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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3. 2020

당신이 사라진다면, 나는 괜찮지 않을 겁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나의 죽음이 너의 페달을 밟게 한다. 나의 죽음이 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 






재작년, 하나의 대상을 향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1주에 한 편씩 '친애하는 내 당신에게'라는 브런치 북을 공개적으로 쓰던 그 해. 초고와 편집을 거쳐 '글 올리기' 버튼을 누르고 나면 언제나 남는 건 알 수 없이 차올라 흘릴 수밖에 없는 '눈물'이었다. 회한이든 후회든 사랑이든 연민이든 그 과거를 향한 그리움이든 미안함이든. 그것은 결국 '사랑',  그 당신이 지칭하는 대명사의 주인공인 '친정 엄마'를 향한 '사랑' 때문에 흘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흐름출판, 2020.01.21.



그래서였을까. 이 책이 너무 고마웠다. 

다시 한번 실존과 현존의 소중함을 '죽음'이라는 고백을 통해 잠시 잊고 있던 삶의 본질적 깨달음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었기에. 책 속  '엄마'를 향한 '눈물 폭풍' 만화 에세이는 감히 표현이 쉽지 않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정확히 내려주는 것만도 같았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엄마가 위암 말기라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던 나는 망연자실해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들만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나는 간절히 엄마를 내 몸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유골을 먹고 싶을 만큼. 


아무 대답도 없고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가슴 저편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함께 끝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엄마, 내가 이렇게 슬프고 외롭다는 거, 엄마한테도 전해지고 있어?'




나는 왜 '엄마'를 향한 글을 쓰려고 했는지, 솔직히 선명한 이유를 딱히 찾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아마 마음의 목소리에 이끌려했던 자연스러운 행위였으리라. 글을 쓰려했던 그때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속, 온전하고도 완전한 비빌 구석은 결국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그녀였음을. 엄마를 향한 사랑을 이제는 드러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살아계실 때 하지 않으면 큰 후회가 될 것이니 안 되겠노라고. 우리들의 추억을 텍스트로, 문장으로, 그렇게 정제된 기록을 훗날 쌍둥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였겠다. '외할머니'가 너희 둘에게, 그리고 나라는 한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 큼의 나무 같은 존재였는지를. 아마도 그런 생각들 때문이리라. 큰 병은 없지만 여전히 잔병치레를 매달 달고 사는 여자. 다소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둥이 양육의 짐과 노고를 같이 덜어내려 애썼던, 나의 구원자... 친정 엄마를 향한 편지를. 



엄마, 나는 그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냥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백을... 말이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 했던가. 만약 그 기한이 물리적 '생'이라면, 결국 이 삶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특히 '사랑' 하는 대상과도 결국 마찬가지 아닐까. 한번 살아 한번 죽는, 죽음이라는 문 턱까지, 삶이란 그렇게 시간을 여행하고 그 여행 과정에서 숱한 경험들을 쌓아가는 것이니까. 그러하니 되도록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만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삶이 그리 쉬운가. 결국 인생은 고행이라 했던 현인의 말은 깊숙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반대로 그 고행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결국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 들로 인해 '나'는 성장하고 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는 것을.



그러니  '부모'라는 존재들은,  특히 '엄마'라는 사람들은 누군가들의 '사랑'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어리석게도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고 말기도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엄청난 안정감과 고마움을 '당연' 하게 생각하면서. 그 당연한 게 사실은 당연히 영원히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이 이 순간만은 어딘가 감동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바뀌어가는구나. 

오늘로써 모든 게 끝난다. 지금까지 해온 일도, 이 병실에서의 생활도, 엄마의 불안도 괴로움도 전부 끝나는 거다. 하지만 그전에 전해줘야지. 이게 마지막이니까. 빨리하지 않으면 엄마는 사라져 버린다. 


고마워, 고생했어요. 잘 가요.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요.

이 모든 것을 담아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엄마에게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전했습니다. 


엄마와 내가 이 병실에서 계속 기다려온 것.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험이었습니다. 




10년 전, 엄마의 병원, 그리고 지금, 시부님의 병원... 나는 병원을 다닐 때마다 무언가를 느낍니다.



사랑의 대상과 이별하는 날은, 부모와 이별하는 날은, 엄마와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처음부터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던 안타까운 삶도 있고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도 그 존재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저 받기만을 하며 자기 잘난 맛과 멋에 사는  삶도 있으리라. 전자가 아니라 참 고맙고 축복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후자였던 때는 아니었을까 싶어서 내심 반성을 해 보기도 하는 오늘. 문득 책을 다 덮고 난 이후 친정 엄마의 병 수발을 잠시 했었던 27세의 나를 떠올려본다. 미혼이어서 철이 없었지만 병원과 직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출퇴근을 병행했던 그 시절 덕분에 조금은 더 '어른' 이 되어 버린 내게 한없이 미안해했던 나의 친정 엄마의 한 마디가 여전히 떠오른다. 



'지갑 저기 있어 너 다 써'라고. 

나는 여전히. 정말이지 여전히도 친정 엄마의 그 그 목소리를 떠올리고 만다. 엄마를 생각하노라면 이제는 여러 추억들이 순식간에 스쳐가면서도 그 시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이 나는 건, 아마두 결국 우리 두 여자가 '모녀'로 인연을 맺어 서로를 위하는 엄청난 사랑으로 연결된 이번 생의 이 만남이, 당신에게는 참으로 고맙고 또 미안한 '나'라는 존재 같아서. 그런 인연이 아닐까 싶은 여린 마음 때문에... 그래서 그 인연이 서로 곁에 있을 때 더 잘 '사랑'을 드러내고 챙기고 지켜야겠다는 어떠한 비장함 마저도 서린다. 그러하니 오늘이라는 시간을 헛된 감정과 무 쓸모 한 에너지 소비에 울적해할 시간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마저도. 


태어나 살리고 보듬고 키우는 그 과정을 경험하니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엄마..



나는, 책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작가가 왜 '유골이 먹고 싶어'라고 느꼈는지의 그 감정을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이해할 것 같았다. 나의 꿈은 언제나 '엄마보다 일찍 죽는 것'이라 했던 천하의 무례한 꿈을 은밀하게 품고 지내보기도 했었으니까. (아직도 그러하다는 것은 비밀...이지만) 



엄마 덕분에 책을 낸 두 사람을 적어도 기억할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님과, 한때 홍대 팟빵 홀에서 오디오북을 녹음하러 없는 시간 쪼개고 또 쪼개어 달려갔던 그 시절의 나를. 오늘따라 다시 한번 글을 읽고 싶어 졌다. 글을 쓰고 말하며 '당신'을 생각했던 그 마음을 내내 기억하려고.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종이책을_내심_바랐지만_그래도_후회는_없습니다

#아직도_당신에겐_차마_말하지못한_이야기의_묶음입니다

#여전히_아직도_영원히_고마워요_엄마 




http://m.podbbang.com/audiobook/channel?id=177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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