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사 마음을 몰라 주나요?

by 한언철

젊은 말기암 환자...


환자는 2년 전 타 병원에서 암 진단 후 치료 중 본인의 선택으로 수술이 가능한 상태에서 자연치료를 선택했고 대부분이 그러하듯 암이 많이 진행되고 심해져서 나에게 왔다.

그냥 심한 것이 아니라 암이 곪고 터져서 응급으로 장루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이후 상태가 괜찮아지고 여유가 생겼을 때 왜 치료를 안 받았냐고 물어봤다.

또 대부분이 그러하듯 같은 대답이다.

"무서웠어요. 치료도 무섭고 통증도 무섭고... 그냥 무서웠어요."

사실 의학적으로는 치료 시점은 이미 놓쳐버린 것일 수도 있다.

암이 터져 나온 상황이면 주변으로 암세포가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높아 재발이나 전이 가능성 훨씬 높다.

그래도 환자가 이번에는 그래도 적극적으로 치료해 보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항암방사선 치료는 빠지지 않고 잘 받았고 암도 많이 줄고 이 전에 생겼던 상처도 다 나았다.

그리고 항암방사선 치료 후 검사 역시 암은 많이 호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검사 결과 확인하는 날 검사 결과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암은 많이 줄었고 아직 다른 곳에 전이는 없는 상태예요. 수술 진행해서 일단 암을 제거합시다."

"...... 선생님 저 수술은 안 하고 싶어요. 해도 어차피 재발하고 하면 항암 치료해야 되고..."

"지난번에도 한번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이 정말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요."

"... 그래도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이렇게 편하게 있다가 가고 싶어요."

"아직 아무런 치료도 안 하기에는 너무 일러요."

"...... "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답답한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대답이 돌아온다.

"안 하고 싶어요. 선생님"


환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다음 검사를 예약해 주었다.

결국 예정된 경과를 보였다.

이전에 줄었던 암 부위가 다시 커지고 임파선 전이가 생겼다.

다음 검사에서는 간 전이가 보이고 그다음은 폐 전이...

환자는 검사 결과를 묵묵히 듣고 다시 외래를 나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환자가 어느 날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로 왔다.

응급실에서 시행한 CT 검사에는 암의 원격전이가 너무 많이 심해져 있었다.

회음부 부위도 암이 진행되어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일단 입원하고 급한 대로 통증 조절과 영양제 투여를 시행하였다.

환자에게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표정의 변화 없이 설명을 듣고는 알겠다고 했다.

보호자와도 면담을 해야 했다.

호스피스 연계와 사전 연명 치료 중단 의향서 작성 등이 필요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로 정리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치료는 없어요. 증상 치료밖에 남은 게 없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선생님~~ 근데 우리 딸이 너무 젊잖아요. 자기는 아직 그런 상태인지 모르는 거 같아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설명해주세요."

"어머니, 따님도 제가 몇 번 다시 설명하고 이번에 다시 설명해서 본인 상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본인 상태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에 입원하셔야 될 것 같아요. 우리 병원에서 보는 것보다는 증상 조절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나으실 거 같아요."

"거기는 치료가 안되잖아요."

"... 어머니 더 이상 치료가 의미가 없는 상태라고 계속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서울 쪽 병원에 가면 안 될까요?"

"가셔서 진료를 받는 건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셔도 지금은 해줄 게 없다는 말만 들으실 겁니다."


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30분 넘게 이어진다.

그렇게 호스피스로 전원을 결정하였다.

얼마 뒤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소견서 작성 원하시는데요. 서울 쪽 병원에 진료 보시겠데요."

"... 네, 알겠습니다. 작성할게요."

전화를 끊고서 뭔지 모를 답답함과 갑갑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아예 모를 거 같지는 않다.

무섭고 두렵고... 내 자식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그래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다시 설명하고 설득하고...

왜 이렇게 의사 마음을 몰라주시는지...

의사의 조언이 항상 옳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안 따라 주시는지...

뒤늦은 후회를 지켜보는 의사의 입장에서 가끔은 의사 말을 듣지 않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미워질 때가 있다.


가끔은 의사 마음을 좀 알아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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