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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9. 2020

인생에는 '특별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릴리와 옥토퍼스 

죽음을 속이는 데 인생을 다 써버린다면, 인생을 껴안을 시간이 남지 않아요


- 릴리와 옥토퍼스 - 





한동안 퇴사 에세이를 통해 꾸덕꾸덕한 마음을 달래면서도 

조용하게 조금씩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끊을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라도 읽어야 살 수 있었고 써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기에. '릴리와 옥토퍼스'라는 작품을 읽으며 '휴머니즘'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인생의 의미'와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기에 참 좋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매력적이고 좋았던 건 어쩌면 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좀 더 알려진 '작가'의 약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아도 결국 써야만 했을 그의 환경은 어떠했을지를, 아울러 그 작품 하나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기적' 이 여전히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 적 팩트를. 나는 여전히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흙 속에서 진주는 발견할 수 있노라고...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떤 '기적' 과도 같은 것들을. 




릴리와 옥토퍼스, 스티븐 롤리, 이봄, 2020.02.06.




프리랜서 작가의 삶은 어떨까. 

아직 알 턱이 없지만 여하튼 그의 '성과'는 놀랄만하다. 신인작가의 데뷔 소설인 '릴리와 옥토퍼스'를 통해 무려 12억 원이라는 금액의 계약, 5년 전 런던 도서전을 들썩이게 만든 이야기.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그리 세간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결국 책을 읽어보면 왜인지 알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자꾸만 그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작가' 로서의 꾸준한 활동, 의지, 그와 '운' 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들... 그건 결국 삶을 '사랑' 하고 '애도' 할 줄 아는 '박애 정신' 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마저도 글로 써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서... 릴리의 머리에 박힌 종양 (옥토퍼스) 마저도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고 또 서글픈 문장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을 지켜보자면. 




릴리의 나이는 열두 살, 사람 나이로는 여든넷이다. 나는 마흔네 살이고, 개 나이로 이백아흔네 살이다. (중략) 

릴리한테 옥토퍼스가 생겼어. 옥토퍼스, 머리에. 눈 위쪽에. 


그의 몸 왼쪽이 몇 달째 마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의사의 권유로 MRI 촬영을 한 뒤 아직 초기 단계인 옥토퍼스의 존재가 알려졌다. 


릴리와 옥토퍼스, p. 9, 32




껴앉을 힘... 그것도 '사랑' 일 테다. 그럼에도 앉고 싶은 감정은.



주인공 테드는 현실을 부정하며 공황장애를 겪는다. 

테드를 묘사하는 심적 문장들에서 익숙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대변되는 듯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상담사의 충고대로 '릴리'와의 이별 충격을 최대한 덜 받기 위한 '미리 애도' 하는 것을 주제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여도 릴리는 내 눈물에 키스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는 일 초도 낭비할 수 없다는 마음 한 편의 속삭임이 마비 상태에서 나를 깨워 문을 나서게 한다.  (중략) 


내가 거부할 새도 없이 그녀는 가버렸다. 누구도 우리에게 서류를 건네지 않는다. 앉으라는 사람도 없다. 누구도 내 강아지를 죽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소독 처리된 커다란 방 한가운데 서 있다. 불안과 슬픔에 둘러싸여 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발뿐이다. 


p. 85 릴리와 옥토퍼스 




전체적 스토리가 어찌 보면 굉장히 '빤'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토록 거액의 금액으로 계약을 해내고 이 신작을 계기로 작년의 소설 또한 각광을 받고 출간 동시 폭스사와 영화 판권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끌리는 이야기는 바로 '인간' 그리고 '사랑' '휴머니즘' '이별' '고통'과 같은 것들을 직시하고 비로소 그 직시 이후의 '성장'의 이야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대상이 '인간' 이 아니어도 비로소 어떤 '사랑'의 대상을 통해 그 '인간' 이 성장할 수만 있다면... '릴리'는 어쩌면 인간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을까. 




릴리가 죽은 지 한 달이 되는 오늘이 두렵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렇게 한 대 맞은 것 같이 멍할 줄은 몰랐다. 데이트 약속을 잡은 건 아마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그런 것이었을 거다. (중략) 


슬퍼하는 건 한 달이면 충분해 


나는 릴리와 말싸움을 하고 싶다. 한 달은 충분하지 않다고. 하지만 개의 시간으로 한 달은 일곱 달이고 이백 일이 넘는다. 그런 모든 것과 상관없이, 그녀에게 내가 하루를 슬퍼하는 것조차 너무 많은 것이다. 


릴리와 옥토퍼스, p.386, 394 




해가 뜨고 지는 것에 큰 이유가 없지만 그걸 대하는 우리들은 수많은 이유들을 부여하고 사는 것 같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고행이라 불리는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슬픔 또한 겪어낼 충분한 시간을 맞이하려는 자세를 생각해본다. 이 작가님처럼. 한쪽 눈을 잃은 유기견을 현재 기르면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그의 삶이 마냥 핑크빛은 아닐 테지만 그 인생을 되도록 잘 곁의 사랑들과 어우러 살아가려는 그 잔잔한 힘을 유독 상상해보고 싶은 요즘이다. 나의 어설픈 슬픔은... 그렇게 사라지도록 나는 여전히 갖은 애를 쓴다. 




읽고, 쓰면서, 아이들의 돌봄이 끊임없는 현재, 이 시간 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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