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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06. 2020

어쩌면 스무 번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편혜영 소설


 올여름은 옥수수를 많이 먹게 될 것 같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 옥수수밭이 있었다. 몇 개쯤 서리하는 게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밭이었다. 어림잡아 삼백 평은 되는 것 같았다. 삼백 평이나 거리를 두었으니 옆집이라 하기에는 다소 멀었지만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긴 했다. 
 이삿짐을 풀던 날 밤, 찜질방 주인이 옥수수를 가지고 왔다. 중국 음식점에 배달을 부탁했는데 멀다고 거절당해서 난감하던 차였다. 사람을 들이기 마땅치 않았지만 아내는 잠깐이면 되겠다 싶었는지 문을 열어주었다. 방금 삶은 옥수수 단내에 혹한 것 같았다. 우리는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소설의 첫 문장들이 이렇게 매력적이었던가? 이렇게 읽는 대로 독후감을 쓰며 첫 문장들을 옮기다 보니 얼마나 매력적인 문장들인지 절감하게 된다.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첫 문장은 즉시 나로 하여금 소설 속에 폭 빠지게 만든다. 자, 새 책을 또 시작해 볼까? 


하하 너무 재밌는 표현. 옥수수를 들고 온 찜질방 주인의 말을 보자. +'손님 없는 거대한 찜질방을 버리지도 팔지도 삶아먹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푸하하하 버리지도 팔지도 삶아먹지도 못하는 찜질방이라니 푸하하하. 그런데 이 소설 그렇게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핏 돈 많은 젊은 부부가 전원주택을 사서 이사 온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치매에 걸린 장인이 있다. 그리고 나는 잘 나가던 직장에서 아아악 소리를 질러대는 그 어떤 정신병에 걸려 치료 중이다. 아내가 그 두 남자를 건사하고 있다. 젊은 아내가. 


약을 충분히 먹였는데도 간혹 장인이 일찍 깨어날 때도 있었다. 잠이 깨면 장인은 암막 커튼이 쳐진 불 꺼진 방의 어둠에 놀라 괴성을 지르며 울었다. 여러 번 가르쳤지만 불 켜는 방법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도 문을 두드려 주먹이 까지고 자기 몸을 때려 멍이 들었다. 장인은 갈수록 사나워졌다. 수월하게 달래기 힘들어졌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장인보다 더 사납게 굴었다. 아파트에서는 옆집을 의식해 참았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집 밖으로 달아났다. 옥수수밭으로 갔다. 높이 자란 옥수숫대 사이로 들어가 무릎을 감싸고 앉았다. 이랑에 앉아 옥수숫대 사이로 서서히 해가 지는 걸 지켜봤다. 붉은빛을 띠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건 무시무시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하늘에 희미하게 달이 떠올랐다. 낮달처럼 흐릿하던 윤곽이 점차 또렷해졌다. 둥근달을 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 졌다. 어쩌면 스무  번*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손을 더듬어 옥수수를 다섯 개 땄다. 수염을 끈처럼 늘어뜨리고 껍질에 감싸인 옥수수를 품에 안고, 팔이 옥수숫대에 쓸리는 줄도 모르고 천천히 어두운 밭을 빠져나왔다. 


 이제 상황이 이해된다. 장인의 치매는 점점 심해지고 그리고 나 역시 정신병이 심해진다. 어쩌면 스무 번*에 별표가 있어 따라가 보니 '*폴 볼스(Paul Bowles)의 소설 The Sheltering Sky에서 인용'이라고 쓰여 있다. 아하 '어쩌다 스무 번' 리드미컬하게 들리던 그 문장이 다른 소설의 인용문구였구나. '어쩌면 스무 번' 그런 작은 말까지도 이렇게 인용했다고 적어야 하는 걸까? 나는 그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스무 번'의 진짜 뜻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스무 번이라...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어쩌면이니 어쩌면 스무 번을 넘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모자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 남자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며 '저 보름달을 어쩌면 스무 번' 하는 장면은 너무 처량하고 슬프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고. 


 거기 희극적으로 등장하는 찜질방 사장하며, 옥황상제를 모시는 전도사들. 그리고 이름 없는 경비업체 직원들까지. 소설과 상관없이 가끔 전원주택에 대한 꿈을 꾸었던 나는 소설을 읽으며 딱! 그 생각을 멈춘다. 하하 도둑에 살인에 아 무시무시. 소설을 읽으며 그렇게 뜬금없이 나의 생각 속으로 빠지는 내가 웃긴다. 여기서 이 우울한 이야기 속에서 웬 '전원주택 가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이 불쑥 나오느냐 말이다. 


아내는 지친 듯 소파에 누웠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튼 너머로 시커먼 옥수수밭이 어른거렸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기척이 없는 장인. 깨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오늘따라 지나치게 오래 잔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거기서 사람이 죽었다고 경비업체 남자는 이야기했었다. 아, 아내에게 희망이 있을까? 치매 아버지는 점점 더 병이 깊어가고, 나도 정신병이 악화되어가고 어쩌면 스무 번이 될까 말까 한 보름달 보기. 아, 아내는 어떻게 견뎌낼까. 그러나 이게 닥친 상황이라면 아내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힘을 내야 한다. 그냥 지친 듯 소파에 누워버리면 안 된다. 아내여 일어나랏! 아버지와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웃게 하라!!! 나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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