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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05. 2020

독후감 하늘 높이 아름답게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권여선 소설


일흔두 살에 죽은 마리아는 지주 집안의 오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둘이었는데 막내라고 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지는 못했다. 대지주는 아니어도 자기 땅을 가졌다고 양반 행세를 하여 가풍이 대단히 봉건적이었다. 아들들만 위해 바쳤고 딸들은 빈농 집안이나 다름없이 부렸다. 아들들은 학교에 다녔지만 딸들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집안이 발칵 뒤집힐 정도의 투쟁과 저항이 필요했다. 


난 모든 소설의 시작이 참 궁금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 인지도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첫 문장이 너무 충격적 이어서일까? 첫 문장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은 나를 붙들었다. 귀하게 태어난 마리아가 여자라는 이유로 집에서 대접 못 받고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에 간다. 죽기 살기로 일하고 공부해서 정식 간호사가 되려 한다. 독일 청년과 사귀지만 결혼도 미룬다. 그런데 덜컥 아기가 생긴다. 아기를 낳고 퇴원하던 날, 잠깐만. 어지럽다며 아기를 넘긴 아기 아빠 독일 청년이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린다. 결혼을 했다면 독일 국적을 얻어 잘 살아갔을 텐데 오일 쇼크로 파독 간호사의 강제소환 정책에 마리아는 8년 만에 다시 한국에 온다. 아기는 독일 가정에 입양시킨 채. 청회색은 어떤 색일까? 마리아가 낳은 아가의 눈은 청회색이었다. 


베르타의 남편은 작년 봄에 급사에 가까운 죽음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한동안 상속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마리아는 성당 사람들 집에 가사 도우미 일을 다닌다. 베르타도 마리아의 가사 도움을 받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마리아가 죽었을 때 애들과 여행 중이었던 그녀는 뒤늦게 그녀의 죽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베르타에게 마리아는 특별하다. 남편이 죽고 불안 초조와 결벽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가사 도우미로 온 마리아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리아를 추억한다. 너무 고생만 하다 간 마리아. 자기가 고생하는 것엔 무지하고 그저 다른 사람 챙기기에 바빴던 마리아. 그녀를 가사 도우미로 쓰는 성당 사람들 모두를 감동시키던 마리아. 감탄하는 그들에게 "먹어줄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면 그렇게 돼요, 사모님." 하던 마리아. 암에 걸렸으면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투병하던 마리아, 마지막 죽기 전까지도 가사 도우미 일을 하던 마리아. 죽는 그 날까지도 신부님의 반찬이며를 깔끔하게 해내던 마리아. 그녀가 죽었다. 그녀를 왜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그런 사람은 많이 행복해야 할 텐데. 


베르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비나 쪽을 바라보며,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베르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이제 베르타를 괴롭히는 의문은 자신이 왜 이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가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이렇게 해서 뭐가 만족스러운 건가. 베르타는 신음하듯 생각했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말을 떠들어대면서 도대체 어떤 기쁨을 느끼는 걸까.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게 그래도 뭔가 하는 것 같아서? 그나마 그게 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베르타가 성당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 숱한 모임에서의 내가 떠오른다. 그렇다. 난 모임이 많다. 아이들 학교 다닐 때 같이 학부형이라서, 이웃에 함께 살아서, 남편 직장 동료의 아내라서, 동창이라서 등등 그렇게 만들어진 모임은 세월 따라 무르익고 있다. 하하 찔리는 것은 '왜 사람들은 말하는 데만 집중할까'하는 게 꼭 나를 꼬집는 것 같기 때문이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게 그래도 뭔가 하는 것 같아서?
그나마 그게 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런 모임에서 나는 '오늘은 그냥 듣기만 해야지.' 아무리 결심을 하고 가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하다 보면 흐음... 정말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을 때도 있고, 무언가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여, 어느새 마구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으이구 또!' 하던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그럴 때의 마음을 어쩜 요렇게도 잘 표현할까.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권여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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