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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11. 2021

봄밤

I am tired of hiding how i feel

Every sign is telling me it's real...


- Spring rain, Oscar Dunbar -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무례해지는 것'

제인 오스틴의 말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세속에서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을. 여기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좀 더 넓고 포괄적인 범위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사랑을 한다는 것을 이성 간의 연애를 한다는 말로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왠지 그 혹은 그녀와는 멀리 하고 싶어 진다. 좁고 편협한 생각 같아서. 지극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어떤 단면만을 고집한 채 사는 것 같아서. 



연애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눌지언정, 자꾸만 연결되고 싶은 마음. 내 시간을 상대의 일상 안으로 밀어 넣어 버리고 싶어 지는 위험한 충동. 거침없이 파고들다 이내 상대의 시간 모두를 정복하고 싶어 지는 욕망. 한 시절은 그 '사랑'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려 했고, 또 한 시절은 상대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었던 때가 있었다. 봄이면 그 두 사람이 떠오르는 건 아마 그 사랑의 형태가 모두 봄에 시작해서 봄에 끝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봄'이라는 계절을 기억하는 이유는 입고 있던 옷의 가벼움과 어떤 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생각해보니 '오만과 편견' 이 맞았다. 

오래전 한 때,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무례해도 상관없었는데, 반대로 그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했다. 이십 대의 그 시절엔 유지될 수 없었던 사랑의 마음을 꽤나 오래 간직하고 지냈었다. 설령 다른 사람과 '연애'라는 걸 하고 있었음에도. 마음 한 구석엔 언제나 그를 '사랑' 하고 있었다. 이렇듯 연애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묘하게 알 수 있었고, 그때 어쩌면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인생은 절대 예측할 수 없고 지극히 역설적이며 모순의 연속이라는 것을. 



사랑의 모순은 서로 알아볼 수 없는 면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안다 생각했으나 알 수 없는 것. 



이십대 마지막의 사랑은 결혼으로 연결되었다. 

생각해보자니 그 해도 봄이었고 밤에 주고받은 대화 속 그이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는 건 어떤 환경설정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벤치와 캔맥주와 적당한 온도의 밤바람과 많이 만나보지 못한 '타인'이지만 낯설지 않은 편안한 사람. 육체의 교감 없이 의식이 교감으로도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그리고 결정적 문장... 예의 바르면서 단호한 마음이 담겨있다 느껴진 그이의 목소리는 나를 안심시켰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반대로 결혼 앞에서 어떤 기준들이 있었던 그 해의 나에게는 유일하게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했던 당신...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 결혼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다만 이대로 계속 볼 수만 있다면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 결혼... 하셔야 되는 나이 시잖아요.. 

- 내가 원한다고 그걸 상대에게 강요할 순 없는 거예요. 



남이었던 당신이 내 세계로 들어왔을 때. 



봄이면 언제나 어느 시절의 밤들이 떠오른다. 

그리운 순간은 한편 잡을 수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이고 재방송처럼 돌려보기를 할 수도 없는 순간이라 어쩔 도리 없이 아쉬움과 아픈 그리움만 움켜잡고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한껏 사랑하는 데 익숙하고 용기도 남달랐던 생기 넘치고 명랑하고 쾌활했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났다면 적잖이 실망하겠지만. 10년 전의 다정함을 여전히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것이겠지만.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무례해지기를 아직도 바라는 것이 바보 같은 생각이겠지만. 



가끔은 그 시절 어떤 목소리들이 마냥 그리워진다... 

봄밤이면. 더더욱. 





#BGM_Spring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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