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선물

by 히다이드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날이 공교롭게도 어버이날이었다. 혼자만 해외여행을 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특별한 어버이날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다.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보내는 어버이날 튤립, 항공우편으로 받은 소포 상자에서 튤립을 꺼내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괜히 설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싱겔 튤립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튤립을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근처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소포를 보낸 후에, 체크아웃을 하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 오전 11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다. 이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나는 내 튼튼한 두 다리를 믿기로 했기 때문에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싱겔 튤립 시장’까지 몇 킬로미터 정도를 부지런히 걸었다. 이른 아침 암스테르담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일찍 나온 가게 직원들이 영업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출근 시간이었지만 차가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았고 대신 도로에 자전거가 많았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가 두 어 대라면 그 옆에 스무 대 정도의 자전거가 서서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시장이 문을 안 열었으면 어떻게 하나 살짝 걱정했는데 역시 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부지런했다. 문을 연 가게들이 있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이런저런 꽃들을 골라 포장한 후에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리고 쌀쌀했는데 부지런히 걷다 보니 땀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 가끔 멈춰 서서 한 손에 꽃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이른 아침 조용한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1시 50분에 기차가 출발하는데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숙소 근처의 우체국에 도착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우체국이 아니라 ‘Primera’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잡화점이었다. 호스트 할아버지에게 우체국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는데 ‘Primera’에서도 소포를 보낼 수 있다고 안내해 준 것이다. 우체국 대신 우편 대행 서비스를 취급하는 곳 같았는데 문구류를 비롯해 각종 잡화를 팔고 있었다. 커다란 소포 상자를 골라 정성스레 꽃을 넣고 주소와 함께 배송에 필요한 정보들을 적어서 직원에게 준 후에 숙소 체크아웃을 위해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꽃다발 사진도 못 찍었는데 그게 아직까지 후회가 된다. 결국 그 꽃다발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달되지 못했다. 2 주일 정도 후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다 한국 세관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농산품은 한국으로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꽤 비싼 돈을 주고 산 꽃다발이었는데 잡화점에서 받은 전표 한 장만 남긴 채 세관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진이라도 찍어뒀다면 부모님께 이런 걸 보냈었다고 보여주기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잡화점에서 꽃다발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호스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볼 일이 있어서 먼저 외출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날 보내면서 호스트 할아버지가 다음에 올 때는 꼭 여자 친구랑 같이 오라고 신신당부하시던 게 생각난다. 남자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 같다. 알겠다고 하면서 숙소를 나섰는데 사실 암스테르담에 또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온다 해도 이 할아버지와 만날 수 있을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며칠간 함께 했던 것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와 그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전부일 지도 몰랐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래도 같이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없었다. 숙소에서 나와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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