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이사를 앞두고, 집주인은 강아지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없던 일로 하자고 으름장을 놓자, 주인은 이내 말을 바꾸었다.
데려오라고.
짐을 싸기 전, 전화로 미용 가능한 동물 병원의 위치를
알아보고 녀석을 데리고 찾아갔다.
털을 짧게 깎아 몸집을 작게 보이게 하려는 나름의 꼼수였다.
미용을 맡기고 조카를 데리고 병원 주변을 배회했다.
느리게 가는 시간.
녀석을 데리러 갔을 때, 수의사의 한마디는
충격적이었다.
“몸을 보세요. 강아지가 영양실조예요.”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료를 처음 사던 날이 떠올랐다.
가게 주인은 하루 세 번, 여섯 알씩만 먹이라고 했고,
나는 그대로 따랐다.
한 달 넘게 굶주린 강아지가 배고프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데 굶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음을 짓눌렀다.
녀석은 앙상했다.
가죽이 달라붙은 뼈마디들, 비쩍 마른 작은 몸.
털에 가려져 있어 몰랐고 새끼 강아지 몸이 새털처럼
가벼운 게 당연한 건 줄 잘 못 알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 강아지가 남겨준 배냇털이 이발기에 밀려 사라졌다.
몸 여기저기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피 맺힌 상처마저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수의사는 굶주렸기 때문에 식탐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하고,
하루에 종이컵 반 분량의 사료를 먹이라고 했다.
첫날, 녀석은 배고픔에 그릇에 코를 박고 게눈 감추듯
사료를 먹어치웠다.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여름방학을 시작한 7월,
우리는 잠시 머물 집, 마포구 아현동 산꼭대기 동네로
이사를 갔다.
우리가 지내게 된 집은 동생 친구 가족들이 사는 집이었고,
현관 쪽에 가까운 방 한 칸을 얻었다.
침대 하나를 들이자, 두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았다.
이사한 집에서 강아지는 식탐이 덜한 듯 보였다.
나는 과감하게 종이컵 가득 사료를 부어 자율 급식을
시도했다.
공부하러 나간 동안 배고프면 알아서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 바람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사료를 부어주는 순간, 녀석은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켰다. 그리고 곧,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들고 입을 벌렸지만, 코로는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숨을 쉬려 애쓰는 모습은 고통스러웠고,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목을 만졌더니 힘주고 있어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사료가 기도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내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린 것 같고 '어떡해'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선택할 겨를이 없었다. 제정신도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사료를 긁어내야겠단 생각으로 손가락을 녀석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목 안에 단단히 걸려 있는 사료가 돌담처럼 쌓인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사료 알이 튀어나온 부분이 없었다.
놀랄 만큼 표면적으로 매끈해서 긁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밀어도 봤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살려야 했다.
그게 전부였다.
미친 사람처럼 손톱으로 박박 긁었고.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던 사료 한 알이 마침내 툭, 떨어졌다.
두 알, 세 알이 혀 위로 쏟아졌고, 마침내 돌무지가 무너지는
것처럼 허물어졌다.
숨이 막힐 만큼 무서웠던 순간, 그 작고 여린 생명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놀랐을 녀석은 혓바닥에 떨어진 사료를 밖으로 뱉었고.
나는 이젠 괜찮다고 두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일이 있기 전, 나에게도 목숨이 걸린 일이 있었다.
어릴 때, 고기를 먹다가 손님이 와서 인사하기 위해 씹다
말고 삼켰고, 그만 목에 걸린 적이 있었다.
고기는 나오지도, 넘어가지도 않아 두려웠던 날.
주변에 어른들이 있었지만, 내 실수라 비난받을까 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너무나 꽉 막혀서 내 힘으로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 알았을
때의 공포감이란. 죽음이란 두려움으로 나타났다.
몇 번을 죽을 만큼 힘들게 몸 안에 있는 공기를 뱉는
과정에서, 천운처럼 그 고기가 빠져나왔다.
그 일이 있었기에 나는 알았다.
기도에 뭔가 걸리면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꺼내야 한다는 걸.
녀석을 살렸던 지난날,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했었다.
잊고 싶으면서도, 잊을 수 없는 기억.
그날의 녀석과 나를 통해, 지금도 나는 녀석과 나를
기억하고 있다.
알까? 녀석이 떠나고도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미용 후 이런 모습으로 우린 마포로 이사를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