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개를 키우는 집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새끼 강아지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밥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고기 수프 한 그릇뿐이었다.
손바닥 위에 배를 깔고 올라온 작은 녀석, 조카와 함께 품에
안고 사료를 찾아 거리를 헤맸던 날.
흑석동 어귀의 낡은 상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한 명 없는 1층 복도는 어둡고 쓸쓸했지만, 다리는 이미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대 없이 걷고 있었는데, 2층에 사료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사막을 헤매다 우연히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 이런 걸까.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서 드디어 도착한 느낌.
안도하는 기쁨이 밀려왔다.
주인은 자잘한 알갱이 사료가 보이는 긴 원통을 주며 말했다.
“많이 주면 안 됩니다. 여섯 알만 주세요.”
그러고는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덧붙였다.
“얼굴을 보니 시츄 같네요.”
묻지도 않은 그 말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공짜로 얻은 강아지라서, 순종일 거라 기대한 적은 없었다.
굳이 묻지도 않았다. 너무 큰 걸 바라는 속물처럼 보일까 봐.
잡종보다는 순종이 낫다는, 말로 꺼낸 적 없는 속마음이
고개를 들 때 애써 꾹꾹 눌렀다.
며칠 뒤, 노량진 학원가를 한 바퀴 돌고 오던 길이었다.
바나나를 주려고 녀석을 불러 세웠고, 녀석은 내 다리 옆에서
내 손만 올려다보며 조용히 걸었다.
그날 나는 간호사들이 신는 흰 샌들을 신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신발은 발걸음을 꼬이게 만들었고,
뒷걸음을 치면서도 몸이 크게 휘청였다.
내 발밑에 들어와 있던 녀석의 작은 몸.
본능적으로 발로 밟지 않으려다 그만 샌들 바닥이 녀석의
이마에 닿은 상태로 스쳐 지나갔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그 작고 여린 몸이 부서질 뻔했다.
“깨깽깨깽깨깽… 깽깽깽깽…”
놀라고, 아프고, 무서운 울음소리를 내는데
미안함이 가슴을 눌렀다.
뒷걸음질하는 녀석을 달래며 안아 이마부터 살폈다.
이마 털은 옆으로 쓸려 있었고, 살짝 벗겨진 피부엔 피가
맺혀 있었다.
치료를 해줘야 하는데 이번에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문득, 초등학생 때 장승배기 쪽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던
길이 떠올랐다.
그 길 어귀에 ‘가축’이라는 단어를 본 것 같은 낯선 가게.
서울 한복판에서 저게 뭘까,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났다.
그 오래된 장면 하나에 의지해,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6월, 한여름이었다.
덥고 숨이 턱턱 막히는 오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이 꺼진 듯 어두운 공간엔 낡은 도구들이 가득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하얀 러닝셔츠를 입고
부채를 부치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나셨고, 녀석의 이마를 살폈다.
“이건 빨간약 바르면 괜찮아질 거예요.”
대수롭지 않은 듯 상처에 약을 발라주셨다.
돌아서기 전, 한 가지 확인하고 싶었다.
“시츄 같다고 하던데, 진짜 시츄인가요?”
수의사할아버지는 녀석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눈빛을 바라봤다.
조금은 머뭇거리며 갈등하는 듯한, 어딘지 미안해하는
눈동자.
“시츄는 아니고…”
그 순간, 아주 조금 실망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기에.
하지만 속은 시원했다.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랬다.
우리 강아지는 시츄가 아니었다.
그냥, 강아지였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처음 만났던 날,
기뻐서 손뼉 치며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며 반기던
그 마음.
그때의 감정이 진짜였다.
품종으로 바뀌는 감정이 아닌 진짜 감정은
그냥 강아지에게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던 거.
강아지별로 떠나는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던 그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