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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22. 2020

소설의 첫 문장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해 내 글쓰기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더불어 내 삶의 첫 문장까지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소설의 첫 문장 - 




서른일곱 살, 지금의 나는 식탁 위에 앉아 지금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며 앉아 있다. 

그리곤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 속 첫 문장의 그 주인공이 바로 '나' 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절실히 품고 살기도 한다고. '서른일곱 살이던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던 그 '서른일곱 살'의 누군가가 언젠가의 '나' 이기를도. 




'소설의 첫 문장에 기대어 쓴 짧은 단상을 모은 책에 불과하다' 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우선 여러 문학 작품들의 첫 문장'만'을 읽는 즐거움, 그리고 어떤 문장은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어떤 문장은 궁금하게 만들어서 원작 전체의 내용이 뭐지 싶었고. 그러나 역시 최고의 즐거움은 그 한 문장에 기댄 채 전혀 다른 해석 혹은 전혀 다른 누군가의 은밀히 감춰진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 바로 작가님이 '잡문적 단상'이라 말씀하셨지만 나로서는 꽤나 유쾌하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책, 문장, 글, 사람, 삶과 같은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던 '소설의 첫 문장'이다. 


소설의 첫 문장, 김정선, 유유, 2020.06.30.





첫 문장이 강한 임팩트를 선물해주는 책은 대부분 고맙다. 

완독까지 즐거움이 가시지 않기도 하니까. 솔직히 중간에 지루할 법해도, 처음의 매력에 의지한 채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궁금했다. 과연 다음이 어떻게 될지'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문장'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첫 문장에서, 그 단순한 '궁금했다' 뿐 아니라 매 첫 문장을 대하는 이 분의 문장들은 묘하게 매력적이고 한편으로 근사하다. 별 문장이 아닐 수도 있지만 뭐랄까. 문장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내리는 뭔가가 있다는. 뻔한 말을 하지만 그게 전혀 뻔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 자연스러움이란. 이 분의 '동사의 맛'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글'에 대한 질투를 머금기도 한다. 글은 이렇게 써야 역시 맛이 있구나 싶은 마음에!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누구에겐 최고의 시절이 누구에겐 최악의 시절이 되고, 누군가에겐 지혜의 시대가 누군가에겐 어리석음의 시대가 되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건 모든 시대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는 것. 왜냐하면 '우리 시대' 이니까. 다른 이가 아닌 나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간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여러 사람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엄청난 모순을 버텨 내야 하는 시간들이니까. 


- 시대에 대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 이후의 또 다른 이야기들 - 



하루하루가 너무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방을 얻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내가 바랐던 것이 조용히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바로 그 하찮은 일상이었다는 것을. 실제로 혼자 지내는 하루하루는 참으로 조용했다. 동네도 조용하기 그지없어서 겨울에 문을 닫고 있으면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내 안의 저 요란한 아우성들을 잠재울 수 있는 조용한 나날들


- 일상에 대한,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의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기들 - 




첫 문장의 매력보다 사실 이 분의 시시콜콜한 일상 담론을 읽는 즐거움이 더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어떤 책들은 내용이 정말 궁금해서 찾아보기도 했던. 책이나 글은 그렇게 일상으로 스며든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간 기록' 이 책이라면, 바로 이 '소설의 첫 문장' 은 어쩌면 작가께서 '어머니'를 종종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 되지도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첫 문장 곳곳에서 작가는 결국 병원에서의 '엄마'를 떠올리셨듯이. 그 이야기를 읽고 나는 생각했다. 작가님은 그래서 책을 계속 읽고 쓰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그 모든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최선은, 다름 아닌 '글'이며 

누군가에게는 글 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유당'이라 행복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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