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와 강아지의 떨림

6082일. 강아지 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by Heba

4월의 마지막 날 새벽, 갑자기 봄비가 쏟아졌다.

여름의 기습폭우처럼 요란하게 퍼붓는 소리에, 올봄

강아지별로 떠난 내 똥강아지가 떠올랐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수천 개의 북을 동시에 두드리는 듯한 빗소리가 바람에

쓸려 유리창에 부딪히며 흘러내렸다.


번개가 방안을 대낮처럼 밝혔다 사라졌고, 천둥의

포효로 헐거워진 나무 창틀에 낀 유리는 덜컹이며 드르르 떨었다.


이런 밤이면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고, 우리

강아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날엔 녀석의 나뭇잎 같은 얇은 귀를 반으로 접어

귓구멍을 덮고, 내 손바닥으로 다시 덮었다.


종잇장 같은 이불과 하찮은 내 손바닥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녀석의 작고 따스한 몸을 꼭 안아주며

빗소리를 막아주려 했다.


어릴 때는 무서워하지 않았던 녀석이 일곱 살 무렵부터

폭군처럼 창문을 내리치는 비에 떨기 시작했다. 흑진주

같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려지면, 귀끝 털마저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품에 안아도, 떨림은 쉽게 멎지

않았다.


잠을 설치다 지쳐 녀석을 방치하면,

앞발로 문을 긁거나 어두운 거실을 서성이며 불안을

표했다.


깊은 새벽은 걸을 때마다 길게 자란 발톱이 내는

발자국 소리와 냄새 맡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잠귀가 밝은 엄마가 깰까 엄마보다 내가 먼저 일어났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문을 열고 닫으며 녀석을

따라다니거나 녀석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고

있었다.


나 말고 녀석의 존재에 관심을 두는 가족은 없었기에

눈이 퀭해질 만큼 힘든 밤도 많았지만, 녀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리드 줄을 묶어 보기도 했으나, 강하게

저항하며 전기선을 물어뜯는 아찔한 상황에 다시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내 허리에 리드 끈을

감고 자며 녀석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열네 살 무렵,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도

평온해 보이는 녀석을 보고 혹시 귀가 들리지 않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뒤에서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을 때 고개를 돌려주던

순간,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작은 생명체가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에

홀로 갇혀 살다가 떠나는 건 생각만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나는 녀석이 별이 되기 직전까지 나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내 목소리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새벽 2시 20분.

밖은 어둡고 비는 여전히 창문을 향해 퍼붓는다.

여름도 아닌데 무슨 봄비가 이렇게 많이도 내리는 건지.


그럼에도

빗소리 속에서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해

오늘의 이 비가 정말 고맙다.


-강아지별로 떠난 그해 4월 봄비 내리던 날의 일기-




오래전에 썼던 일기를 보니 마치 그 시절을 함께 삶을

살았던 녀석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 훗날,

나는 녀석이 왜 천둥, 번개, 폭우를 무서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시각이 안 좋은 개들은 밝은 빛에 두려움을 느끼고

청각이 무척 예민하여 진동과 큰 소리에 잘 놀란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생존과 관련된 본능적 행동인 것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석이

떠오르고 내가 미안해했다.


시각이 안 좋고 청각은 좋다는 것만 알았지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왜 그런 건지는 알려하지도 않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나였다.


그때는 녀석이 사람보다 몇 배 잘 듣는다 해도 빗소리나

천둥번개는 무심하게 들을 줄 알았다.


아주 가끔,

녀석을 만나기 전에 이미 내가 반려견에 대한 지식이

많이 있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와 녀석과의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경제적으로 늘 불안했고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녀석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면에서 이 부족했지만 마음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걸. 내 똥강아지가 느끼고 떠났기를 바라는

마음을 오늘 처음으로 져본다.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는 밤. 반려견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졸음이 쏟아지는데 녀석의 발톱 소리를 못 참고 묶어놨다.


녀석은 내가 불을 켜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열심히 끈을 물고 벗어나려 저항하고 있어서 다시 풀어 주었다.

먼 훗날 생존과 관련된 본능이었다는 거 알고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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