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생함
암의 진행은 때로는 순해서 내 말을 잘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거친 비바람을 몰아치는 거센 폭풍우와 같다.
암의 진행과 재발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의사와 과학자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방법은 없다.
그래서 암의 재발이라고 하는 건 환자에게는 좌절과 낙담을 유발하고 외과의사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아직 정리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아직 아들 장가도 보내야 하고... 아직 몇 년 더 일해야 하는데... 그동안 긍정적으로 해왔는데 오늘 결과는 너무 실망스럽네요.”
“네 어르신 1년 넘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네요. 다시 항암 하셔야 할거 같아요.”
“수술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재발한 부분 수술하고 별 문제없어서 더 안심했는데... 너무 당황스럽네요.”
어르신이 너무 근심 어리고 낙담한 얼굴로 머리를 숙이고 이야기하신다.
‘어르신 제가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재발 안 하실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내 마음속 자책의 소리가 들린다.
“...... 그래도 어르신 아직 완전히 절망하긴 이르고 우선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요.” 하고 말씀드린다.
재발을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외과의사로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문제이다.
나의 치료가, 나의 수술이 실패한 것 같은 좌절감...
거기에 환자의 낙담과 좌절이 더해지면 내 마음이 한번 크게 무너져 내린다.
모래성을 멋지게 짓고 있어도 파도가 크게 치면 허물어져 주저앉아 버리게 되는...
암 환자 분들을 진료하면서 그렇게 마음으로 성을 짓고 허물어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의사에게 재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통계와 확률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그 통계와 확률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다. 이미 재발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재발에 대한 설명은 어쩌면 의사들의 변명 혹은 책임회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재발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의사는 설명해야 하고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의사가 해야 한다.
한번 허물어진 성을 더 견고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야 한다.
물론 환자 분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의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재발 치료의 첫걸음은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드리는 것이다.
암의 재발 치료는 여러 가지로 힘들다. 그런 힘든 길을 아무런 희망 없이 헤쳐나가기는 어렵다.
헛된 희망이 오히려 독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져야 그리고 긍정적이어야 치료를 시작하고 나아지길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센 폭풍우가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을 쌓는다.
그 성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희망을,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