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아침과 저녁 문안인사

회진

by 한언철

의사가 되기 전 의사의 회진은 나에게 의사를 상징하는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80년대 어머니가 수술하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교수님이 회진을 오시면 입원 환자들은 자기 침대에 반드시 누워있거나 앉아 있어야 했다.

그 사이 전공의들이 뛰어다니며 자리에 없는 환자들 찾으러 다니는 진풍경을 보기도 했다.

그 후 정리가 되면 긴 가운을 휘날리시며 전공의와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교수님이 환자 앞에 딱 서시면 옆에서 전공의들은 환자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와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읊어댄다.

그러다 가끔은 말을 끊으시고 엄청 혼내던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하는 태도도 있었고 지시한 부분이 잘 안되어 있어 혼냈었던 거 같다.

물론 의사가 되고 나니 그 일이 내 일이 되어 있었다.

물론 환자들을 찾으러 뛰어다니지 않지만 환자 상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치료 경과를 확인하고 투약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난 회진에서 지시하신 일은 잘 처리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대로 파악이 안 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를 파악하는 일종의 훈련이라고나 할까...


전공의 시절 회진과 관련된 일화들을 모아 보면 책이 여러 권 나올 것이다.

전공의 시절 회진 돌면서 가장 재밌었던 기억은 가끔 교수님들이 환자들이 너무 많으셔서 헷갈려서 실수를 하시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교수님께서 자신 있게 성큼성큼 환자 앞으로 가시더니

"다 좋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등 뒤에 서 있던 나는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낀다.

얼른 교수님께 나지막이 급히 환자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려드린다.

"아~~~ 교수님. 수술 후 10일째로 합병증으로 치료 중에 있습니다."

“환자 분 곧 다 좋아지실 겁니다." 급히 말을 바꾸신다.

속으로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병실을 나와서 환자 정보를 빨리 안 알려줬다고 타박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환자들의 신체 징후 및 투약은 어떻게 들어갔는지 살펴보고 한 숨 고른 후에 회진을 시작한다.
“밤 사이 괜찮으셨어요? 어제 진통제를 좀 맞으셨던데요.”

환자, 환자 보호자와 눈을 마주치고 아침 인사를 나눈다.

“아이고, 밤 사이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배도 아프고 진통제 맞아도 아프고... 아침이 되니까 좀 낫네요. 선생님 봐서 그런가?”

“하하하, 어르신도... 침대에 한 번 누워보세요. 무릎 세우 시구요.”

배를 만져보고 청진기로 소리도 들어보고 신체 검진을 해 본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는 유심히 나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본다.

“별 이상은 없는 거 같네요. 수술 후에 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통증이 오셨나 봐요. 아마 통증이 방향 없이 막 생기다가 한 곳이 엄청 쑤시듯이 아팠다가 그럴 건데 이럴 때 일 수록 더 많이 움직여 주시는 게 좋아요. 아셨죠?”

“선생님 말처럼 막 그렇게 아파요. 배가 아파서 잘 못 움직이겠는데 노력해 볼게요.”


아침 회진은 환자들에게 건네는 아침 문안인사라고 할 수 있다.

밤 사이 괜찮았는지,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물어보고 필요한 처치나 검사, 투약 등을 결정한다.

통증은 주관적인 것으로 시각적으로 자극이 많은 낮보다는 주로 밤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침 회진을 돌면 대부분 수술 환자들이다 보니 통증에 대한 호소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통증이라고 하는 것이 환자들 입장에서는 당장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고 요구하시지만 의료진 입장에서는 정확한 통증에 대한 사정을 하지 않으면 투약할 수가 없다.

급성 통증의 경우 단순히 진통제를 처방해서 해결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통증의 원인이 응급 수술이나 응급 처치가 필요한 경우는 진통제와 더불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간호사님들이 환자를 본 후 단순 통증이고 투약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치의에게 연락하고 투약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시간적 공백이 생기고 환자들은 발생하는 불편을 아침에 나에게 털어놓는 경우도 많다.

그런 과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회진 중에 내가 하는 일 중에 하나다.


당연히 회진 중에는 상태가 괜찮은 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합병증이 생기신 환자 분, 말기 암으로 진통제 투약만 하시는 환자 분, 수술 대기 중이신 환자 분...

환자 분들에 맞추어 아침 인사를 건네고 상태를 여쭙고 파악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업무 시간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면서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환자의 표정이나 행동, 보호자들의 말투,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시는 환자에 대한 정보 등을 모두 취합하여 종합한다.

환자를 보아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종의 나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그리고 병동 간호사와 전담 간호사 선생님들도 나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내가 회진 때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부분과 물어보는 부분에 대해서 파악이 되고 회진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해 주신다.


아침 회진은 병원에서 하루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오후 회진은 병원에서 하루가 일단락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자명종이다.

오후 회진에는 일과 시간 동안 괜찮았는지, 식사하고 이상 없으신지, 낮 동안 시행한 검사 결과라던지 그리고 내일 치료 계획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말씀드린다.

그리고 오후 회진 시 병동에는 저녁과 밤 사이 환자의 처치와 투약에 대한 필요한 사항을 공유하고 당부를 한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 통상적으로 회진을 하고 있다.


회진이라고 하는 것은 의료진,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 소통하는 창구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항상 웃고 넘길 수 있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합병증이 생긴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을 회진할 때에는 나의 마음도 무겁고 가라앉기 마련이다.

더욱이 입원 기간이 길어지는 환자의 경우는 환자 보호자도 의료진에게 불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제일 서운하고 억울한 경우는 “괜히 여기서 치료했나 봐. 그냥 서울이나 더 큰 데 가서 치료받는 건데...”라는 말을 듣는 경우다.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상황이 서울로 간다고 달라진 상황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가 그동안 노력한 것을 몰라주는 보호자에 화도 날 때가 있다.

다시 마음을 잡고 다시 환자와 보호자에게 상태 설명을 한다.

결국 치료의 결과에 대해서 의료진은 설명을 할 수 있으나 결국 그에 대한 평가와 받아들이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가 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와 보호자들은 질병으로 인해서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이고 당연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환자와 보호자들의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의사가 가진 회진이란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하는 의사가 하는 문안인사와 같은 것이고 항상 유쾌한 마음으로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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