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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17. 2020

치맥파티

배려가 봉변이 되는 순간

엄마, 치맥이 제일 그리워요~


파리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모처럼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게 치맥이다. 그 애가 올 때는 그래서 나도 신나게 치맥을 한다. 그러나 그때뿐 기름기를 싫어하는 남편은 그런 걸 영 싫어하기에 아이들 하나 없는 우리 집에서 치맥파티가 열릴 일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방콕 중인 남편과 나 둘이서라도 치맥을 하고 싶다. 이유는 무엇이냐. 나의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 조회수가 샤샤샤삭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삼만도 넘었기 때문이다. 와우. 여보 이건 기념해야 하는 거 아냐? 조회수 삼만 돌파 기념! 나의 열렬한 주장에 아들도 없지만 우리는 모처럼 치맥을 하기로 한다.


아들이 오면 시켜먹곤 하던 통닭집을 찾아 전화를 한다. 치아 교정기를 끼운 발음의 아가씨가 전화를 받는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요, 무 한 개 추가요, 주문을 마치니 현금이냐 카드냐를 묻는다. 현금으로 딱 준비하려니 정확히 가격을 알려달라는 나의 말에 만 육천 오백 원이요 한다. 우리는 지금 자진 자가 격리 중이니 행여나 오래 마주하고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딱 만 육천 오백 원을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까지 정확하게 챙겨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기다리다 주고 통닭을 받으리라.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던 그녀의 말과 달리 한 십 분 정도 지났을 까에 딩동 딩동 아파트 입구 벨이 울린다. 앗, 모야. 한 시간 걸린다더니? 무언가 이상하던 느낌은 결국 우쒸. 


준비한 돈을 들고 꽤 높은 층인 우리 집 엘리베이터 앞에 나가 한참을 기다린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통닭을 든 커다란 청년이 나오려는 찰나 나는 그가 보기 쉽도록 천 원 짜리도 쫘악 펼쳐서 일만 육천 오백 원을 주고 통닭을 받는다. 문 앞에서 대기하다 즉시 돈을 주는 내가 신기했던 걸까 깜짝 놀라는 듯싶더니 통닭을 주고 얼떨결에 인사를 하며 돈을 받아 내려갔다.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그런데


통닭을 거실 테이블에 끌러놓고 냉장고에서 맥주도 꺼내 놓고 제대로 먹으려고 화장실에서 손을 뻑뻑 닦고 있는데 다시 벨이 울리는 게 아닌가. 내가 화장실에서 손 닦는 중이니까 남편이 먼저 나갔다. 왜? 그 청년이야? 왜? 나도 후다닥 따라 나간다. 남편에게 씩씩거리며 청년이 말했단다. 만 팔천 오백 원인데 만 육천 오백 원이라고. 배달비 이천 원이 빠졌다고. 아니. 이게 몬 일? 난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우리 집 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다시 엘리베이터 잡고 그런 불편을 덜어주고자 일부러 동전까지 현금으로 마련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린 건데 이건 마치 돈을 슬그머니 덜 주려고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으니 우쒸 너무 억울하다. 


아가씨가 만 육천 오백 원이라고 했는데요.


난 당당하게 말하나 배달비 이천 원이 빠졌다며 이 커다란 청년 영 찡그린 표정을 풀지 않는다. 모지? 배달비는 알아서 더 내야 하는 건가? 아가씨가 만 육천 오백 원이라고 하니까 난 딱 그 돈만을 챙겨서 나간 건데. 어떻게든 고의가 아님을 알리려 일부러 편하게 해 주려고 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도리어 불편하게 했네요~ 아가씨의 실수에 도리어 내가 화가 나지만 그래도 생글생글 웃으며 그 총각의 표정을 풀어주려 노력하지만 그는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괜히 왔다 갔다 고생만 더 한다는 표정.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는 저 표정. 우리 집 문 두드리는 시간조차 아껴주려 했던 나의 배려가 봉변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통닭 값이 얼마인지 어떻게 아는가. 아가씨가 말한 대로 돈을 준비할 밖에. 혹시 배달비는 알아서 따로 내야 하는 걸까? 그런 걸 제대로 물을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은 꽝 닫혔고 표정을 풀지 않은 그 총각은 내려갔다. 


아, 아이들 없을 땐 이런 치맥 하는 거 아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현금을 딱 준비하려니 정확히 주어야 할 돈을 말해달라 했는데 교정기 낀 발음의 그 아가씨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녀에게 전화해 왜 만 육천 오백 원이라고 해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드냐 해봐? 그렇게 그 청년의 오해를 풀어봐? 에구 한창 바쁠 시간에 그건 또 아니지 않은가. 아, 치맥은 역시 애들이 있을 때가 제맛이다. 남편과 둘이서 그리운 아들 생각하며 치맥 하려다 이상한 사람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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