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인생을 통째로 복습해도 알 수 없는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앎이 있으며
거기에 나의 진실과 향유가 걸려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 몰락의 에티카 -
야채 볶음에 새우젓을 양껏 넣어버린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PMS 기간 탓을 하는 것이 좀 더 근거 있는 이해일까. 주말 아침 가족의 아침을 책임지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된 옷들을 정리하여 각 서랍장에 넣어 두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그 사이에 이미 이리저리 집안 구석구석을 종횡했기에 아침부터 땀범벅이 된 아이들을 간단히 샤워시키고 난 이후. 그제야 개인의 시간이 잠깐 찾아왔다는 신호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중첩되고 만다. 욕조에 얼추 채워진 물은 '뜨겁다'는 걸 과시하려는 듯 제법 강한 온기를 내뿜으며 김을 모락모락 낸다. 발끝을 담가 잠깐의 찌릿한 뜨거움을 참아내면 어느새 특유의 '해방'을 느낀다. 반신욕을 하게 만드는 감정, 그 감정이 태도가 되면 결국 어떤 움직임을 만든다. 어떤 시간만큼은 절대 방해받지 않을 것.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을 것. 옷을 벗고 풍덩. 그리고는 왈칵.
도무지 설명이 쉽지 않은 그 감각으로 인해 기어코 매일 같이 욕조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자 하는 인간을 탄생시킨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울컥함이 차오를 때면 더더욱 욕조를 찾곤 했었다. 그리곤 주르륵. 눈에서 물이 쏟아져 흘러나왔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아무 말 없이 물 안을 들여다본다. 생각은 꼬리를 물며 현재 시점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만다.
짜게 된 무채 볶음을 심폐 소생시켜준다는 빌미로 호박 새우젓국에 한껏 들이부어버리며 냄비를 팔팔 다시 끓이고 서 있는 그이의 등이 오늘따라 못마땅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직도 댁 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장면들로부터 되도록 초연해지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마는 자신에게 어떤 분함을 느끼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쉬고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화장실의 물때라든지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활적 미션을 다시 만들어 내고 마는 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호르몬의 지배를 상당수 받는 시기의 도래로 인해 몸의 붓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감정은 들쭉날쭉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하고 마는 지겨운 시기가 다시금 이렇게 찾아오고 말았다는 어떤 우스운 변명에까지 기어코 생각은 가 닿고 만다. 그리하여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다. 식욕도 성욕도 감각도 우울도 제멋대로 날뛰는 이 시기를 부디 조심해야 한다고. 피해자는 절대 발생하면 안 된다고. 지켜야 한다고도... 문 밖의 소란스러움은 언제쯤 고요해질까. 그들이 다 커서 문을 닫고 고요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이내 편안해질까. 막상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주말에도 부지런한 첫째 아이는 요일의 자비를 베풀지 않은 채 여느 때처럼 귓속말을 건넨다. '엄마 일어나'.라고. 일요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조금은 더 이불속에서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영 거실로 나가지 않은 채로 침대와 일체가 되어보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럴 수 없이 기어코 몸을 일어서게 만드는 것은 어떤 습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단체 생활에 있어서 메인 기능과 역할에 최선이라는 나름의 태도 유지를 지키려는 그와 나의 습관. 아니면 아이가 여린 목소리로 누군가를 갈망하며 기어코 볼에 닿은 입술의 그 촉촉한 감촉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군가 '함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사랑하고 있을 누군가가 결국 자신을 향하기를 바라는 완전한 마음, 그것이 동력이 되어 엄마의 살갗을 파고든다거나 조금이라도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엄마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거나. 아이들의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할 것 같아서 스스로 밀려오는 짜증을 있는 힘껏 참아내려 애쓴다. 그렇게 한껏 참아낸 마음은 반신욕 하면서 흘려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닦다가 유년 시절의 친정 엄마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됐었다. 멈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이기에. 살면서 강하게 박히고 마는 어떤 장면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좀처럼 지워지지도, 기억 속에서 깔끔하게 빼내지도 못하는 것만 같다. 상대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마음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유년 시절의 나와, 생활을 열심히 지키며 살았던 엄마가 떠올라서 한참을 욕조 속 물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바보 같이 괜히 또 생각하고 말아서는.
