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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1. 2017

27. 사랑하고 있어.

비 오는 날을 핑계 삼은,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와 현재의 사랑 타령  


비 오는 날을 걸었다  

 오전엔 국민건강공단의 건강검진을 위해 반일 휴가를 냈다. 8시에 도착하여 9시가 채 되지도 않은 시간 내에 끝난 덕분에, 잠시 비 오는 오전 시간에 유유히 걷기로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보면 이상하게도 과거로 사라진 기억이 잠시 선명해진다. 아직도 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왜인지. 현재를 살기로 결심했으면서도 일상의 흐름 속에 문득 과거로 자체 타임리프 해 버릴 때가 있다. 아직 마음 수련이 덜 된 탓일 게다.    


빗방울을 보다 보면 갑자기 모든 게 흑백사진 처리 되는 느낌으로 과거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기억이 나서 그런가봐..

 

비상식 적인 사랑의 잔흔   

 아직 완벽히 잊지 않았다. 5년이 지나가는 지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빗방울이 내 눈물방울만 같았던 비 상식적인 내 사랑의 잔흔들이 나를 찾아왔다. 오늘은 그냥 내리는 비 탓을 해본다. 비가 내려서 그렇다고, 그리고 비가 그치면 또 없어질 거라는 위안도 함께.   


지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널 견딜 수가 없어


 참다못한 그가 내게 건넨 한마디였다.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 차가운 밤에도 비가 내렸었다. 새벽 3시쯤 되었을 게다. 5년 전의 나는 주방에 웅크려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게 까지 스스로를 자해하고 학대하지 않아도 됐었을 텐데,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하다니. 어쩌면 이미 과거의 나를 멀리서 지켜보게 된 현재의 나는 어느새 차가운 제 3자의 눈이 되어버린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해를 걸러 유산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나는 온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그야말로 너덜너덜하게 찢긴 종이조각 같은 나날을 보냈었다. 잊기 위해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던 그 시절. 내가 찾은 하나의 해답은, 우습게도 워커홀릭이 되어 밤낮 휴일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미친 듯이 해 치워 나갔다.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일을 하면서 쉼은 없었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산이 보인다. 그렇게 무작정 산을 넘기 위해서 부단히 움직임을 반복한다.

 나는 쉬는 법을 점점 더 잊기 시작했고 쉰다는 게 가능한 건지, 그 쉼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잘 몰랐다. 그렇게 부단히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쓸데없이 움직여지지 않았기에 당시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쉼 없이 움직인다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비상식적인 사랑의 방법이었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라는 게 어쩌면 타고난 태생이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체일지도 모르겠다. 만나고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삶을 반복해 나가는 우리들은 때때로 서로에 대한 오해를 제멋대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시절의 나도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었다. 오해가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진실이 되어버렸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 그는 날 사랑하지 않은 체 껍데기와 함께 사는 불쌍한 남자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러니 하나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에게서 위안을 얻고 즐겁기를 또 바랐다. 그와 함께 있는 내가 기쁘기를 바랐던 마음이 큰 탓이었다.   


내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는 기다리기만 했다는 것, 그래서 이젠 기다리기 보단 먼저 움직임을 택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가 달가워하지 않는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행동을 자주 하곤 했으니 예컨대 갑자기 밥을 먹다가 눈물이 흐르는데 그 눈물을 1시간 동안 흘려야만 했다. 처음엔 숨죽이면서 그러다가 중간에 가서는 꺼이꺼이, 눈물의 클라이맥스는 핸드폰의 집어던짐으로 1차 막이 내려진다. 액정이 깨졌고 이윽고 그가 참다가 화를 낸다.   


도대체 왜 우는 건데   
묻지 마 몰라
울지 좀 마....!
말하지 마. 우는 사람한테 그만 울라는 그 말. 최악이야
하아... 그만하자 안 통한다 정말 우리..


 나도 왜 우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아니 알고 싶지 않아서 굳이 그 이유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와, 그런 나 못지않게 그 또한 당시엔 말문이 막혔을 법도 싶다. 우리 두 사람은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나갈래. 집...
그래 나가. 나도 꼴 보기 싫어  


 정신없이 쏟아내는 모진 말들의 시간은 금세 주워낼 수 없다.


 관심종자가 되어 버렸던 것이었을까. 아주 유치한 어린아이의 장난 같지만 참 위험한 발언. 나는 그런 말들을 곧잘 내뱉는 생활을 잠시 지속한 탓에 상식적인 그와 비상식적인 나는 슬프게도 자주 부딪혀야 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다 보니, 난 결국 위험해졌다.   

