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너희들의.
산다는 것은 이렇게 안개 낀 밤보다 그러니까 더 지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 고등어 -
쉬지 않고 유모차를 밀었다.
오월의 하원길은 언제부턴가 그렇게 변했다. 마치 계절을 뛰어넘듯, 벌써 여름이라도 되었다는 걸 미리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온몸은 진작에 땀범벅이 되고 만다. 잉글레시나 트윈 스위프트에 올라 탄 아이들은 정면을 보며 서로 깔깔대고 장난을 친다. 그리고 나는. 울먹였다.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눈물이 부쩍 터져 나오려 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나를 발견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을 연출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그때. '소통'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언어구사력을 가진 그 아이들이.
'엄마 힘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것도 '먼저'. 그것도 두 번을 연달아서. 어린이집에서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목이 쉬어 버린 누군가가 그럼에도 자신들을 향해 있는 힘껏 '안녕. 기다려 줘서 고마워. 오늘도 엄마랑 잘 가보자'라는, 그 애씀의 목소리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럴 리 만무하지만)
힘내
이 목소리가 들리면 결국 웃어 버리고 기운 차리는, 그야말로 강철체력에 씩씩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도 나는 눈물을 흘린다. 얕고도 깊게, 방울방울이면서도 때로는 줄줄. 보통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은 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자주 생기는 편이다. 특히 '소통' 이 가능한 연령으로 자라나고 있는 요즘 들어 부쩍 더.
있는 힘껏 꽉 안아주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들은 상냥하고 투명하다.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그 용기 가득한 우렁찬 음성 덕분에.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고 마는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신 세 시간의 부산스레 움직여대는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는 시간들을 거쳐. 밤을 맞이한다.
이런 밤. 삶의 무게가 이토록 생생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키보드를 연다. 그리고 어떤 것들을 기록해낸다. 때로는 과거의 시간, 때로는 허구, 때로는 맥락 없이 그저 열망이 가리키는 대로 대충 적어내 보는 문장들. 이 열중할 수 있는 시간들은 위안이 되다 어느새 밤 12시를 지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결국 갑자기 아주 쓸쓸한 기분과 조우한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읽다 만 책의 구절이 떠오르는 밤이 부쩍 잦아지는 요즘.
아주 잠깐은 도망칠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누군가의 필체로 쓰인 여러 이야기들을 읽음으로 인해, 스치는 감정들을 진정시킬 수 있음에. 예컨대 외로움, 소외감, 절망감, 상실감, 분노심 같은 그런 감정들을 얼른 위장하려는 듯한, 애씀이겠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 생생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는 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 긴 듯한 시간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_오늘도_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