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발 신은 강아지

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by Heba

노량진에 새로운 작은 쇼핑몰이 생겼다는 소식에 조카를 데리고 단숨에 달려갔다.


다른 층은 대충 훑어보고, 넓은 지하 슈퍼로 내려가니 강아지 용품 판매대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반려견 문화가 대중적이지 않았는데, 슈퍼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강아지 용품 코너는 한가했고, 조카와 나는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구경했다. 출입문을 향해 가던 중년 부부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강아지 키우시나 봐요?”

“네, 그런데 아직 어려요.”

“종이 뭐예요?”

“모르겠어요.”


“우리 개는 진돗개였는데,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 갔어요.”

“아, 슬프시겠어요. 근데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산에 묻었어요. 사람들이 알면 파내서 먹는다 하니, 밤에 몰래 묻었지요.”


그 부부는 말없이 한참 동안 용품을 구경하며, 하늘나라로 떠난 개를 그리워하는 듯했다. 잠시 후 그들은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그날 나는 처음 본 사람과 ‘개’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부부로부터 진돗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꼈고, 그 애정이 내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파고들었다.


강아지 용품을 보면서 우리 강아지에게도 뭔가 사주고

싶었지만, 수중에 갖고 온 돈에 비해 마땅한 게 없었다.

억지로라도 맞춰 사려던 순간, 우연히 진열대 옆 고리에 걸린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신발이었다.


강아지를 위한 신발이라니! 나와 초등학교 1학년 조카 둘 다 신기해했다. 인조가죽 같은 얇은 재질, 발목을 끈으로 조이는 방식. 다른 색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앙증맞은 신발이 빨간색이라서 유난히 잘 어울리고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빨간 신발을 신은 강아지를 상상하려는데 장화 신은 고양이란 동화 속 고양이가 떠올랐다. 털이 부스스한 우리 강아지가 그 장화 신은 고양이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빨간 신발을 신은 우리 강아지는 모습은 어떨지 아마 강아지 인형 같지 않을까.

신발은 신은 모습이 보고 싶어 사주고 싶어졌다.


집에 와서 신발을 신기려 하자, 녀석은 낯선 물건이 싫었는지 내 엄지 손가락만 한 작은 발이 신발 속으로 안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작은 발을 움켜쥐고 씨름하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조카가 도와주었고 겨우 신길 수 있었다. 네 발을 다 신긴 순간, 아뿔싸! 꼭 끼었다. 걱정이 스쳤다.


발가락이 아프지는 않을까?

걸을 수는 있을까?

미끄러지지 않을까?


그러나 신발을 신고 서 있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녀석은 처음엔 걷지 않고 신발을 털어내려 연신 뒷발질만 해대고 걷더라도 네 발이 각기 따로 걸었다.

하루가 지났다.

녀석은 신발에 적응이 되었고, 그 후 종종 빨간 신발을

신고 노량진 학원가를 누볐다.


그 시절 개들은 대부분 마당이나 개집에 묶여 있었기에, 신발 신은 강아지는 드물었다.


학원가 학생들은 빨간 신발을 신은 갈색 솜뭉치 녀석을 발견하고 손뼉을 치면서 "어머나! 귀엽다." 소리를 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살짝 등을 쓰다듬기도 하고

"안아 봐도 돼요?"라고 묻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은 복잡한 길에서도 사람들은 총총 뛰어가는 녀석을 보고 옆으로 비켜 주기도 했다.


꼭 사랑받는 모습 같아 오히려 내가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녀석이 평생 이렇게 사랑받기를

기원해 주었다.


몇 개월 후 우리는 이사를 갔다. 녀석의 자라면서 발톱도 굵어지고 날카로워져 결국 신발 앞부분에 구멍을 숭숭 냈다. 그래도 그 낡은 신발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빨간 신발은 내 곁에서 사라지고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학원가를 걷던 추억이 선명히 떠올랐고, 그리움은 언제나 생생함과 함께 뭉클하게 다가왔다.


빨간 신발은 단순히 귀여운 강아지 용품이 아니었다. 그때 녀석은 리드 끈 없이 학원가를 활보했었고,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알게 된 것이 녀석에게 있어 유일한 자유가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그렇게 빨간 신발은 녀석에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유였다.


또, 빨간 신발은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 녀석에게 준 나의 첫 번째 선물이었다.


강아지 별로 떠난 지 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빨간 신발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뜨거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작은 물건 하나가 이렇게 큰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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