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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6. 2019

이토록 생생한

목소리.. 너희들의. 

산다는 것은 이렇게 안개 낀 밤보다 그러니까 더 지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등어 





쉬지 않고 유모차를 밀었다.

오월의 하원길은 언제부턴가 그렇게 변했다. 마치 계절을 뛰어넘듯, 벌써 여름이라도 되었다는 걸 미리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온몸은 진작에 땀범벅이 되고 만다. 잉글레시나 트윈 스위프트에 올라 탄 아이들은 정면을 보며 서로 깔깔대고 장난을 친다. 그리고 나는. 울먹였다.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눈물이 부쩍 터져 나오려 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나를 발견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을 연출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그때. '소통'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언어구사력을 가진 그 아이들이. 

'엄마 힘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것도 '먼저'.  그것도 두 번을 연달아서. 어린이집에서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목이 쉬어 버린 누군가가 그럼에도 자신들을 향해 있는 힘껏 '안녕. 기다려 줘서 고마워. 오늘도 엄마랑 잘 가보자'라는, 그 애씀의 목소리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럴 리 만무하지만) 



힘내 

이 목소리가 들리면 결국 웃어 버리고 기운 차리는, 그야말로 강철체력에 씩씩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도 나는 눈물을 흘린다. 얕고도 깊게, 방울방울이면서도 때로는 줄줄. 보통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은 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자주 생기는 편이다. 특히 '소통' 이 가능한 연령으로 자라나고 있는 요즘 들어 부쩍 더. 



있는 힘껏 꽉 안아주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들은 상냥하고 투명하다.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그 용기 가득한 우렁찬 음성 덕분에.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고 마는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신 세 시간의 부산스레 움직여대는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는 시간들을 거쳐. 밤을 맞이한다. 



어둡기만 한 밤 같아도, 빛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결국 빛을 보기 마련이겠다. 



이런 밤. 삶의 무게가 이토록 생생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키보드를 연다. 그리고 어떤 것들을 기록해낸다. 때로는 과거의 시간, 때로는 허구, 때로는 맥락 없이 그저 열망이 가리키는 대로 대충 적어내 보는 문장들. 이 열중할 수 있는 시간들은 위안이 되다 어느새 밤 12시를 지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결국 갑자기 아주 쓸쓸한 기분과 조우한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읽다 만 책의 구절이 떠오르는 밤이 부쩍 잦아지는 요즘. 

아주 잠깐은 도망칠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누군가의 필체로 쓰인 여러 이야기들을 읽음으로 인해, 스치는 감정들을 진정시킬 수 있음에. 예컨대 외로움, 소외감, 절망감, 상실감, 분노심 같은 그런 감정들을 얼른 위장하려는 듯한, 애씀이겠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 생생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는 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 긴 듯한 시간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도의 바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돌고래 가족이 있을까.. 그곳은 지금 어떨까. 



#그러니_오늘도_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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