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가을, 반려견과 소풍 갔던 남산으로 가는 길
안경을 찾으러 간 길, 마음이 향한 곳은
오늘, 명동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뒤
헤어졌다.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따른 방향으로 걸음으로 돌렸다.
하지만 사실은, 식당에 두고 온 안경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집이 아닌, 남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녀석과의 소풍, 그리고 유모차
남산은 코로나 이전, 엄마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적이
있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나의 반려견과 함께 왔었다.
나는 늘 녀석에게 남산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모차에 태우고 사료와 간식을 챙기고, 내가 말했다.
" 우리, 소풍 가는 거야. "
계절이 열여섯 번이나 바뀌었는데, 나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단 말이 목구멍에 자꾸만 걸렸다.
흐릿한 기억 속 길, 맑은 하늘 속 눈물
오늘 다시 걷는 길은 낯설다.
퇴계로는 아니고, 남대문 쪽 길 같기도 했다
기억은 흐릿했지만, 그날의 감정은 선명히 떠올랐다.
남산이 가까워질수록,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검정 마스크에 가려진 내 얼굴, 눈물은 말없이 흘렀다.
봄꽃가루라도 들어갔을까. 아무리 눈을 비벼도 멈추지 않는 눈물.
어린 날의 남산, 그리고 지금의 남산
남산은 내게 오래된 기억이 깃든 장소다.
11살, 동네 오빠들과 함께 한강 다리를 건너 남산 꼭대기에서 본 하얀 비둘기 떼.
버스 타고 돌아가라며 돈을 쥐어주던 이름 모를 아저씨.
12살, 어린이날에 두 손 가득 과자를 받아 들고 내려오던
기쁨.
중학생이 되어 친구와 단둘이 도서관에 갔다가,
까만 밤. 자동차 불빛 따라 내려오던 날.
그런 남산에, 녀석과 함께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별 되기 전, 사랑을 말하던 순간
가을의 문턱, 나는 거실에 앉아 있던 녀석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고는 녀석의 눈을 향해 말했다.
"사랑해"
하지만 이 말이 녀석의 눈에 닿는 순간,
내 심장이 안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녀석의 등 바랜 털에
흩어졌고.
청색의 눈동자엔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그때 알았다.
이 짧은 눈 맞춤이, 우리가 나누는 마지막
가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간은 조용히 문을 닫고 있었고, 나는 아직 그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의 두께만큼
삶은, 종이 한 장의 두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앞면이 삶이라면, 뒷면은 죽음이라는 것도.
그 종이를 뒤집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짧고도 순식간인
것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녀석을 꼭 안아주었다.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리고 남산은,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마지막 가을을 보내고 그 이듬해 2월,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남산은, 녀석과 함께 가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였다.
그날의 남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한 삶의 마지막 계절,
그 기억이 새겨진 장소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남산으로 가는 길.
안경을 찾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15년 전 가을, 남산 소풍 길을 함께 했던
녀석의 그때 모습을 떠올리면서.
2025년 4월 23일(수) 남산 가는 길,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