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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도시, 도시에 사는 사람

<13.67>

by OH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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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처음부터 이런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을 구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가지고 1편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1편은 ‘안락의자 위의 탐정’ 이라는,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 설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이 흥미롭다. 1편의 주인공은 마이크로프트 홈즈도, 제인 마플도, 에르퀼 푸아로도 갖지 못한 극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는 볼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다. 목 아래가 마비된 <본 콜렉터>의 링컨 라임보다도 더 극단적인 설정이다. 이 극단적 상황과,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SF적 장치가 홍콩이라는 도시배경과 섞이며 묘한 분위기를 이룬다. 세계관 구축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도입부다.


그런데 1편 마지막에 작가는 그 극단적인 설정들을 다 무너뜨려 버린다. 거기서부터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모호했던 본격 추리소설의 느낌은 옅어진다. 대신 홍콩이라는 너무나도 독특한 도시에 대한, 다섯편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작가는 반대 방향으로 극단성을 보인다. 극단적인 사실주의로 스스로가 겪었던 홍콩이라는 도시를 그려내는 것이다.


몽환적이고 영화적인 이야기와 펜화처럼 집요하게 세밀하게 묘사된 사실적 이야기, 이렇게 양극단의 이야기가 한 작품에 엮여있다. 때론 혼란스럽고, 때론 흥미롭고, 전체적으로는 재미있다. 그러다 사실주의로 치닫던 결말이 다시 처음의 이야기와 탁(정말 탁!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나는 것 같은 느낌) 맞아 떨어질 때, 이 소설의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이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완독한 독자의 열에아홉은 마지막장을 읽자마자 다시 1장으로 돌아가 보았으리라고 확신한다.


현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하는 예전, 처음에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도시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자주 생각한다. 홍콩이라는 독특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그 도시에 바치는 선물로 손색이 없는 소설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도시에서 받은 것들의 꽤 많은 부분을 갚았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변화하는 도시를 겪어보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 경험이 나라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개인적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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