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새벽, 그리고 강아지의 목소리

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의 이야기

by Heba

의식은 멀어지고

무의식의 감각만이 몽롱하게 밤을 지키고 있었다.

단절된 새벽은 고요히 흘렀다.


“멍…?”


누가 들을까 조심조심,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

문 열어 달라는 우리 강아지의 작은 소리를 나만 들었다.

몸이 반사적으로 일어났고, 나는 그렇게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열기까지의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밖에 있지?’

‘지금 새벽이잖아.’

‘언제 나간 거야?’

‘곧 사람이 나올지도 몰라.’

‘빨리 열어줘야 해.’

‘누가 알면 안 돼…’

‘급하다.’


문을 열자,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던 녀석이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방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날 새벽,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녀석은 조용히 내 뒤를 따라 나왔던 것이다.

나는 모른 채 방으로 돌아왔고,

녀석은 거실에 혼자 남겨졌다.


현관문 유리 너머 새벽어둠 속에 잠긴 아침 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오줌을 바닥에 누었나 거실로 나가보았고,

순간 졸린 눈이 둥그레졌다.


거실 한가득 뿌려진 쓰레기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


불을 켜자, 평소보다 더 넓어 보이는 거실이

형형색색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종이, 비닐, 잡다한 것들까지.

모두 잘게 찢기고 물어뜯기고

거실 바닥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그 집은 막 이사한 곳이었다.

싱크대 앞에는 쓰레기통 대신 대용량 페인트 통이 있었고,

그 안에 쓰레기를 눌러 담고,

가장자리는 신문지로 벽처럼 막아 놓곤 했다.

쓰레기통은 꼭 하나같지만, 사실 두 통짜리 용량이었다.


그날은 특히 긴장됐다.

곧 집주인 가족들이 일어날 시간이었고,

금방이라도 안방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혼자서는 치우기 버거울 것 같아 눈물이 맺힐 뻔했고,

스트레스에 그냥 포기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잠은 달아나 버렸고,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쓸고, 닦고, 다시 쓸고, 또 닦고.

흔적을 지우기 위한 구석구석까지.

걸레질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거실은 완벽하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청소가 끝났을 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청했고,

그날 새벽일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새벽, 우리 강아지는

혼자 광란의 시간을 보냈다.


이사 온 집은 후회할 만큼 낯설었고,

그곳 사람들과 서로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실조차 마음껏 누릴 수 없었던 녀석은

그날 밤만큼은 모든 것이 자유였다.


물고, 흔들고, 던지고, 뛰고, 구르고…

지칠 만큼, 실컷.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세상에서

자기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곧 깰 시간이라는 것을.

강아지들에게도 생체 시계가 있으니까.


놀라운 건, 그 순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녀석은 나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로 짖었고,

내가 그걸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긴박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억조차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모두가 잠든 새벽,

우리 둘만 알고 있던 작은 사건 하나.

그건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를

조용히 비추는 따뜻한 빛이다.


2015년12월28일사이판여행 추억으로 가는 길은 ...JPG

2015. 이 길이 추억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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