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2013년 1월에 퇴사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깊게 고민한 적이 없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서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 더 알맞겠다. 아무 생각 없이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숨 가쁘게 살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직장 생활 6년 차가 되었다.
스물일곱 살에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집이 편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와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엄마 밑에서 자랐다. 매일 부모님의 싸움은 내 안에 불안을 더 자극시켰다. 욕과 폭력이 일상인 가정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숨죽여 싸움이 잦아지길 기다리는 거였다. 잠들기 전에 시계를 확인하면 매일 똑같은 시간이었다. 새벽 3시에서 새벽 4시 사이. 내가 출근 준비하는 시간은 아침 6시. 학교 다닐 때나 회사를 다닐 때나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겨우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었다. 학교에서는 매일 졸아서 선생님께 불려 가기 일쑤였고 회사에서는 일에 대한 실수가 잦았다.
"OO씨! 일 좀 똑바로 해!!"
오늘도 혼났다. 의자에 힘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나 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제 다 그만하고 싶었다. 금요일 저녁. 그날따라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퇴근해서 버스 터미널로 갔다. 나는 부산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컴컴한 밤. 비가 많이 내렸다. 내 발목은 축축해졌다. 미쳐 우산을 정리하지 못해서 내 발목에 기대어 있는 우산. 우산처럼 그날은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날이었다.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나는 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그 외로움이 나를 부산까지 오게 한 건 아닐까.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눈에 보이는 숙소로 들어갔다. 내 손에는 펜과 종이 한 장. 기댈 곳도 설 곳도 없어 보이는 내 인생. 담담하게 유서를 쓰고 있었다.
소주를 병 채로 들이켰다. 눈을 떠보니 나는 죽지 않았다. 다행인 걸까. 아닐 걸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경찰은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같이 온 부모님은 나를 지옥 같은 집으로 다시 데려갔다.
부모님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사춘기 없이 지나가서 오춘기가 왔냐며 첫 말을 내뱉은 엄마 그리고 무관심한 아빠.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동생. 이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월요일 아침.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했다. 항상 밝게 웃으면서 직장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날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내 인생을 계속 보내기 싫었다.
나는 왜 다시 회사에 있을까?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라고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서. 내 키보드 소리는 경쾌했다. 일이 아닌 사직서를 작성했다.
나는 스물여덟 살에 퇴사했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떠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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