혀 다른 공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앉아있던 파일럿이 건넨 말이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도 충동적..이다. 하여튼 종잡을 수 없다. 기억과의 만남이란.
운 좋게도 헬리콥터 탑승 시 파일럿 옆, 맨 앞 좌석에 앉게 된 어떤 날이 있었다.
제복이 근사하게 잘 어울렸던 그는 시종일관 지루함을 표출하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 간격으로 매번 상기된 표정의 들떠 있는 관광객을 마주하자니 어쩌면 그로서는 당연했겠다. 지겨운 일상의 따분한 지루함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왼쪽 검지 손가락으로 버튼을 탁탁 치던 그는 언제 떠날지, 언제 하루 일과가 끝날 지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헬리콥터가 세도나 상공을 돌기 시작했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자연이 주는 위대한 장면들 앞에서 인간은 그렇게 한없이 작아진다. 함께 탑승한 일행들 모두 어느새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감탄하며 그렇게 몇 분을 저 멀리 닿지 않을 하늘 위 구름 밑에서 끝없이 작아진 세도나 전체를 바라보고 있던 중, 그가 상공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주요 spot을 설명하다 내게 말을 건넸다. 지금 누가 제일 생각나냐고.
엄마...
나는 그때 엄마라고 대답했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봐주고 있을 사람,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는 사람, 다 컸어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다 큰 딸을 대하는 사람, 나의 읽기와 쓰기를 열심히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나의 유일한 비빌 구석... 엄마.
'지금 생각나는 사람' 에게
집착하기 쉽고 기대고 싶고 바라기만 하는 나를 들켜 버린 것 같았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엄마를 이야기 했던 건 그녀가 정말 그 순간 그리웠지만 반대로 그녀를 향했던 비겁하고 어리숙한 모난 행동들을 떠올려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그만큼..아픈 만큼 사랑하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가방에 책을 담는 딸의 모습을 보곤 또 한껏 잔소리를 퍼부어 주신 한 사람과, 출근할 때 끝까지 안 떨어지려 매달리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한 사람과, 어제저녁 몇 마디의 말 섞음으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를 내 버린 미안한 또 한 사람.. 여전히 나의 '지금 생각나는 사람' 이고 그들은 이미 나의 '사랑' 이나 다름이 없다. 그 사랑이 아픔이고 미움이며 때로는 슬픔의 대상으로 변모할 지언정..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했던가.
그러나 그게 어렵다. 삶에 정신을 쏟고 있다 보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리고 어려워야 한다고들 한다. 어떤 기준과 양심의 잣대는 '삭힐 줄 아는 어른'을 원하기도 하니까. 어른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을 품은 채 나는 몸만 커져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일상의 수레바퀴에 떠밀려 살아가는 요즘의 삶이 언제든 불시에 끝나 버릴 수 있다는 무거운 진실만을
마음에 품고 살아보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지금 생각나는 나의 사람들을... 나는 좀 더 사랑하고만 싶은데, 그러기에 아직 내가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어서. 주기만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받기도 원하는 이기적인 나의 사랑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다고..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생각나는 그 순간의 사람' 에게, 나는 최선을 다하려는 탓에 흘러넘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투정도 부리고 화를 낸다. 표현을 하고 말을 한다. 삭히지 않고 마음을 쉽게 감추지도 '잘' 못한다는 반증이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생기지 말아야 하는 유쾌하지 않은 어떤 감정들을 감추거나 검열하거나 때로는 없는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삭힐 줄도 아는... 당신들이 바라는 어른이어야 하는데. 내가 아직도 그렇지 못한 철딱서니라서. 미안하다고... 나는 차마 면전에 대놓고 울면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아침. 버스에서 혼자 내내 중얼거려 본다.
그래도 지금 생각나는 사람, 당신이라고...
울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생각나는 건 오늘. 바로 당신이라고...
#의식의_흐름_엉망진창_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