그 시절, 아주 가끔이었지만 열리지 않고 잠겨진 안방 앞에서 나는 엄마를 부르곤 했었다. 마치 그 모양새는 주인을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강아지가 앞발로 문을 낑낑거리며 긁는 것과 비슷했었을지도 모른다. 기묘한 방법을 써보기도 했다. 종이를 북북 찢어 거기에 엄마에게 몇 문장을 적은 채 종이를 문 틈 사이로 집어넣고 마는 것이다. 편지 쓰는 습관이 어쩌면 그때부터였으려나. 그제야 엄마는 문을 열고 밥을 다 먹었느냐는 말을 묻곤 했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감기에 걸려서 피곤해서 누워 있었던 것이라고.
그 거짓말을 그 시절엔 잘도 믿었다. 엄마에게는 아무 일이 없다고. 단지 몸이 고단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엄마는 결국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방식대로 이해했다. 생각해보면 참 무자비한 마음이었다. 해방될 수 없는 존재에게 해방할 수 없다는 걸 증명시키고 마는 '나'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많이 미안하고 또 많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되도록 별소리를 다 하면서 그녀를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걸. 가령 엄마한테도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부끄럼 없이 발설하던 이상한 딸이 돼 보기도 했지만 그 문장의 원천이 되고 마는 마음을 엄마는 알았을까... 힘들어하지 말라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울지 말라고. 집 안 밖에서 조금은 도망쳐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단 한 명은 그렇게 말해주고도 싶었던 어떤 마음을. 물론 워킹맘이었던 그 시절의 엄마는 딸의 허튼소리를 한 귀로 흘려버린 채 한 눈은커녕 살뜰히 세 명을 보살피고 지지하며 지켜나갔다. 그녀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모두 들이붓고 말았으니까. 그리하여 탄생된 결과는 화평한 4인 가족이었다. 어쩌면 평화로움은 자식 2명에게만 진실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양육을 동반하는 기혼 후의 결혼생활이란 확실히 개인적 인간의 세계를 좁히고 수축시키는 데 탁월한 것만 같다. 단체생활을 위해 되도록 다루기 편하게 자신 스스로를 조작하게 되는 것. 어떤 단란과 의식주의 평안과 물적 심적 안락과 보살피는 대상들의 건강한 성장과 그 모든 의식들을 위해 자신을 훌훌 팽개칠 수 있게 만드는 대단히 훌륭한 동력... 쾌락과 감각과 감정은 될 수 있다면 판도라의 상자 안에 고이고이 모셔둔 채로. 때로 그것이 명백한 자기기만이고 검열에 속하고 말 지언정. 그래야 유지되고 살아지며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은 채로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세계. 그렇기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 이란, 자녀가 없었고 가사를 하지 않았으며 노동이 한 쪽으로 쏠림 없이 경제적 독립을 각자 했었고 그리하여 적절한 사적 거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던 꽤 사치스러운 환경의 사람들이, 게다가 인간의 실존적 존재와 자유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대상들만이 '겨우' -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라 '겨우' - 올라갈 수 있는 시험대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눈물이 마를 때 즈음엔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 욕조 안의 물은 다 식어가고 있었다.
생방으로 멈춤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인생의 시간들을 어떻게 잘 소비하며 살아낼 수 있을까. 기만하고 싶지 않은 인간과, 기만해야 살아지는 삶이 충돌하고 말 때 어떻게 해야 그 다툼을 보다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그런 답 없는 질문들이 일상 곳곳에서 쏟아져 나와도 생활은 결국 멈춤 없이 계속된다. 그리고 계속 되어야만 한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고 했기에. 일단 답은 못 찾아도 계속해 보는 걸로. 다만 감정이 태도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면 되도록 열심히 기억해 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아주 짧은 시간의 희열을 떠올리며
그 기억들이 기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
그 감정이 태도가 되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