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상권인 쇼핑몰 푸드코트 옆 길목에서 젤라또 팝업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매일 ‘정’을 느끼고 있다. 정을 느끼게 하는 표현은 참 다양하다는 것도 느꼈다. 정의 얼굴은 가볍게 시작하는 안부로 때론 세심한 말 한마디를 통해서 기본적인 이름과 나이를 물으면서 종종 작은 간식을 주고받는 손길로 나타난다. 매번 출석도장을 찍어주는 직원손님들에게는 정을 넘어 감동도 느낀다. 젤라또도 맛있지만 사장님이 좋아서 와요라는 한마디는 빗말일지 몰라도 그날의 피로가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저도 손님 보러 출근해요”(빗말이 아니라 진짜다.) 사방이 트인 매장에 있다 보면 심심해서 눈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우리 손님들 어디 안 오시나, 언제 오시나 매의 눈으로 꼭꼭 둘러보기도 한다. 꼭 젤라또나 도미빵을 사지 않더라도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이 참 좋다. 특수상권이라 단골손님을 만들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금방 단골손님들이 생길 줄은 몰랐다. 매일 만나니 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막역하게 깊은 사이는 아니지만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는 말도 있듯이 매일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정이 쌓여간다. 때론 같은 쇼핑몰로 출근하는 직장동료로서 때론 고객님으로서 때론 안부를 묻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대문자 I인 내향인이라 낯도 많이 가리고 어떤 장소에 적응하려면 시간도 꽤 걸린다. 그런데 손님들의 정 덕분에 팝업이 종료된 지금 생각하면 그 공간 그 손님들에게 나도 꽤 많은 정을 두고 온 것 같다.
젤라또 팝업 오픈날부터 지금까지 쭉 아프거나 휴무일이 아니라면 매번 출석해 주는 나이키 인간 비타민 손님은 오픈 날부터 하루 한 번씩 꼭 들리는 손님이다. 젤라또를 안 사 먹는 날에도 꼭 들려서 인사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메리크리스마스 인사와 새해 전 후로 눈만 마주치면 새해 인사를 얼마나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친구가 된 비타민 손님은 첫 만남부터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구김살 없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오픈 두 번째 날에도 여전히 긴장하고 있던 내가 덕분에 긴장이 풀린 것 같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처음 본 손님들에게 삐걱거림과 동시에 낯을 가리는데 나도 모르게 그 장난스러운 웃음과 센스 있는 말에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처음 본 처음 온 손님에게 젤라또 홍보를 부탁하고 말았다. 오픈 첫날은 줄곧 긴장 속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아마 누가보아도 삐그덕 대는 로봇 같았을 것이다. 그날 저녁쯤 나이키 직원분들이 단체로 방문했다. 삐그덕 대는 나와는대조적으로 나이키직원분들은 참 재밌고 유쾌했다. 푸드코트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한 후에 매장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긴 사람이 젤라또를 쏜다.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때 쏘는 사람한테는 왠지 내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젤라또를 더 듬뿍 올려준다. 이때 비타민 손님이 걸리면 더더욱 많이 준다. 나이키 직원 손님들 덕분에 팝업매장이 한결 더 유쾌하고 즐거웠다. 맛있다고 큰 소리로 소리쳐준 덕분에 손님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알음알음 친해진 손님이 생겼다. 인간 비타민 손님은 친해질수록 정이 많고 배울 점이 많은 젤라또가게 최고의 손님이다. 의리, 섬세함, 친절, 유쾌함… 특히 그 장난스러운 눈웃음과 센스는 특히 닮고 싶은 부분이다. 너무 추운 날에는 젤라또대신 도미빵을 먹는다. 간식시간이 되면 도미빵을 2 봉지씩 포장해 간다. 동료들을 챙기는 의리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가끔 매번 도미빵을 사주는 보답으로 덤을 껴주거나 작은 간식을 드리기도 하는데 정말 별거도 아니지만 말로는 받을 수 없다면서 손에는 이미 간식을 가져가는 그 유머와 센스는 다음에 어떤 덤을 줄까 고민하게 만든다. 비타민 손님은 섬세함은 종종 감사를 넘어 감동을 준다. “오늘 조금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어디 아프세요?” 정말 피곤한 날 나는 내 감정을 잘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누군가가 힘들어 보이거나 지쳐 보이면 작은 말 한마디라도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들어 보이는 사람에겐 괜찮냐는 한마디가 작은 관심이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리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겐 기분 좋은 일 있냐면서 아는 체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작은 관심이 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비타민 손님의 유쾌함은 나뿐만이 아니라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아 보인다. 내가 본 그는 어딜 가나 환영받을 손님이다. 나의 작고 사소한 덤에도 감사를 전할 줄 아는 사람이며 그의 보답 덕분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말 한마디로 정의 얼굴을 보여준 고마운 사람이다. 팝업매장을 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손님이자 친구다.
다음 잊을 수 없는 손님은 일주일에 5번 이상 오픈런해 주시는 귀여운 커플 직원 손님이다. 항상 세트로 다니는 커플 손님이다. 귀엽고 잘생긴 선남선녀 커플로 도미빵을 매우 좋아한다.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인사를 나누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매장을 지나칠 때마다 화장실 앞에서 주차장에서 만나면 특히 반갑다. 그리고 가끔씩 간식도 나누어먹고 생일도 챙긴다. “사장님 오늘 여자친구 생일이에요~” 남자친구가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정도로 귀여운 닭살 커플 손님에게 그날 잠시 불러 갓 구운 도미빵을 선물한다. “생일 축하해요~” 가끔 애교 많은 다은 양은 나에게 간식을 챙겨다 주러 일부러 매장에 찾아오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누군가와 간식을 나눠먹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귤을 준 날 정이 더 커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간식이지만 마음으로 나누면 큰 감동이 된다. 나는 참 복 받았다.
