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죽음의 실체

셀레네의 눈물

by 도영

타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키보드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딸깍, 딸깍.

두어 번 마우스가 눌리는 소리가 울린다.


"이 정도 하면 와줄 줄 알았는데. 오늘도 안 오네. 진짜 글을 올려야 하나. 피곤하게."


여자는 한숨을 내쉬다 꾹, 키보드를 눌렀다.


"이딴 거 써봐야 무슨 소용이야. 어그로 끈다고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나만 사이버 불링 졸X 당하겠지. 제발, 제발 이젠 좀 와라. 난 뭐 맨날 인간들한테 이런 위치인가? 사람으로 태어나도 다른 게 없네."


-전생?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환생이 필요 없다고 느낄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고작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거? 저게 무슨 부질이 있는데? 결국 다 죽어서 꾸는 꿈이잖아. 실제로 죽은 사람들은… 저렇게… 어둠 속을 달리고 또 달리고, 그러다 쓰러져 마치 죽어서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꾸민 거잖아.

-꾸미다뇨,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헤카테, 너는 정말… 끔찍해.


여자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선자, 방관자, 죽음 그 자체. 여자는 헤카테를 그렇게 불렀다.

여자가 이곳에 태어나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온 것도 벌써 언 100년째. 그는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자리를 옮기며 인간들의 옆에서 그들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사람들이 아픈 것이 자신의 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옆에 여자가 바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늘 입에 여자의 진짜 이름을 올리곤 했으니까.


-셀레네는 도대체 왜 질병이나 재난 같은 걸 내려주는 걸까?

-우리를 위해서라곤 했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냥 우리를 미워하는 거 아닐까. 사람으로 안 살아봐서 그래. 신이 사람 입장을 어떻게 알겠냐?

-ㅇㅇ 나도 그렇게 생각함 지도 다 겪고 아파보라지 가족도 잃어보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홀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신도 태초의 신의 손에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나도, 나도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끝에 닿아 새로운 삶을 선택받은 것뿐이었는데.

질병과 재난의 신, 셀레네. 그게 바로 여자의 이름이었다. 태초의 신이 유독 아꼈던 세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도록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사람일 때 살아왔던 날들의 모습에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재해로 인해 가족을 잃었으며, 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어 셀레네라는 이름을 받아 사람들을 보듬어주게 되었다. 누구도 아프지 않게 재해도 질병도 차라리 없앨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셀레네는 자신이 재난과 질병의 신이라는 사실이 죽도록 싫었다. 세상의 이치에 맞춰 그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주었지만 슬퍼하는 사람들이, 절규하는 사람들이 언젠가의 자신의 모습 같아 몇 번이고 이 일을 하기 싫어 잠적을 타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탄생을 만드는 아르테미스와 죽음을 관리하는 헤카테는 설득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죽음이 있어야 삶도 있다고, 죽는 존재가 있어야 태어나는 자도 있는 법이라고. 그 역할을 하게 해주는 것이 당신이라며 몇 번이고 이야기해 주었다. 셀레네는 그 말에 올라오는 감정을 참으며 자신이 할 일을 묵묵하게 해냈다.

하지만 사람들의 원망을 멀리서 듣고 있자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고통받는 일이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줄 리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했다.

아르테미스도 지쳐 사람들은 전부 악마라며 정신을 놓은 지 오래되었고, 자신 또한 더 이상 멀쩡한 정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 어려워졌다. 두렵다. 신이라고 불리지만 인간과 같은 삶을 살았고,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움받는 것이 너무 두렵다.


헤카테만이 멀쩡하게 사람들을 바라봤다. 셀레네와 아르테미스는 곧 헤카테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었다. 살아생전부터 사람들을 증오하던 헤카테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낄 리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은 죽음과 우울의 헤카테였다.

끝없이 존재하지도 않는 사후세계를 만들어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마치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운 것처럼 그들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새로운 삶을 선물한 척 연기하고.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을 사랑했던 것은 자신과 아르테미스였는데.


너넨 정말 모르겠어? 진짜 죽음은 결국 헤카테가 만든 자신, 그 자체라는 것을.

헤카테가 너희들의 죽음이라는 것을.

뱀이 아무리 제 꼬리를 문다 한들 그것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사람들 눈에 자신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보일 뿐, 결국 뱀은 자신의 꼬리를 물던 것처럼 사람들을 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믿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르테미스 말대로 새로 태어난 인간들은 전부 악마 새X들일지도 몰라. 그렇게 헤카테가 좋을까? 그렇게 죽음을 인도하는 사자가 좋을까? 그렇다면 바라던 대로 해주어야지. 역병이든 재해든 너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것을 선물하고 너네가 말하던 대로 너희를 망치러 세상에 내려갈게.

더 이상 셀레네는 누구도 믿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다. 다시는,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아야지. 나는 그들이 말하는 신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재난과 질병의 신, 셀레네이다.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존재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그들이 그걸 바라니까. 그 핑계로 그들은 누군가를 탓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무엇도 부정하지 않는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할 마음도 없다. 신은 그런 존재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그런 존재였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내가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뱉는 말조차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모든 말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라면, 그걸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는 몇 년 동안 끝나지 않을 전염병을 만들어 세상에 뿌린다. 사람들이 원했으니까. 그들은 끔찍하게 두려워하면서도 종종 죽음을 바라곤 했으니까. 그들이 원하는 선물을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병과 재해를 선물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종종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장점을 자주 말해주는 편이기도 하다. 그것을 떠올려 쓰게 된 것이 바로 이 단편이다. 결국 세계관에서 신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못한다며 그를 깎아내리는 것보다 못하더라도 칭찬을 해주는 것이 상대방의 능률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말 하나로 소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우리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말은 정말 중요하니까.

그 사람의 말 하나로 누군가는 죽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다시 살아가기도 하니까.


keyword
이전 23화22. TO THE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