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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7. 2019

기다림에 필요한 것

그때 알았다. 예정된 통속이, 유치가, 신파가

때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 그들이 사는 세상 -





누가 그랬었다.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아웃라이어라고.

고마웠었다. 그 '인정'의 목소리가. 한 때, 혼자가 아닌 다수와 함께 일상을 섞여야 살아지는 그런 '어른의 삶'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개성이 말살되고 때로는 숨죽여야 했고 그러므로 인해 답답했을 때. 혼자만의 솔루션은 다행히도 있었던지라 (읽고 쓰는 일련의 행위들, 지금 이런 시간들까지도 전부) 살 수 있었다. 헌데 그런 나에게 타자의 '인정' 이 들렸을 때. 나는 정말이지 기뻤다. 그리고 이상하게 믿고 싶어졌다. 그 타자의 마음을. 굳이 애써서 어떤 색깔이나 감정을 애써 감추거나 죽이려 하진 않아보기로 했지만, 다만 반대로 이런 노력들도 함께 생겼다.



'일부러 드러내려고는 하지 않아 볼 것'

헌데 이 또한 모순적이게도 본의 아니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짜인 각본 안에서'만' 움직이는 듯한 영혼 없는 발언들이 아니라, 언제든 '그 상황에선 누구나가 그런 말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무참하게 파괴하거나 비틀어서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말썽꾸러기' 배우인 것 마냥. 어제 나는 그랬다. 요즘 들어 대화의 핀트가 많이 틀어진다. 갑자기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는 그를 향한 여전한 얄궂음과 서글픔이 서려있기 때문인 걸까.



투명하게 보이는 것들은 가릴래야 가려질 수가 없는 것 아닌가..



8시, 아이들의 치다꺼리에 한창인 시간이었다.



- 어? 왜 지금 들어와?

- 안 좋은 소식이 있어.

-.... 출장 언제 가는데. 내일이지. 얼마나 가는데.

- 어떻게 알았어?

-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당신.. 힘든 거 아니까. 내가 모르지 않아서. 하필 같은 회사 같은 사업부... 그래서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살아 주는 게 나의 최선이야. 그런데 오늘은 조용할 수가 없네. 속상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 고마워. 미안하다. 빨리 떠나자... 나도 요새 같아선 그러고 싶다.

-... 캐리어. 미리 담아놔. 그래야 내일 아침에 조금이라도 아이들 얼굴 더 보지. 당신이 후회할 게 그려져서 그러는 거야. 한창 둥이들.. 너무 예쁜 이 시간. 같이 오래 못 있는 거. 당신이 후회할 거야. 그게 속상해서..



아이들이 아빠를 찾느라 달라붙어준 덕분에, 아슬아슬하면서도 미지근한 대화는 끊어졌다.

마지막 한마디는 내뱉지 않았고 하지 못한 채. '다른 속상함 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나가겠지만, 지나가지도 않는 것 같아'라고. 마음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종소리처럼 나지막한 울림으로 번진다. 그 소리가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마냥.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읽지도 쓰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걸 다시 느꼈다. 울렁거림이 찾아왔지만, 다시 괜찮아질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생각들 덕분이리라.



'오늘, 기다리던 날. 금요일... 기다렸던 날.. '



어떤 드라마 대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일상은 이렇게 아주 작은 기다림들과 그로 인한 기대들로 인해, 그리고 때론 유치한 이유를 굳이 대면서까지 기쁜 감정을 찾다 보면 정말 기뻐지기도 한다는 것을. 가령, 그이의 출장으로 인해 우울감이 도달하려 즈음에, 그럼에도 괜찮을 있는 가지의 사유들을 굳이 찾아낸다. 그러면 애써 흔들리는 마음에 약간이라도 구경하는 기분으로 이성적으로 다시 흘릴 있다. 마치 어두운 방에 하나를 다시 키듯.



기다림에 필요한 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만 남긴 채.

그리고 나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한다.. 다만 '기다림' 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선명히 떠오른 채. 뭘 기다리는 걸까를 애써 외면한 채.



화분은 창 밖으로 나가 세상을 바라보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예뻤지만 동시에 슬퍼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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