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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19. 2019

러시아를 남편과 단 둘이

23시간 스탑오버를 적극 활용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던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과 나,

단 둘이 러시아 항공

비행기를 탄다.


아들 없이도 기다려서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를

제대로 잘 탔는데


음... 우리 앞자리

심상치가 않다.


6살과 4살 정도?

두 딸과 아주 젊은
엄마인데...


절대 이뻐할 수 없게끔

일어났다 앉았다


뒤로 앞으로

탕탕탕탕

무얼 두들기는 걸까.


소리 꽥꽥 질러가며

둘이 싸우고

아, 그 산만함이

도를 넘어 결국 주스를

엎어버리는 지경에 까지

이르는데


우당탕탕은 기본이요,

둘이 어린이라 특별히 받은

그림 그리는 도구를

사납게 뜯어내더니

막 그리는가 싶다가

뜯어 버리고 싸우고 뺏고

때리고 울고 아~


도대체 엄마는

무엇을 하기에?


슬쩍 애들 옆자리의

엄마 쪽을 보니 세상에


그 난리를 치는 동안

통로 쪽에 앉은 엄마!!!


얼핏 좌석 사이로 보이는

너무도 잘 손질된 손톱에

세련된 매니큐어가

빛나는 매력적인 손


긴 속눈썹 하며

오똑한 코

까맣고 커다란 눈

까만 머리


여하튼 살짝 보이는

옆모습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미인


그 매력적인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정신없이

두들기고 있다.


오락게임 중이다아아아.


문득 우리 애들 어릴 때

고속버스 태워가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온갖 책이며 그림 도구를

챙겨 가 함께 그리고 보고

 
행여 지루해진 애가 뗑깡을 부려

곁에 해를 끼치지않을까


아이의 흥미를 놓치지않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주스가  쏟아진 걸 보고

앗. 그 예쁜 엄마

'철썩!'


아이 면상을 무자비하게

갈겨버리는 게 아닌가.


앗. 어떻게 아이를?

하이 고오...


따귀를 맞고는

아이들 잠시

쥐 죽은 듯 조용.


스튜어디스가 달려와

냅킨으로 닦아내고 한창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조금 지나지 않아

다시 젊고 예쁜 엄마는

핸드폰 게임에,


아이들은 다시

난리통 속으로. 아으.


휙휙 뒤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애들이랑

어쩌다 눈이 마주친다.


난 절대 우호적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아니, 너무 괴로왔기에

어린애들임에도 불구하고

난 살짝 째려본다.


심지어 무섭게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움찔하더니

둘이서 나를 자꾸

힐끗거리며 쏙닥쏙닥

마귀 같다고 하나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난 너희들에게 지금 절대

우호적일 수가 없어. 우쒸.


어쨌든 모스크바 도착이다.

우리는 23시간 스탑오버!


이제 비행기에서 내려

열차를 타고

다시 전철을 타야 한다.


애들이 인쇄해 준

코스대로 정확하게

호텔로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모스크바를 구경하고


그리고 다시 전철을 타고

열차를 타고 공항에 가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믿고 따라만 다니던 아들 없이

우리 둘이서만 해내야 한다.

바짝 긴장이닷.


음. 열차는 제대로 탔다.

이제 내려서 전철을 타기까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했지.


마침 우리 옆 통로 쪽에

금발의 젊은 여자가 앉아있다.


난 애들이 인쇄해준 노선도를

보여주며 여기를 가려는데

어디쯤 내리느냐 등등을 묻는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리라는

책 속 글과는 달리

이 여자는 영어도 잘하고

내리는 곳도 같다 하니


'난 이 여자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겠구나.'


마음먹는다.



덜컹덜컹
에스컬레이터가

가파르기도 꽤 가파르지만
소리도 커서 무시무시하다.

기차에서 내려

졸졸졸졸 그녀만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던 나는

결국 정색을 하며


화를 내는 그녀에게
너무 놀란 나머지

미안해 어쩔 줄 모른다.

"난 지금 기차를 타야 해요.
놓칠 수도 있어요. 바쁘다고요!!!!"

그러면서 휙휙 서둘러 가는데

아, 어찌나 미안하던지.


영어로 술술 잘 말해주니까

난 이렇게 저렇게
쫄쫄 따라다니며


여기냐 저기로 가느냐

그렇게 밀착 동행을

했던 것이다.


아, 나의 눈치 없음이여.

한 밤중에 모스크바에 내려

핸드폰은 한국 떠날 때 정보를

모두 막아 놓은 상태 그대로


애들이 인쇄해 준

종이 한 장 달랑 들고

물어물어 그래도 호텔에

도착한다. 흐유~


귀에 이어폰을 꼽고

흥얼거리고 있다가도


내가 종이를 들이밀며

여기를 가려한다.

어떻게 가야 하느냐?


물어보면

만사 제치고

우리 아들이 하듯


핸드폰의 G맵으로

길을 찾아 친절하게

안내해주던 러시아 청년들.

고마와라.



다음 날 새벽,

아침잠 많은 그를 놓아두고

살며시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한다.


헉. 눈!!!!

세상에 함박눈

쏟아지고 있다.


눈이라니!

웬 횡재? 하하


경비가 눈을 치우고 있고

도로는 빙판이다.

미끌미끌 조심조심


저 위를 올라가 볼까?

아니다.


눈이 내리고 있는데

저 계단이 얼마나

미끄러울꼬.


그가 깨기를 기다려

함께 가야 한다.

빠꾸~  히히.


눈이 하얗게

쏟아지는 거리.


출근길 젊은이들로

도로가 복작복작.


사람들 없는 곳으로

빠져나온다.


그가 일어난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도 없이 가뿐한

우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강을 건넌다.


와이 짐이 없을꼬?

헤헤 우리는 겨우 23시간

스탑오버 중.


짐은 모두

비행기 안에 있다. 하하


일부러 스탑 오버하길

얼마나 잘 했어?


슬쩍이라도

직접 본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림에서만 보던

둥글둥글 원형 탑.


모스크바 구경을

제대로 할 판이다. 오예!!!

탁월한 선택.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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