 회사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그렇게 가면을 쓴 채 살아야만 했다. 웃으며 회의에 들어가서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이상하게 펑펑 울어야 했던 대리 4년 차의 나였다. 사람이 무서웠지만 드러내지 않으려 웅크리지 않고 있다가 혼자가 되면 어김없이 웅크려지곤 한 내가 떠오른다.


 일은 꽤 안전하게 진행했지만 내 삶은 불안정했다. 사랑을 너무나 갈구했던 나는 그때는 몰랐던 사실을 지금에서야 겨우 알 것 같다.   


사랑은 주고받는 끝없는 용서와 멈추지 않는 보살핌인데
닫힌 사람에는 주고받을 공간의 여지가 없다.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고 만다.


 닫혀 있는 나는 그에게는 위험한 여자였다. 건드리면 곧 깨져버리고 마는 가짜 감정을 만들어 내기 일쑤였으니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극복해 내려고 안간힘을 쓰기 위한 나의 두 번째 해답은 ‘쓰기’였다. 몸을 부단히 움직이는 일을 24시간이면 20시간을 해 나갔어도 좀처럼 쉽게 마음이 다잡아 지질 않았다. 그래서 입사 이후로 잠시 멈췄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한창 일 때는 등단을 꿈꿨기에 주야장천 소설을, 그러나 결혼 이후의 나는 살기 위한 끄적임 정도였을지 모르겠다.   


 기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멋쩍지만, 그래도 당시에 내게는 작은 기적의 시작이 됐던 것 같다. 첫 번째 책은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나의 단편적 모습을 지울 수 있게 도와주었으니 말이다. 꽤 상식적이었고 또 열심히 살아온, 그토록 바랐던 보통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내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엉망진창도 사랑하기 시작하니, 다시 새로운 사랑이 보였다.   

 형편없고 엉망진창인 나라도 말이다. 내가 나를 보듬어 주기 시작하고 조금은 애써서라도 일상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으려 노력이라는 걸 시작할 때, 기적은 작고 크게 찾아온다. 그렇게 믿게 되어 버렸다. 과거의 상처와 사랑의 삐뚤어진 형태는 현재의 내게 참 좋은 경험이 되어 주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감사한 깨달음이다.


 내가 나의 형편없음을 받아들이고 또 때론 그래도 괜찮다고 감상에 젖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엉망진창인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그래서 내가 형편이 없고 망가지면 온전한 네가 내 곁에 있어주고, 또 그가 때론 형편없어지면 내가 그의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힘을 다시 낼 수 있다. 그리고 또 일상을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숨 막히는 삶에도 쉼표가 찾아오고 결국 종지부가 찍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엄마가 되어서야 삶을 혜안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다시 생기는 듯하다.   


부재에서 찾아오는 그리움   

 비 오는 오늘, 아기의 등원을 어김없이 해내고 강남의 리츠칼튼 호텔로 외근을 가기 위한 버스에 탑승했을 그가 문득 떠오른 오전이다. 또한 같은 시간, 그 버스가 지나갈 정류장을 우산을 쓰며 지나가다 갑자기 버스를 하염없이 처다 보고 생각에 빠진 나는 과거를 잠시 추억해 본다.


 이렇게 우리 둘은 따로 그러나 또 같이, 흘러가 보고 있다.


 보고 싶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부재중인 순간에 문득문득 보고 싶어지기도 하니 사랑은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걸까.


떨어져서 걸어도, 평행선 처럼 걷고 있더라도, 결국 연결되어 같이 걸어가고 있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떨어져 있는 부재와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마주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되어서 오늘을 살고 있다. 새삼 기특해지려 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변한, 비 오는 오늘의 나. 비 왔던 과거의 차가운 내가 아닌 따뜻하고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차 버린 나.   


 그를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의 사랑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어 본다. 삐뚤어지지 않았다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사랑에 솔직하고 존중하고 보살펴주고 아껴주겠노라는 다짐도 함께 해 본다.

  

수족냉증, 기억해요? 기억해요.. 그럼 계속 기억해 줘요. 두고 두고 아낌없이.


 그건 반대로 나를 아끼고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반증일 테니깐. 일부러 힘든 생각을 만들거나 빠져들지 않으려고 나를 돌보는 중인 오늘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단순하고 솔직하게 주고받을 준비를 이제 마친다.


 비가 그치고 있다. 빗방울이 조금씩 약해져 간다. 다행이다. 그의 퇴근길과 나의 어린이집 하원길은 어제보다 상쾌할 것 같은, 그리고 어제보다 좀 더 있는 힘껏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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