오후 3시가 되면 오는 언니 손님이 있다. 딸기 그릭요거트가 생각나서 몇 주째 그 맛만 먹는다.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인데 딸기그릭요거트 맛을 추천한 후부터 중독되었다고 한다. 딸기그릭요거트를 통째로 사서 먹고 싶다면서 감기가 걸린 날도 참지 못하고 한 컵을 사간다. 바쁜 날에도 뛰어와 한 컵을 사간다. 쉬는 시간이 없는 날에도 빨리 한 컵을 사간다. 종종 도미빵과 딸기 그릭요거트로 점심을 드시기도 하는데 참 귀엽고 고맙다. 밥은 포기해도 딸기그릭요거트는 포기 못한다나. 어느 날부터 평일 오후 3시에는 옆매장 언니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손님이 없을 때는 아예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떤다. 이제는 아무리 바빠도 인사를 빼먹으면 서운하다. 매장 앞을 그냥 지나치면 찾아가서 인사한다. 꼭 젤라또도 도미빵도 안 사 먹어도 되니 부담 갖지 말아요. 우린 벌써 손님과 사장 그 이상이니까요. 어느 바쁜 주말 아침, 언니손님이 봉지 하나를 건네며 꼭 에어프라이기에 돌려야 해요 외치며 빠르게 뛰어갔다. 그 봉지 안에는 무려 대전 성심당 튀김소보루가 고이 포장되어 있었다. 빵 한 봉지에 눈물이 찔끔 나려는 걸 꾹 참았다. 여행 다녀오면서 내 빵까지 챙겨주는 건 선 넘은 거 아닌가요? 정이란 게 참 무섭다. 아니 빵이란 게 참 무섭다. 나도 언니손님처럼 정을 나눌 때는 빵으로 나누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받은 것보다 더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점심시간마다 젤라또 매장 앞에서 밥을 먹는 친구가 있다. 종종 배고픈 내게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얼마나 큰 정인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아래층 옷매장에서 일하는 데 손님으로 만나 이름과 나이를 알고 가끔 쓰레기를 함께 버리며 친해졌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자칭타칭 기타 천재 손님이다. 성격은 또 얼마나 좋은지 푸드코트 이모님들의 귀여움을 잔뜩 받는 친구다. 팝업매장을 운영하면서 손님과 이름, 나이를 튼 건 이 친구가 처음이었다. 그 특유의 사교성과 친근함으로 나에게 먼저 나이와 이름을 물었을 때 당황했지만 사실 침착한 척을 했었다. 내가 6살짜리 아이한테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인사를 하고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묻는 거라고 알려준 날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손님으로 만나 인사만 주고받다가 우연히 쓰레기장 앞에서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했다. “어~안녕하세요~ 저는 젤라또” 그날 나는 나를 젤라또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말 예의 바르게 친구 사귀는 방법의 정석으로 자신의 나이를 먼저 이야기하고 내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았다. “몇 살이에요? 이름은요?” 요즘은 누군가를 만나도 가장 기본적인 나이와 이름을 잘 물어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나이를 묻는다는 것은 실례가 될 수 도 있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일이 때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참 정이 없는 세상이다. 아니 나는 참 정이 없었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맺는 기본도 잊은 채 누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름과 나이를 물으며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너무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참 고마웠다. 앞으로 만나는 손님들에게 나 자신을 젤라또라 소개하지 않고 신귀선이라고 알려줘야겠다. 이름과 정을 잃고 살았던 나에게 이름과 나이를 묻는 사소한 행동이 사람 사이에 정을 깊게 느끼게 하는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눠준 김밥도 과일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손님과 사장으로 만났다. 때론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부를 묻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작은 간식을 주고받고 이름과 나이를 묻고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런 따뜻한 시간들은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정은 꽤 짧은 시간일지라도 생각보다 사소하고 간단한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알았다.
고작 말 한마디로 고작 귤 하나로 커피대신 건넨 진동벨 하나로 추운 겨울 내 마음과 작은 젤라또 매장이 참 따뜻해졌다.
“진짜 맛있어요.”
“저 또 왔어요.”
“오늘 피곤해 보여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어젯밤부터 도미빵 생각났어요.”
“오늘 출근하자마자 왔어요.”
“이거 드세요. 유자차예요”
아버지께서는 늘 인간사이의 관계는 난로처럼 항상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유지하라고 배웠다. 난로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데인다. 그렇다고 또 너무 멀리 가면 춥다. 그 적당한 거리가 분명 있을 텐데 나는 그 거리가 아직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너무 가까이 있다가 상처도 받고 상처받아 멀리 가면 외로워질 테니까.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다 보니 아주 조금은 그 적정 거리를 알 것도 같다. 만약 그 적당한 거리 유지가 어렵다면 사랑을 전제해 본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모든 살아가는 것들을 사랑해 보자. 그러면 그 거리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저 그냥 사랑하면 된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사랑한다. 그저 사랑만 하다 보면 기분에 따른 말도 아끼게 될 것이고 관계도 덜 힘들어질 것이다. 나는 젤라또가게에 오는 모든 손님을 사랑한다. 그냥 사랑한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때론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행복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어쩌면 내가 손님을 사랑하듯 손님들도 나를 사랑해 주는 것 같다. 젤라또 매장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관계, 배려, 사랑 같은 큰 철학을 배운다. 오늘도 젤라또를 팔면서 나는 인간관계의 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