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꺼내놓고 칠 걸!

by 꽃뜰

그들은 또다시 함께 라운드를 하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하는 네 번째 라운드다. 오늘은 노캐디로 진행된다. 지수 남편이 예약을 아주 잘했기 때문이다. 몇 번만에 부킹에 성공하면 고생도 덜하면서 시간도 좋지만 안될 땐 전화만 백번 이백번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결과는 안 좋다. 아주 나쁜 시간대가 걸리거나 아예 부킹이 안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같이 좋은 시간대 라운드는 그들을 매우 신나게 한다. 룰루랄라 풍족한 시간에 지수는 남편과 함께 아침도 넉넉히 챙겨 먹고 나온다.


차 안에서 지수는 조용히 그녀의 글을 읽는다.


그녀의 글?


골프장 갈 때마다 읽으며 마음 다스리기를 하려고 바로 그 밥 로텔라의 책을 요약해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거다. 지수 남편은 운전하며 정치 이야기 유튜브를 듣지만, 지수의 관심은 오로지 15번째 클럽! 자신감이다. 남편이 듣는 정치 이야기로 차 안은 시끄럽지만 상관없다. 지수는 오늘 좀 잘 쳐야겠다.


목표에 집중하라.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으로 무장하라.


네 번째 라운드라서일까? 남편 친구도 예쁜 그녀도 이젠 매우 편하다. 남편들이야 대학 동창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아내들끼리도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그 남자는 그녀의 골프채 커버를 정성껏 벗겨주고 있다. 그녀는 카트에 여유롭게 앉아있다. 변함없어라. 하하 그 캐릭터 어딜 가겠어.


드디어 1번 홀.

자신감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그래서 지수는 계속 자신에게 말해준다.


나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공이 아주 잘될 것 같아.

저 아이피 깃발에 정확히 보낼 거야.

난 목표 지점에 정말 잘 보내잖아.


지수는 중얼거리며 자신감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드라이버를 힘차게 휘두른다.


와우. 그럼 그렇지. 역시 자신감.


멋지게 날아가는 공.


나이스 샷!


하하 세컨 샷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써드샷이 그린 앞 그래스 벙커에 빠지고 만다.

서둘러 가보니 러프가 심해 공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지수 공은 없다.

지수 공은 연두색인데 눈에 보이는 하얀 공.

그녀 것이다.


"공 여기 있어요!"


그녀에게 외쳐주고 지수는 자기 공을 찾는다.

없다. 눈을 부릅떠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지수 남편이 달려와 긴 풀 속에 푹 박혀 있는 걸 찾아준다.

그리고 그는 후다닥 자기 공을 치러 간다.


지수는 갈등한다.

러프가 너무 심한데 페어웨이에 꺼내놓고 칠까?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들과 치는 건데

굳이 여기서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노노노.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계속 반칙을 하게 된다.

슬쩍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공이 없으면 슬그머니 새 공을 놓거나.


습관이 될까 봐 지수는 마음을 다잡고,

결국 그 무성한 풀 속에서 그대로 친다.

힘차게 찍어내리듯 팍!


참 잘했어요... 가 아니라 공은 턱을 넘지 못하고

다시 깊은 풀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자세를 다시 잡고 쳐내려 하는데

문득 아까 봤던 그녀의 공이 떠오른다.


그녀가 치는 걸 못 봤는데, 어느새 그녀는

그린 가까이 좋은 곳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뭐야. 슬쩍 꺼내놓고 치는 거야?


지수는 그래스 벙커 턱에서 풀을 뚫고 나가려다 결국 두 타를 잃는다.

그렇게 잘 날아갔던 드라이브와 세컨 샷이 무색하게 더블보기다.


반면 그녀는 어프로치 샷이 그대로 홀 속에 쏙 들어가며

멋진 칩인파를 기록한다.


우아 그 펏은 멋졌지만

그래도 그렇지.

슬쩍 꺼내놓고 그게 말이 되나!


그러나 웬걸.

그녀는 팔짝 뛰며 좋아하고,

남편들은 나이스 파~

환호성도 모자라


하이파이브!

손바닥을 부딪쳐주며 난리도 아니다.


우쒸... 나도 꺼내놓고 칠 걸!

지수는 속상하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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